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감동은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1-08-05 15:47:07

다양한 케이블 채널이 활성화되면서 방송 미디어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공중파에서도 볼 수 없는 참신한 고정 코너들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이미 익숙하다. 젊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는 ‘롤러코스터’라든가 ‘화성인 vs 화성인’ 등은 그것이 공중파에서 방송되고 있는 것으로 착각될 정도로 시청자의 폭이 넓다.

매주 토요일 밤 시청자를 TV 앞으로 모이게 하는 케이블 채널 tvN의 ‘코리아 갓 탤런트’는 특히 성공적인 이벤트다. 공개방송 때마다 청중은 구름처럼 몰려든다. 6월부터 전국 예선 투어를 시작해 7~8월 동안은 토요일 밤마다 생방송으로 세미파이널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별별 재주꾼들이 많구나 싶게,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그들의 재능(탤런트)으로 경합하고 있다. 예선 상위권 입상자들의 경쟁은 순위를 가리기 어려울 만큼 치열하다. 치열한 재능경쟁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출연자들이 갖고 있는 인생 역정이다. 재능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어려운 삶 속에서도 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다는 '스토리'가 심금을 울린다.

시청자를 특히 사로잡은 재능인은 올해 스물두 살의 최성봉이란 청년이다. 그는 대전지역 예선을 통과해 전국 32명의 합격자들이 펼치는 세미파이널에 진출했다. 지역 예선 당시 이 청년은 매끄러운 바리톤 음색으로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불러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의 질문을 통해 그의 굴곡진 인생역정이 밝혀졌다. ‘세살 때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구타 등을 피해 다섯살 때 도망나온 뒤 공원이나 역전 광장 등에서 노숙하며 홀로 살아왔다. 폐품을 주워 팔고 껌을 팔았으며, 나이가 들면서 신문팔이와 막노동을 했다. 그러면서도 노래를 알게 되면서 그 하나를 위안삼아 살아왔다.' 이것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이상하다. 그가 귀동냥만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외국어 성악곡을 불렀는데도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노래를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가 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질문도 없었다. 성악곡인 넬라 판타지아는, 아무리 곡조가 일반에게 익숙하다 하더라도, 귀동냥만으로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소화해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어쨌든 시청자들은 경탄했다. 그의 인생역정도, 매끈한 천상의 목소리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한국의 폴 포츠, 또는 수잔 보일이 발견됐다고 환성이 터져 나왔다. 유튜브에 올라온 그의 출연 장면은 1백만 클릭을 단시간에 넘었다. 미국방송 CNN에도 최성봉 스토리가 소개됐다. 그리고 7월 네째주 토요일 세미 파이널에서 그는 시청자들의 압도적 지지로 결선행 티켓을 얻었다. 시청자 문자투표의 절반 넘는 표를 그가 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최성봉씨가 사실은 지역의 예술고등학교에서 성악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속았다’는 비판이 일어난 것이다. 알고 보면 문제는 주최측의 의도적 은폐에서 비롯됐다. 방송사 홈피의 '무삭제판' 방송분을 보면, 최성봉은 그런 고생 가운데서도 혼자서 중고등학교 입학 검정고시를 차례로 통과했고, 대전예술고등학교 성악과를 다녔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런데 방송사가 성악을 전공했다는 부분을 실제 방송 송출분에서 삭제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조금이라도 성취한 부분을 최대한 감춤으로써 최성봉의 고난극복 스토리를 좀더 드라마틱하게 부풀려 보이고 싶어서였다고 밖에 추정되지 않는다. 어줍지 않은 연출이다.

청년 최성봉이 다섯살 때부터 혼자 살기 시작해 밑바닥을 전전하면서도 음악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노래를 좀더 잘 하기 위해 지역 성악가를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그의 안내를 받았거나 어쨌거나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 성악을 전공했다는 얘기는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 스토리가 된다. 어떤 유력한 스폰서를 만나 지금은 호강하고 산다는 것도 아니다. 예고를 다니면서도 레슨 선생을 구할 형편이 안 돼 학교를 중단하려고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겹게 졸업은 했다지만 남들처럼 대학 성악과에 진학하지도 못했다. 여전히 막노동이나 다름없는 일용직 정도의 일감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얻은 장애도 아직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방송사가 예고 졸업사실을 첫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은 것은, 그의 드라마틱한 고생담을 더욱 증폭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명예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가 거짓말쟁이로 오인 받는다면 시청자들은 그를 외면할 수도 있다. 세미파이널에서 최성봉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시청자들의 압도적 지지에도 기뻐하는 내색이 없었다.

8월 마지막 주로 예정된 최종 결선에서 최성봉은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번에는 그가 홀가분하게, 청중과 시청자들과 세계로부터의 열렬한 환호에 진정 당당하고 기쁜 마음으로, 최상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사의 연출방침 수정과 신속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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