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를 위한 나라는 없다

눈 크게 뜨고 권력의 ‘쌩얼’을 마주하라

전성운

zeztto@sateconomy.co.kr | 2012-08-16 19:45:18

실직한 가장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구멍가게라도 하고 싶어도 대기업의 기업형 수퍼마켓(SSM)에 등골이 휜다. 골목에는 통닭집, 떡볶이집이 넘쳐난다. 획일화된 교육을 받으며 외우고 찍어 대학에 들어가면 엄청난 등록금 앞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빚의 노예가 된다.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에 또 다시 스러지고, 그 중소기업은 또다시 우리를 착취하고 있다.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푸어, 대한민국 국민의 99%는 ‘푸어’로 전락했다.


1995년 처음 태어난 뒤로 <경향신문>의 시사만화 ‘장도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우리, 99%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소시민이고 농민이었으며 우리 부모님이자 자식이었다. 서민이 느끼는 애환과 분노, 희망과 절망을 장도리는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살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1%를 위한 나라에 살고 있다. 그러나 99%를 위한 나라는 없습니다. 이것이 장도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명박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무관용’의 원칙을 집행, 명박산성을 쌓았고, FTA를 강행했고,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으며,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집회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방송은 장악됐고 종편은 혜택의 단물을 마셨다. 민간인은 사찰 당했고 선관위는 공격을 받았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저축은행에서 돈을 받았지만 힘없는 서민들은 돈을 떼였다. 국토가 찢겨나갈 때 국민들은 피 눈물을 흘렸다.


장도리의 작가 박순찬 화백은 시사만화의 풍자가 필요치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장도리가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득권은 변함없이 권력을 누려왔다. 이래서야 도무지 장도리의 비판과 풍자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장도리의 미는 현실에 대한 비판에만 있진 않다. 우리는 가끔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을 착각하곤 한다. 현실이 현상 그대로 우리의 눈에 비추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어묵꼬치를 먹고 국밥을 먹는다고 해서 서민의 편인 것은 아니다. 정치인이 시장에서 상인의 손을 잡는다고 서민경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고 종종 착각한다. 왜곡된 현실을 제어하는 권력의 보이지 않는 손과 이미지에 우리는 쉽게 속고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는다. 어쩌면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미 우리는 참혹한 현실을 살아야 하는 99%의 늪에 빠져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반복되는 현실에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행동하는 것이다. 권력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권력의 속성을 알아야 잘못된 권력에 맞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장도리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지난 현실을 통해 권력의 화장을 지우고 쌩얼을 들춘다. 권력의 쌩얼, 추악한 사회의 쌩얼을 보는 것이 곤혹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을 똑바로 살펴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 1%를 위한 나라가 될 것인지, 99%를 위한 나라가 될 것인지 결정될 것이다. 99%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99%에 속해 있다는 현실을 인식할 때, ‘1%의 세력’이 천년만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우리 99%를 착취하는 것에 저항 할 수 있다. <나는 99%다>, 박순찬 저·그림, 1만3000원,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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