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내 마음을 찾는 사람들
정해용
peacepress@hanmail.net | 2012-02-21 09:11:36
그렇게 걸어 내려간 사람들이 강변에 다시 널찍한 간격으로 늘어서더니 강 쪽을 바라보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있다. 두 팔을 벌려 아침 해를 품안에 껴안는 모양새를 그리는 사람도 있다. 자연과의 일체를 꿈꾸며 명상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100년 전 미국의 한 지성인이 도시생활을 마치고 매사추세츠 인근의 월든 숲으로 귀향을 했다. 작가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데이비드 소로우라는 사람이다. 그는 숲속에 가장 간촐한 초막을 짓고 홀로 살았다. 그는 매일 숲길을 산책하며 개발주의 우상에 사로잡힌 인류문명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가 매일 작성하는 간결한 명상서간이 당시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얇은 저널에 연재됐다. 그는 ‘앞으로 100년 후에는 마음대로 숨 쉴 수 있는 숲과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는 사과나무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탄식하며 현대인들이 도시화와 개발주의의 미몽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의 말대로,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인류는 평화롭고 너그러운 자연을 더 이상 누리기 어려운 시대를 맞고 있다. 과일나무는 단지 값을 치러야 먹을 수 있는 개인 농장에서만 자라고, 숲길을 걷고자 해도 어느 누구 소유의 영지거나 사유지를 통하지 않고는 걸을 수가 없다. 어쩌다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다면 어김없이 그 곳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대 조용하고 쾌적함이란 이미 찾아볼 수 없다. 인간에게 소유되지 않은 자연, 점령되거나 개발되지 않은 숲은 이제 인간의 발길이 닿는 곳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모처럼 도시에서 벗어나 시골로 향한다 해도, 이들이 의식주 걱정을 벗어던질 수는 없다. 이제는 아무 곳에서도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쉽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이 모든 변화가 불과 지난 100년 사이에 벌어졌다). 시골로 내려가면서 의식주를 자급하자니, 역시 돈벌이의 궁리를 같이 해야 한다. 모든 경쟁과 긴장을 벗어나서 유유자적 한가로운 삶을 위해 택하는 것이 귀향의 목적이라면, 돈벌이 궁리를 벗어던지지 못한 귀향은 진정한 귀향의 의미가 없다. 데이비드 소로우는 예전과 같이 먹고 입고 편의시설이 잘된 집에 사는 것을 전적으로 내던졌다.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경제의 수단을 바꾼다는 것 이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10여년 전 한국의 덕망 있는 명상가들이 계보를 초월하여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있다. 그들은 현대 도시 문명 속에서 인간을 회복하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찾기 위한 명상운동이 필연적으로 확산될 것을 인식하면서 두 가지를 경계하였다. 첫째는 명상운동이 상업화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운동이 신비주의나 교조주의로 흐를 가능성이다.
현대의 어느 나라 학교 교육에서도 마음에 대한 공부나 종교, 영성의 영역은 프로그램에 들어있지 않다. 최소한 윤리도덕에 대한 지식마저도 입시과목에 밀려 교과서 안에나 사장되어 있을 뿐이다. 이런 속에서 기초 지식 없이 특정한 마음공부 영성훈련에 빠져들다 보면 엉뚱한 헛길로 가기 십상이다. 특히나 자아의식이 희박한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비극도 일어난다. 어린 자식 삼남매의 감기를 금식과 안수기도로 고치겠다며 채찍질하다 저승으로 보낸 무지한 종교인의 행위도 그 연장선상에 놓고 볼 수 있다.
어떤 형식, 어떤 도(道)가 우리에게 구원과 평안을 주거나 평화를 보장한다는 말은 믿을 수 없다. 내 마음과 정신을 내가 스스로 알며 컨트롤하지 못하고 단지 무슨 도에 맡겨서 천국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찾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변덕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라.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고 천국도 만든다. 그러니 마음에 쫓아가지 말고 항상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라.”
법구경에 있는 말이다.
정해용 상임 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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