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장 속 숨겨진 꽃들의 싸움 ‘화투’
세시풍속.월별 축제.풍습 등 ‘日 문화 축소판’
장해리
healee81@naver.com | 2007-05-04 00:00:00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놀이 ‘고스톱’
성인들이 여가시간에 가장 즐겨하는 게임이며 전 국민의 70%가 즐긴다는 화투는 대한민국을 ‘쓰리고’에 웃게 하고 ‘피박’에 울게 하는 대표적인 놀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화투에 담긴 정확한 비밀을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김덕수 공주대학교 사범대 교수는 최근 공개한 ‘화투의 비밀’이라는 논문을 통해 “화투는 일본 문화의 축소판”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전체가 고스톱 공화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월별로 각각 4장씩 총 48장으로 이뤄진 화투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 1월 - 송학
세칭 ‘삥’이라고 불리는 송학의 화투 문양을 보면 1마리의 학, 1/4쪽 자리 태양, 소나무, 홍단 띠가 나온다.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태양은 신년 새해의 일출을 나타낸다. 소나무가 그려진 이유는 1월1일부터 1주일 동안 소나무를 현관 옆에 장식해 두고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는 일본의 대표적 세시풍속인 가도마쯔 행사에 소나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 2월 - 매조
2월에 시작되는 일본의 매화 축제로 인해 2월에 해당하는 매조에는 꾀꼬리와 매화가 나온다. 매화 축제는 이바라키현 미토의 가이라크 매화 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매화공원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꾀꼬리는 ‘우구이스다니’라는 도쿄의 지명에도 남아 있을 만큼 일본인에게 매우 친숙한 새다.
# 3월 - 벚꽃
일본의 벚꽃 축제는 3월 최고 절정을 이룬다. 그래서 3월의 화투 문양은 온통 벚꽃으로 가득 차 있다. 삼광의 벚꽃 밑에 그려진 것은 ‘만막’이라는 일종의 천막이다. 이는 지금도 일본인들의 경조사 때 천막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는 만막 속에서 벚꽃을 감상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상춘객들이 많지만, 삼광 화투 문양에서는 상춘객들을 화투 화단에 숨겨놓아 그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 4월 - 흑싸리
대다수 사람들이 4월 화투 문양을 흑싸리로 알고 있지만 사실 등나무 꽃이다. 흑싸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4월은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며 등나무는 일본 전통시의 시어로 쓰이는 여름의 상징이다. 여기에 그려진 두견새 또한 일본에서 시제로 자주 등장할 만큼 일본인에게 사랑 받고 있는 새다.
# 5월 - 난초
5월 화투 문양도 난이 아니라 붓꽃이다.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이며, T자 모양의 막대와 3개의 작은 막대기는 각각 ‘제도용 자’와 ‘딱성냥’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실제로 T자 모양의 막대는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 만든 산책용 복재 다리며, 3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 6월 - 모란
6월 화투 모양은 모란꽃이다. 모란은 고귀한 이미지로 일본인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꽃과 나비하면 모란꽃을 떠올릴 정도로 동양에서는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쳐주기 때문에 일본화에는 모란과 나비가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화에서는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이 오래된 관례다.
# 7월 - 홍싸리
7월 화투 문양은 싸리나무다. 원래 싸리나무는 녹색이지만 7월 문양에서는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처리돼 있다. 이는 화투 제작자의 단순 실수로 추정된다. 또한 멧돼지는 근대 일본에서 성행했던 멧돼지 사냥철이 7월이었기 때문에 등장한다.
# 8월 - 공산
8월 화투 문양엔 산, 보름달, 기러기 3마리가 등장한다. 이는 8월이 일본에서 ‘오츠키미(달구경)’의 계절인 동시에 철새인 기러기가 대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임을 알려주는 일종의 문화적 암호다. 검은색 부분은 산이며 흰색 부분은 하늘을 의미한다.
한국 화투엔 산에 억세풀이 없고 홍색이나 청색 띠도 없는 반면 일본 화투엔 억세풀이 그려져 있다. 이는 일본은 8월이 1년 중 가장 바쁜 추수철이기 때문이다.
# 9월 - 국준
9월은 일본에서 국화 축제가 열린다. 9월 화투 쌍피엔 ‘목숨 수(壽)’가 새겨진 술잔이 등장한다. 이는 9세기경 헤이안 시대부터 유래된 ‘9월9일에는 국화주를 마시고 국화꽃을 덮은 비단옷으로 몸을 씻으면 무병장수 한다’는 일본의 전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특히 국화는 일본의 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때문에 쌍피가 피와 10점짜리로 동시에 활용될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이다.
# 10월 - 단풍
일본에서 10월은 전통적으로 단풍놀이의 계적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다. 수사슴과 단풍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계절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 11월 - 오동
속칭 ‘똥광’으로 물리는 오동은 가장 각광받는 화투 패다. 오동의 광은 광으로도 쓸 만하고, 피 또한 오동만이 유일하게 3장이다.
오동의 광에 등장하는 닭 모가지 모양은 평범한 새가 아닌 막부의 최고 권력자의 쇼군의 품격과 지위를 상징하는 봉황새의 머리다. 그 밑의 검은색 싹은 오동잎으로 이 또한 쇼군을 상징한다. 오동잎은 일본 화폐 500엔 주화에도 들어가 있다.
# 12월 - 비
12월의 화투 패는 일본의 ‘오노의 전설’을 묘사해 그려 넣은 것이다. 갓 쓴 선비는 ‘오노노도후’라는 일본의 귀족으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다.
비 광에 등장하는 선비의 모습은 오노가 붓글씨에 몰두하다 싫증이 나자 머나먼 방랑길을 떠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오노는 수양버들에 기어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개구리의 광경을 보고 “미물인 저 개구리도 저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내가 여기서 포기해서 되겠는갚라며 깨달음을 얻은 뒤,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 붓글씨 공부에 정진했다고 한다. 한국 화투는 일본 화투에 나오는 이 선비의 갓 모양만 일부 변형시켰다.
또 쌍피의 문양은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쪽문’으로서 ‘라쇼몬’이라고 일컬어지며, 쌍피로 대접받는 것은 이 문에 붙어 있는 귀신을 대접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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