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블랙홀, '지방공기업'

도덕적해이·방만경영은 기본…파산제 도입 해야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09-20 16:48:46

태백시의 지방공기업인 태백관광개발공사가 2001년 설립 당시부터 추진해온 오투리조트 사업의 경우 대표적인 지방공기업 사업실패 사례로 꼽힌다. 공사는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태백시의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 현재 오투리조트의 누적채무는 태백시의 한 해 예산을 넘어설 정도로 불어나, 공사 측은 직원들의 임금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강원도 태백시는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위기관리위원회 제1차 회의가 끝난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칫하면 재정위기 단체로 지정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위원회는 이를 연말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재정위기 관리 단체로 지정되면 재정건전화 계획에 따라 부채를 갚아야 해 새로운 사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


태백시는 일본의 유바리시와 유사한 사례다.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시 역시 탄광이 문을 닫은 뒤 도시가 황폐화되자 이것저것 사업을 펼치다가 급격한 부채증가로 결국 2007년 파산을 선언했다.


역시 탄광도시였던 태백시도 도시 활성화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뒤 2001년 이를 추진할 태백관광개발공사를 만들었다. 탄광이 문을 닫은 뒤 폐허가 돼가는 도시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스키장과 골프장 등을 갖춘 ‘오투리조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무렵 태백시와 붙어 있는 정선군에는 강원랜드가 골프장과 스키장을 건설 중이었고, 인근 삼척에서도 골프장 용역이 진행 중이어서 중복투자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그래서 당시 한국광해관리공단이나 강원랜드 등과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제안 받았으나 태백시는 이를 거절했다.


오투리조트는 건설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공사비는 애초 예상한 3000억여원보다 50% 이상 증가했고 골프 회원권과 콘도는 제대로 분양되지 않아 태백시의 보증으로 거액을 차입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또 건설 과정에서 비리가 드러나 전 태백시장을 비롯한 7명의 관련자가 무더기로 사법 처리되기도 했다.


작년 말까지 태백관광개발공사는 부채는 3500여억원으로 불어 자본금의 2044%에 이르렀다. 한해 예산이 2400억여원인 태백시는 태백관광개발공사 출자금과 지급보증액 등 2200억여원의 손해를 보게 됐다. 개발공사가 추진한 대규모 사업 하나가 삐끗하는 바람에 재정위기가 초래된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오투리조트의 적자가 뻔한 상황에서 이를 사려는 민간 기업은 없는 상황인데도 태백시는 너무 싸게 팔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태백시는 다시 정부의 지원을 바라며 손을 내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태백시가 또다시 정치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며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고 넘어갈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경영에 제동을 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 부채 이자도 못내는 지방공기업들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지자체들은 낮은 재정자립도를 극복하기 위해 각종 공기업들을 세우며 수익성을 꾀했지만 대부분은 비리로 얼룩지고 수익은커녕 채무만 급증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사실 재임을 노리는 지자체장들의 무분별한 개발 공약 탓이 크다.


2011년 행정안전부 지방공기업·공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373개 지방공기업의 예산규모는 지난 2010년 말 기준 39조9500억 원으로 지자체 총예산의 30%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에 따라 지방공기업의 ‘마구잡이식’ 설립에 따른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돼왔다.


실제 2005년 23조5000억 원이던 공기업 부채는 62조8800억으로 급증했다. 여기저기 땅을 파헤치고 건설에 매진해온 도시개발공사가 주범이다. 전국 16개 광역 자치단체의 도시개발공사 부채는 지난 6년 동안 7배로 증가했고 현재 전체 지방공기업 부채 중 60% 가까이 차지한다. 그중 서울·경기·인천 도시개발공사 부채가 4분의 3 이상이다.


작년 지방공기업 가운데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한 곳은 전체 5분의 1 수준이다. 또 적자 공기업은 183개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곳도 24개나 된다.


삼성경제연구원은 지난 6년간 늘어난 공기업 부채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데 2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부채의 절대 규모도 중요하지만 부채가 단기간에 급격히 증가해 유동성을 압박하고 지방 세입·세출 여건을 동시에 악화시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 행안부 “설립부터 까다롭게”
정부는 앞으로 태백관광개발공사와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지방공기업 설립절차부터 까다롭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가 지방공기업을 설립하고서 충분한 타당성 검토 없이 수익사업에 나서는 것을 막고자 설립검토 단계부터 전 과정을 공개토록 하는 ‘지방공기업 설립 운영기준 개정안’을 각 지자체에 내려 보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지방공기업을 설립하려는 지자체는 설립타당성 검토 용역 결과와 주민공청회 결과, 1·2차 시·도 협의결과, 설립심의위원회 위원 위촉결과 등 공기업 설립절차의 모든 과정을 자치단체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야 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지방공사 설립과정을 모두 공개하게 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공공의 감시를 받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성과로 내세우고자 무리한 사업추진을 하는 데 큰 제약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자체는 또 지방공기업 설립 타당성 검토 용역이 끝나면 검증심의회를 열어 용역결과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공사채 발행을 계획한 경우 차입금 상환계획의 적정성도 분석해야 한다.


지자체는 지방공기업 설립에 대한 시·도의 의견을 원칙적으로 반영해야 하며, 시·도 제시의견 처리결과는 설립심사위원회와 지방의회에 제출해 공기업 설립심의와 조례제정안 의결 시 검토 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사업을 신설공기업에 위탁하는 경우 관련 공무원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자구책을 취하는 것을 보면 뒷북을 치는 느낌이다. 재정이 바닥났다는 지자체들의 잇따른 호소에 이제서야 엉덩이를 들어올린 정도다. 물론 행안부도 뾰족한 수는 없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 대해 투자 심사를 강화하고 사후 감사를 통해 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점검하는 것 정도다.


이에 대해 강병규 한국지방세연구원장은 “지방자치의 본래 의미인 자율과 책임을 살리기 위해 지방세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며 “중앙정부는 방만경영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엄격하게 책임을 물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 파산제 도입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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