녹십자, 일동 업고 제약공룡 되나?

인수합병시 1위 도약…“경영엔 계획없다?”

양혁진

yhj2503@gmail.com | 2012-12-14 15:58:17

국내 제약업계 2위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2대 주주가 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일동제약 지분 177만주를 인수하면서 기존 8.28%지분에서 15.35%로 높아진 것. 녹십자의 이런 행보를 두고 제약업계에서는 녹십자가 경영권이 허약한 일동제약 인수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녹십자측은 “일동제약 지분을 사들인 것은 전망과 장래성을 보고 투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협력관계는 가능하지만 차후에도 일동제약의 경영에 관여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녹십자의 인수합병설이 나돌면서 일동제약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중이다.


◇ 개인투자자 그룹과 손잡으면 경영권 인수
지난 10일 일동제약은 “기존 주주인 녹십자가 환인제약이 보유 중이던 일동제약 지분 177만주(7.07%)를 인수했다” 고 공시했다. 이로써 녹십자는 현 경영진이자 최대주주인 윤원영 회장 측의 27.19%에 이은 2대 주주에 해당하는 지분을 보유하게 됐다. 녹십자가 추가 획득한 177만주는 환인제약이 보유했던 주식으로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녹십자에 판매됐다.


현 경영진의 지분 구조는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의 지분이 6.42%이며, 아들인 윤웅섭 부사장 1.63%,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전 일동제약 회장) 5.47%, 일동후디스 3.09%, 송파재단 3.04%와 친인척·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7.19%(681만6385주)에 불과하다. 그 외 개인투자자 이호찬(12.57%), 피델리티(9.99%), 안희태(9.85%) 등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일동제약은 윤원영 회장 등 현 경영진이 27.19%를 보유하고 있으나, 지분율 10% 안팎의 기타 세력이 많아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녹십자가 3, 4대 주주인 개인투자자 두 그룹 중 한 곳과 손을 잡으면 경영권 인수가 가능하다.


녹십자가 일동제약 인수합병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것은 녹십자와 일동제약 두 회사의 겹치지 않는 사업구조 때문이다. 일동제약은 아로나민 등 일반의약품이 매출의 22.5%를, 복제약이 66%를 차지한다.


반면 녹십자는 혈액제제ㆍ백신이 45%, 일반과 전문의약품이 19%다. 일동제약을 인수할 경우 녹십자는 경기를 타지 않는 처방약 시장과 인지도 높은 일반의약품 분야를 강화해 안정적 매출구조를 완성할 수 있다.


또한 녹십자는 그동안 제약업계 내 입지 확대를 위해 호시탐탐 인수 합병 대상을 물색해 왔다. 실제로 녹십자는 2010년 삼천리제약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동아제약에 고배를 마신 바도 있다.


국내 제약업계는 그동안 업종 자체의 보수성과 기업오너들의 강한 소유의식으로 인해 기업간 합병이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왔으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신약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한 기업 인수 합병도 때가 무르익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녹십자는 일동제약 지분 확보를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인수 합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면서 “약가인하 이후 제기돼온 제약업계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고 밝혔다.


◇ 녹십자, 매출 1조의 제약업계 공룡되나?
녹십자는 올 3월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2020년까지 국내매출 2조, 해외매출 2조 달성을 통해 세계 50위권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로 내걸었다.


특히 지난 2009년 작고한 고 허영섭 녹십자 회장은 작고하기 직전 인촌상 산업기술 부문 수상자 선정 소감에서 “국내 제약기업이 혁신적 신약개발을 위해 기업간 인수합병을 활성화해 덩치를 키워야 한다” 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녹십자로서는 인수합병이 선대회장의 남겨진 뜻인 셈이다.


녹십자와 일동제약이 합쳐진다면 우리나라에도 단숨에 매출 1조대 글로벌 제약기업이 탄생한다.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하면 현재 업계 1위 동아제약을 뛰어넘는 매출 1조원대 제약사가 탄생하게 되는 것. 작년에 동아제약은 매출 9073억원이었고, 녹십자와 일동제약을 합치면 1조원을 넘는다.


하지만 녹십자측에서 밝혔듯이 단순투자일 뿐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제약업계에서는 지금까지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의 사례가 없을뿐더러, 업력이 오래된 두 회사 오너들 간에 적잖은 친분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이같은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윤원영 회장의 아들 윤웅섭 부사장과 허영섭 녹십자 창업주 아들 허은철 부사장은 고등학교 동문으로 평소 친분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윤원영 회장과 고 허영섭회장도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약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제약업계는 업계 특유의 고유한 룰이랄까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 며 “녹십자가 아무런 명분없이 무턱대로 적대적 방식의 인수 합병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일동제약 주가는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지분율을 늘린 것에 대해 기업인수 합병을 염두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으로 비춰지면서 주중 내내 연일 상승곡선을 탔다.


일동제약의 가파른 상승세에는 최근 미국 아레나제약으로부터 비만치료제 벨비크의 국내 독점 공급권을 따낸 부분도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레나제약의 벨비크는 13년 만에 FDA가 승인한 비만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약품이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