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으러 갔더니 주인이 바뀌어?

제약사·도매업체, 약국 부도에 ‘울상’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11-29 14:44:52

대형 및 문전약국 약사들이 최근 잇따라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제약사와 도매업체들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달 강남의 한 대형 약국이 문을 닫고 약사는 연락이 두절됐고 이후 강북지역 문전약국 한곳 역시 약사가 잠적하면서 거래 제약사 및 도매업체들이 많게는 수 억원의 손실을 입게 됐다. 수개월전에는 지방의 한 대형약국 약사가 부도를 내면서 지역 도매업계에 파장을 불러왔다. 이에 따라 일부 제약사들이 이를 전담하는 팀 구성이나 인력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최근 대형 및 문전약국 약사들이 잇따라 잠적하는 사건으로 인해 제약사와 도매업체들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위 사진은 본 내용과 무관)

지난달 5일 제약사 및 도매업체들이 서울 강남지역의 한 약국과 거래 계약 만료가 되면서 그동안 공급해준 약품대금 결제를 받기 위해 연락을 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약국은 그 사이 새로운 약사에게 넘겨졌고, 현재 이를 운영하는 약사 또한 피해자라고 밝히고 있어 제약사와 도매업체들이 난감해 하고 있다. 이 곳은 약국 주변 의원들을 대상으로 처방전 위주로 운영됐던 일명 ‘문전약국’으로 약국규모로 봤을 때 이대로라면 수억원대의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이 약국과 거래한 한 제약사 관계자는 “잠적한 약사가 거액의 권리금을 주고 지금의 약국을 운영했으나 비싼 권리금에 비해 예상만큼 수익이 오르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강북에 소재한 다른 문전약국 약사도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 거래 제약사과 도매업체들이 고심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시 동대문구 소재 S병원 문전 모약국 약사가 최근 연락을 두절하고 약국 문을 닫은 상태다.


현재 셔터가 내려져 있는 이 약국은 규모는 중형 정도 규모로 약국장 외에도 관리약사가 2명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근에 대형 문전약국 2곳이 소재해있다. 규모와 거래 제약사 피해금액 등을 감안하면 최소 수 억원대 피해가 예상된다.


약사가 잠적한 사유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금융권 등을 중심으로 부채가 있었던 것으로 거래 제약사들은 추정하고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지난 9월 기준으로 수억원의 금융권 부채가 파악됐고, (약사가) 신용불량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언급했다.


약국 경영난 조짐이 일부 거래 제약사엔 알려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0월 말에도 일부 제약사에 약품대금을 결제하지 못했으며, 결국 약사가 잠적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문제는 일부 거래 제약사만 파악되고, 도매 거래 여부와 피해 현황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제약사들의 대책 수립도 어려운 상황이다.


◇ 결국 피해는 제약사·도매업체가 떠안아
문제는 이들 약국은 새로운 주인에게 양도양수가 될 경우 약품을 비롯해 남은 결제대금 등은 고스란히 제약사와 도매업체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실제로 강남의 약국을 인수한 약사는 정당하게 재고 등을 양수 받았으며, 공증 서류 등을 통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잠적한 강남지역 소재 약국 약사는 잠적 이전 이미 인수자에게 재고의약품 등을 양도하고, 관련 법적 절차도 밟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거래 제약사들이 현재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으로, 약국을 양수 받은 약사는 자신이 법률적으로 정당하게 인수했으며, 공증까지 받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거래 제약사 관계자들은 “공증을 받은 날짜는 지난 9월 4일이었으며, 인수 약사가 공증 서류까지 보여줘 약국을 방문한 제약사 직원들이 허탈해하며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라며 “(잠적 약사가) 법적으로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보여 채권자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향후 대책 수립은 물론 전체 피해규모 집계와 잠적 약사 행방 등 파악이 되는 부분이 제한적이어서 더욱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제약업계 토로다. 이 약국과 거래한 도매 A약품과 B약품이 각각 2억3000만원과 2억원, 그리고 30여 곳 제약사들이 많게는 수천만원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거래 제약사들은 채권자집회를 열어 피해 현황을 집계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채권단은 법률자문을 받아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변호사 의뢰 등 가능한 법적 대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며 “대책 없이 넘어가면 향후에도 유사 사례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 ‘기획부도’ 가능성 있어
제약업계는 이러한 사건이 재발돼 추가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제약사나 도매업체들은 접근성 좋은 1층 약국에서 층약국으로 이전했거나 고액의 권리금을 주고 새롭게 약국을 시작했지만, 예상만큼 운영이 녹록치 않은 약국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약사 임원은 “대처만이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 이 부분에 경험이 많은 직원을 전담자로 인사발령을 냈다”며 “앞으로 인력을 더 충원하여 사전에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제약사는 이 같은 징후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는 일종의 메뉴얼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약사회의 반발이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우려한 이 회사 관계자는 “거래약국 약사의 사고 이력 등 관련 자료에 대한 축척관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특히 무자격자를 고용한 약국이나 빛바랜 낡은 간판을 그대로 방치해 둔 약국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빛바랜 간판을 교체하지 않았다는 것은 약국이 그만큼 리스크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수 십년간 본인의 경험에 따른 구분방법이라는 것.


그러나 “사전 인지가 중요한데 이 같은 특징만으로 (부도나 잠적) 징후를 포착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면서 ”운영이 잘됐던 약국에서 갑자기 발생될 경우 제약사나 도매업체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기획부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약사가 의도적으로 약품을 받고 결제를 미룬 후 약국을 매각해 버렸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자료를 원하거나 면대약국 운영, 약품대금 결제기일 연장요구, 제약사 담당직원과의 비인격적인 거래 등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최근 부도를 낸 약사들을 보면 보도직후 곧바로 회생신청에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이는 기획부도 이후 회생제도의 틈새를 이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며, 여기에는 이를 돕는 브로커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