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이제 숨기지 말자
우울증.조울증 앓는 현대인…“감기처럼 생각하라”, 링컨 등 정신질환 이겨낸 인물…‘열린 시각’ 필요
토요경제
webmaster | 2007-05-04 00:00:00
요즘 신문이나 TV를 통해 반인류적인 범죄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수 있다. 그들은 원래부터 특별한 정신세계를 갖고 있었던 것일까?
정신질환자들은 처음부터 정신질환자가 아니었으며 끔찍한 범죄나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다. 희귀병과 유전적인 병이 아니고서는 모든 병은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고 조기치료가 가능하다
그 중 정신질환은 조기에 발견이 어렵고 자신이 정신질환이라는 것을 안다 해도 잘못된 인식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아 비극적인 일까지 일어날 수 있다.
# 우울증
현대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정신질환은 우울증이다. 우울증과 우울한 기분을 구분돼야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하려는 일이 좌절됐을 때, 혹은 도무지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을 때 누구나 심하게 우울해 질 수 있다. 당연히 이것은 병이 아니다.
정신질환은 정신의 병이 아니라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 세르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들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게 분비돼 초래되는 뇌의 병이다. 즉, 인체의 병이 어떤 장기의 이상으로 생기는 것처럼 정신질환도 뇌라는 장기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 없이 기분이 우울해지고 만사가 귀찮아진다면, 이것은 기분을 조절하는 뇌 신경전달물질의 활성도가 떨어져서 생기는 병으로 인식해야 한다. 전 국민의 5% 정도가 현재 치료를 받아야 할 우울증 환자며, 20% 정도는 살아가면서 한번 이상은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우울증은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감기에 비유할 수 있다. 치료를 받으면 감기처럼 쉽게 나을 수 있고,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기 때문에 숨기거나 주저하지 말고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단순히 우울한 기분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으로서의 우울증은 자력으로 이길 수 없으므로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감기가 깊어지면 폐렴을 비롯한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하고 그것이 원인이 돼 사망할 수 있는 것처럼 고층아파트에서 자기 자식을 데리고 뛰어내리는 자살의 진짜 이유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의 15~20% 정도는 자살을 시도하며, 이 중 3%는 자살에 성공한다. 일반적으로 여자 환자가 자살을 더 많이 시도하지만 동맥절단 시도 등과 같이 소극적인 방법으로 성공률은 낮은 편이며, ‘투신’ 등과 같은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남자들은 여자보다 자살률이 2배 정도 높다.
병원에서는 1차적으로 약물(항우울제)치료를 하며 80~90%의 환자는 증상이 호전된다. 이 같은 효과는 약 복용 2~4주 이후부터 나타나며, 증상이 좋아졌다고 의사의 지시 없이 약을 끊으면 재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최소 6개월간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게 중요하다.
# 조울증
우울증과 구분해야 할 질환으로 조울증이 있다. 기분이 극단적으로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조울증은 조증기엔 너무 기분이 좋고, 자신감이 넘치고, 일이나 사업에 강한 의욕과 집착을 보이게 된다. 주위가 산만해지며 수면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것도 특징이다.
이때는 낭비벽이 심해지거나, 무모한 투자를 하거나, 부동산을 싼 값에 팔아 치우는 등 재산상의 불이익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이 전지전능자가 되는 환상에 빠지거나, 자신을 칭찬하는 환청을 듣는 등 정신분열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같은 조증은 우울증과 교대로, 또는 동시에 나타나는데 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은 보통의 우울증보다 증상이 훨씬 심하다.
조울증은 인구 100명당 1명 꼴로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 더 나타난다. 환자들은 병원행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살률이 10% 정도로 높으므로 반드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조증기엔 항정신병약물이나 항경련제를, 우울증기엔 항우울증제를 사용한다. 심하면 전기충격요법을 쓰기도 한다. 비교적 치료효과가 좋지만 재발도 잦은 편이므로 가족 등 주변 사람의 끊임없는 관찰이 필요하다.
# 기타
그 밖에 정신질환은 수없이 많다. 비교적 흔한 알콜중독 환자는 불안, 우울, 망상 등의 정신과적 증상을 보인다. 피해망상이나 질투망상 등 망상장애 환자는 자신의 망상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를 도우려는 사람들을 의심하고 거부하는게 특징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나 대구지하철 참사같은 혹독한 경험을 한 뒤 우울-불안해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도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성 도박증, 의사가 병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하는 건강염려증, 거식증, 폭식증, 도벽, 방화벽 등 모두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다.
미국 정신질환자 지지모임에서 제작한 액자가 있다. 액자엔 링컨, 베토벤, 도니제티, 고호, 미켈란젤로, 톨스토이, 뉴튼, 헤밍웨이, 처칠 등 20여명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다.
액자엔 그 보다 작은 글씨로 ‘정신질환을 극복하고 우리 인생을 윤택하게 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으며, 그 보다 더 작은 깨알 같은 글씨로 ‘이들은 모두 정신분열증 또는 심한 우울증을 경험했던 환자’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정신질환을 앓는 수많은 링컨과 베토벤, 미켈란젤로가 ‘미친놈’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폐인이 되고 있다. 정신질환자들은 이제 더 이상 미친 사람이 아니다.
당뇨병 환자나 심장병 환자처럼 치료가 필요한 병자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세상의 시각은 너무나 닫혀 있다.
앞으로 세상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는 한 영화와 같은 반인류적인 범죄와 소리 없는 고함을 지르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외로운 사람들’은 계속해서 우리 사회에 넘쳐날 것이다.
(소아전문메디컬 전문의 Pideli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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