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칼럼] 헛배 불리는 계절
권희용
nw2030@naver.com | 2014-03-31 11:26:03
기뻐해야 할 일이다. 소득이 늘어나 더 잘 살게 되었다는데 좋아 할 일이 분명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반응이 영 시원찮다. 제일먼저 시비의 초점이 되는 것이 미국식 셈법을 동원 것이란다. 그래서 3%가량이 더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이전까지 국민총생산(GDP)계산에서는 연구개발(R&D)관련비용은 제외되어왔다. 그런데 이번부터는 이 항목이 들어감에 따라 수치가 불어난 것이다. 게다가 방산제품인 무기류도 함께 포함돼 평가항목에 넣어 발표한 것이 이번 국민총소득이다.
이번 산출기준에서는 그밖에 오락, 드라마, 제작비 관련비용도 반영되었다. 기술이나 지식재생산물의 경우는 단순비용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자본재라는 개념에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새 기준이 생긴 것은 지난 2008년 유엔이 정한 것이다. 이보다 미국이 제일 먼저 이런 계산법을 사용해왔던 것이다.
문제는 소득이 높아졌다는데 어째서 살기가 더 팍팍해 졌느냐는 것이다. 계산법을 달리해서 국민무마용으로 급조한 것은 아니냐는 볼 멘 소리가 퍼지고 있다.
공장이 팍팍 돌아가고 소비가 펑펑 늘어나는 이른바 호경기가 이어져서 마침내 국민소득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나날이 경기호전 기미는 없는데도 계산법만으로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꾸며낸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소리이다.
어릴 적 이야기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로 꼽히던 시절이었다. 미국이 호화찬란하게 잘사는 나라였고, 작지만 꼼꼼하게 잘산다던 스위스 얘기가 나오면 눈망울을 크게 뜨고 무슨 동화 속 이야기를 듣는 냥 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혹여 우리나라가 3만 달러 소득을 올릴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행여 그런 시절은 우리가 죽고 나서도 수십 년은 더 지나야 가능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눈앞에 닥쳤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벅차야할 감격이 아예 없는 것일까. 3만 달러가 성에 차지 않아서 일까. 상대적 빈곤 때문에서 일까.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 중 큰 까닭이 있다. 3만 달러가 국민개개인에게 골고루 스며들지 않아서 일게다. 공평할 수도 없지만, 개인별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일 터다.
이런 격차를 줄여 골고루 국민 삶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일이 정치가 할 일임을 안다. 아니나 다를까 영민한 정치가들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정치의 계절에 때맞춘 행보겠지만, 아쉬운 국민입장에서는 복음과도 다르지 않다.
당장 새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거대 야당이 국민을 사로잡을(?)만한 법을 만들어 외면 속에서 생명을 거두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고 나섰다. 가난하고, 춥고, 배고파 서러운 이들이 없는 나라 만들기에 야당이 앞장설 요량 같다.
다른 당이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무상지원 하겠다고 나설게 뻔하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등에서 비롯된 파급효과가 얼마나 컸는지는 너무나 잘 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느 지방 도백으로 출마하겠다던 인사가 나오자마자 무상버스제공을 공약하겠노라고 목소리를 키우는 바람에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다.
불과 며칠을 못가 같은 집안 식구들에게도 뭇매를 맞고 나 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 바람에 치솟던 인기도 젖은 옷처럼 내려앉았다. 선거가 공약싸움인 것은 맞다. 하지만 실현가능성이 낮은 공약으로 나선다면 게임은 애시당초 진 싸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헛배불리는 계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치가들이 노리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의 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덤벼들어야 한다. 국민의 헛배만 불리고 당선 후에는 제 식구목구멍만 챙기는 후안무치형 인물을 뽑아서는 안 된다.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