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금융 공약, 포퓰리즘 난무" 비판
"수수료·이자율 인하, 금융질서 교란 위험"
유상석
listen_well@sateconomy.co.kr | 2012-11-16 14:59:18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선심성 공약들이네요”
한 시중 은행 실무자가 내뱉은 탄식이다. 주요 대선주자들의 금융부문 정책공약이 드러나면서 금융권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데 선심성 공약들로 인한 정책 위험까지 더해지면 외국인 투자자 이탈은 물론 성장 기반이 크게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수수료ㆍ이자율 인하’… 서민 문턱 되레 높아질 우려도
각종 수수료 인하와 이자율 인하는 전통적인 선심성 공약으로 꼽힌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카드 가맹점 수수료와 은행 수수료 인하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구체적으로 중소가맹점의 카드 수수료를 1% 이하로 낮추겠다고 제안했다. 중소가맹점 수수료율을 1.5%로 낮추겠다는 정부의 수수료 체계 개편안이 채 시행되기도 전에 또다시 수수료 인하를 들고 나온 셈이다.
이자율 인하 역시 필요성은 있지만,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과속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나란히 대부업을 포함한 모든 법정이자율의 상한선을 25%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대부업 이자율 상한선인 39%와 비교하면 무려 14%포인트나 낮아지는 셈이다.
제2금융권의 한 실무자는 “대부분의 대선 공약에 당위성은 있으나 구체성이 없다”며 “이자율 인하를 내세우면서 불법사채 시장이 커지거나 오히려 서민의 대출 문이 막히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단 한 번이라고 생각해 봤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후보의 18조원 국민행복기금 조성이나 문재인 후보의 공정대출법, 안철수 후보의 2조원 파산자 지원 펀드 등은 그림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론 도덕적 해이와 기존의 금융질서를 크게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여기에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서민금융 역할론에 대한 압박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내년 수익성은 물론 금융산업의 성장 기반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로 수익성이 나빠지고, 경기침체로 대손비용도 늘어나는 마당에 정책 위험마저 더해지면 아예 중장기 성장 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지주회사 고위관계자는 “은행의 이익이 많다고 난리인데 자기자본이익률(ROE)로 따지면 10%가 채 안 된다”며 “ROE가 계속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나고, 미래 투자 여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개인 빚, 국가가 갚는다’?
박근혜 후보는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322만명의 대출이자 부담을 낮춰주고, 부채 규모가 큰 대출자의 빚을 50~70% 깎아주겠다고 밝혔다.
18조원의 재원은 정부가 자산관리공사(캠코)에 운영을 위탁한 신용회복기금과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등을 바탕으로 채권을 발행해 조달하기로 했다. 공공 재원을 쏟아부어 대규모 원리금 탕감을 해주겠다는 방안이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는 2조원의 ‘진심 새출발 펀드’를 만들겠다고 했다. 펀드의 재원은 금융회사와 정부가 공동 출자한다.
안 후보는 이 돈으로 부양가족이 있는 가구주 1명당 최대 300만원씩 주택임차보증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금융회사와 정부가 세입자에게 임차보증금을 공급하는 셈이다.
재원만 놓고 보면 박 후보의 국민행복기금 규모가 더 크다. 안 후보의 진심 새출발 펀드도 정부 등의 보증을 붙여 채권을 발행하면 보통 10배(20조원)로 불릴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 재원은 결국 빚 부담이 무거운 사람에게 정부가 직ㆍ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소지가 다분하다.
일단 빚을 지면 언젠가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그릇된 기대감이 급속도로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함준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행복기금 18조원은 결국 공공채권을 활용할 텐데, 그러려면 엄격한 분류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에 대한 금전적 지원은 결국 ‘누구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 누구 호주머니로 넣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 만큼 재원 조달부터 형평성 시비 소지를 차단해야 하며, 지원 대상을 정하는 데도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대선 후보들은 기금 확보도 좋지만, 자금 조달 방식에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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