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칼럼] 달이 기울면 찰 날이 오듯이…

권희용

nw2030@naver.com | 2015-03-20 16:43:59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전 국정신문 편집장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대화 끝에 문득 볼펜을 꺼내 글을 써 건넨다.

月到天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월도천휴여본질 유경백별우신지)였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글 편에 나오는 문장이란다. '달은 천 번 이지러져도 본바탕이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는 뜻이다.


친구와 나누던 대화는 요즘 정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는 경제회복 관련 정책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써 준 글귀였다. 한마디로 나라경제 걱정에 너무 골몰하지 말라는 의미다. 물론 늙었으니 몸 걱정이 우선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만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경제가 어지러운 형국에 빠져있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우리나라도 침체일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이 이지러진다한들 본바탕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이, 머지않아 우리경제형편도 역시 좋아질 날이 온다는 것이다.


조금만 참다보면 역경을 이겨내고 꺾였던 버드나무에서 새 싹이 돋는 날이 온다는 믿음을 잊지 말자는 말을 친구는 글귀를 빗대 웅변하고 있었다. 문득 입이 말라 차탁에 놓인 물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누군들 모르겠는가. 달이 차면 기울고, 기운 달이 또 찬다는 것을. 아울러 버드나무가지를 백번 꺾어 심어도 새 가지가 돋는 이치를 어찌 모를 소냐! 그 훤한 소리를 이 지경에서 하는 그가 밉살머리스러워 목을 축인 것이다.


여유 있는 이들이야 일 년, 아니 삼년인들 기다리지 못한 까닭이 있겠는가. 문제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진짜 서민들의 삶이 문제다.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민초들 말이다. 바로 그들의 생계가 당장 걱정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경기부양책은 '세월아 네월아'식 타령조처럼 느껴진다. '이것을 하면 저것이 좋아진다.'는 식이다. 기업이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주면 소비가 진작돼 경기부양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말이야 지당한 소리다. 봉급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당연히 펑펑 쓸 게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 서민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겠다는 발상을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친구의 글귀를 본 일행의 심정은 하나같이 돌 씹은 표정이다. 그때까지 버틸 힘이 없는 게 서민의 형편이라는 것이다. 당장이 문제라는 거다. 하긴 정부라고 해서 없는 돈 풀어 마냥 국민들에게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은 당장 소비하라고 국민들에게 돈을 풀었다. 그런데 국민은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고만 있었다. 시장에 나가 펑펑 쓰라고 한 돈을 국민들은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나라경제가 정체할 수밖에. 우리가 그런 형편에 와 있다. 어쩌면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지 알다가고 모를 일이다. 일본의 20년 불황을 고스란히 밟아나갈 형국이다. 제제다사들이 나서서 그 길을 벗어나가겠다고 의연히 나서는 사람들이 없다. 여전히 대통령이 못마땅하다거나 정부의 누가 나쁘다는 소리는 하면서도 난국을 헤쳐나 갈 묘수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게 대한민국이 처한 팔자다.


경제도 난국인 형편에 외교도 심각하다.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도 중국도 우리는 내치지 못 할 강대국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중국의 공격을 막아낼 무기를 사라고 강요(?)하고 중국은 그 무기가 결국 자국을 공격하는 무기라고 들어주지 말라고 우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사정을 만천하에 내놓고 지혜를 구하지 않던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고위층이 동시에 입국하자 당면문제라며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어쩌자는 것인가. 양 대국의 속셈을 모두 채우기엔 능력이 없는 우리다. 그러나 안 채워서는 안 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기구하기 짝이 없는 나라가 또한 우리나라다. 이런 문제를 일찌감치 내놓고 국민들과 대화를 했을 수는 없었을까. 이른바 소통을 했으면 뭔가 다른 국면을 맞이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덜 당황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백번을 꺾어도 새싹이 돋는 버드나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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