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의원은 누구?
동해시 출생...농장관리인․교사등 다양한 경험
김태혁
tae1114@yahoo.co.kr | 2014-04-20 09:29:59
[토요경제=김태혁 기자]
이재오 의원은 누구?
1945년 1월 강원도 강릉군 묵호읍(현 동해시)에서 태어나 8·15 광복 후 가족은 고향인 경상북도 영양군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석보중학교에 들어가서 읽은 ‘상록수’의 박동혁에 깊은 영향을 받아 농촌운동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특히 웅변에 재능이 뛰어나 각종 웅변대회를 휩쓸기도 했으며, 영양고등학교를 마치고 영양군청 산업과 행정서기보로 채용되어 농장관리인으로 근무했다.
한일협정 반대와 제적 농촌운동가의 꿈을 위해 중앙대학교 농촌사회개발학과에 입학했으나 당시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주도하다가 제적당했고, 중앙농민학교(現 국민대학교로 통합),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복학하여 32년 만인 1996년에 졸업하였다. 군 복무 중에 파견교사 시험에 합격하여 이때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했으며, 제대 후에는 함석헌, 계훈제, 김수환 추기경 등을 모시고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를 결성하였고, 재야청년단체의 효시인 민주수호청년협의회(민수청)의 2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64년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6·3 항쟁)주도한 혐의로 제적되었으며, 이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으로 30년간 5번 투옥되었다. 중앙대(1996년, 30년만에 졸업), 중앙농민학교(1970년 졸업, 중앙농민학교는 1969년 국민산업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됐다가 1972년 국민대학교로 통합)를 거쳐 1972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이후 1973년 장훈고등학교, 1974년 대성고등학교, 1979년 송곡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79년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79년 7월에는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경북가톨릭농민회 기도회에서 인권 문제를 강연해달라고 요청받았으나 특강 후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됐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독재정권 아래서 다섯번의 수형 생활로 이어졌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민족통일위원장으로 활동했고, 6월 항쟁 당시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 집행위원으로 항쟁을 주도했으며, 군정종식 후보단일화 쟁취 국민협의회(국협)을 결성하고 후보단일화 운동에 나섰다. 그는 이후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조국통일위원장을 거친 후 진보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민연추를 결성하나 이부영을 지지하는 세력과 분열하며 1990년 김문수, 장기표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여기에는 기독교시민운동계열 인사들이 참여하였고 문익환 목사 등도 지지를 보내주었다. 이재오는 이어 민중당 사무총장에 선출되고 1991년 14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에서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하며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후 15대 총선을 앞둔 1996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신한국당에 영입되었다. 이후 이재오는 신한국당에 전격으로 입당하여 제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서울 은평(을)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초선의원 모임인 '시월회'를 결성하여 정풍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후 16대, 17대 국회의원에 연거푸 당선되어 15~16대 국회교육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전향 이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정치역정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계속되자 그는 2003년 여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중이 정치에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출발했고, 지금까지 그 정신에서 조금도 후퇴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같이 했다고 해서 김대중 정권의 부정부패를 눈감아주는 것이야말로 반민중당 정신”이라며 “나는 16대 국회때 보수나 진보를 떠나서 권력의 부패와 맞서는 야당으로서 한나라당의 입지를 굳히는데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민중당시절 민중위해 정치하려 했는데, 민중이 선거에서 우릴 외면한 것”이며 자신을 “나는 여전히 진보주의자”라면서 “그러나 국가경영에서 건전한 진보주의자가 건전한 보수와 함께 나가야만 우리 시대의 과제인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항변하였다.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수석 최고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006년 7월 11일 한나라당 제8차 전당대회에서 2위를 기록하며 최고위원에 당선되었으나 2007년 11월 8일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한 친박의원들의 압력에 의해 최고위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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