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소중한 ‘존엄성’

파지아 쿠피 -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03-09 10:29:52

“아이들과 헤어질 때, 나는 내가 살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나라 최빈민 지역의 대표로서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사명과 사랑스런 딸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내게 의지하고 있는 그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 결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프롤로그中>


이 책의 제목이자 저자이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파지아 쿠피’는, 남편 하나에 아내가 일곱이던 전통 무슬림 집안의 스물세 명의 아이 중 열아홉 번째 아이로 태어나던 날부터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방치됐지만 지독한 화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쌀알들이 고슬고슬하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국자로 얻어맞는 어머니, 로켓포가 쌩쌩 날아다니던 길고 긴 내전의 세월, 시장에서 고무관으로 여자를 무참하게 매질하던 탈레반 대원들. 그녀가 35년간 경험했던 부당함은 사회 개혁에 대한 신념의 밑바탕이 됐다.


이후 그녀는 집안 최초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허락받은 여자가 되었고, 아프간 의회의 일원이자 여성 및 아동의 권리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대변인으로 성장한 그녀는 정부의 부패와 무능력함을 거침없이 비판하면서 테러의 대상이 되었고, 하루하루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인 ‘믿음·가족·정의·존엄성’을 위해 이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30여 년간 이어진 나라의 갈등이 아프간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역경이 변화에 대한 결의와 용기를 얼마나 강하게 벼려낼 수 있는지 감명 깊게 설명하고 있다.


◇ 당연한 가치가 사라진 땅, 아프가니스탄


2011년 한 해, 소위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거대한 시위의 물결이 중동 전체를 강타하였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의 성공으로 인해 중동의 여러 국가에서 기존의 지배 체제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권위와 인습에 반기를 든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제약해온 남성중심의 국가를 향해 투쟁을 시작했고 그 정신은 세계 곳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성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아내를 살해하고, 강간을 당한 부인에게 간통죄를 물어 고발하고,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여성의 코를 자르는 등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져 죽음의 문턱까지 갔고, 폭력의 35년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내 아이들의 교육과 여성의 인권을 위한 투쟁을 하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파지아 쿠피’.


이 책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폭력의 현장에서 그녀가 보낸 메시지는 막내딸인 동시에 두 딸의 엄마로서 세상의 모든 딸에게 보내는 희망의 편지이자, 직업적인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나라가 다시 깨어나길 바라며 써내려간 선언문이다. 파지아 쿠피 저, 나선숙 역, 1만6000원, 애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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