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상생경영의 ‘두 얼굴’

삼성계열사 부품업체 납품단가 최대 60%까지 부담하게 깎아

한정훈

hjh0760@empal.com | 2006-05-29 00:00:00

공정위, 불공정행위 조사 1년 넘게 ‘검토중’

“삼성 봐주기냐” 의혹 제기... 공정위 해명 급급


지난 24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대기업-중소기업간 양극화 심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완화하고, 나아가 서로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자리였기에 그 의미가 큰 행사였다.


아울러 이 자리에 참석한 재벌 총수들은 저마다 구체적인 협력사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협력안이 발표된 후 이틀만이 지난 26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 현장 직권조사를 통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이는 상생협력안에서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못한 사안이었던 탓에 주목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권 위원장의 발표와 달리 공정위가 중소 부품업체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기한 삼성 계열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방관 자세를 취하며 처벌하지 않는 등 '삼성 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견해가 적지않다.


특히 이날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삼성 봐주기’실태는 공정위를 확실히 꼬집는 내용으로 제기돼 권 위원장의 발표와 더욱 상반된 모습이다.


재계 일부에서는 “이로 인해 이번 청와대 회의에 대한 불신까지 초래되고 있다”며“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아울러 “대기업의 두 얼굴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는 반응이다.



상생협력 30대 그룹 확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인‘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가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주요 대기업 총수와 중소기업인, 경제단체장 등 약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그동안 산자부와 학계가 공동으로 추진해 온 ‘상생협력 발전모델’ 연구결과 발표 및 ‘상생협력 정책방향’에 대한 보고와 토론 순으로 이어졌다.


이번 회의에는 재계대표로 이건희 삼성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등 대기업 회장 20명, 강신호 전경련 회장 등 경제단체장 4명, 중소기업인 대표 2명이 참석했고, 정부측에서는 한명숙 국무총리, 정세균 산업자원부장관, 이상수 노동부장관,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기찬 카톨릭대 교수는 상생협력 발전모델 발표를 통해, 혁신주도의 지식기반 경제하에서 공급사슬이 기업경쟁력의 주요 결정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즉 모기업과 협력업체간 관계를 의미하는 공급사슬의 경쟁력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전제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공급사슬 경쟁력을 좌우하는 3가지 결정변수로 ▲협력업체 역량개발 지원 ▲신뢰구축 ▲열린 기업생태계 조성을 설정하고, 공급사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대기업의 협력업체에 대한 상생협력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주요 경영이론들과 국내외 사례 등을 통해 제시했다.


또한 김 교수는 상생협력이 ▲대기업의 일방적 희생이 아닌 동반성장을 지향하는 시장친화적인 상생협력과 ▲단기수익중시경영에서 탈피해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을 추구하고, ▲기업발전전략을 넘어 산업발전전략, 나아가 사회발전전략으로 확대 발전되는 멀리 보는 상생협력이 돼야 함을 강조했다.


정세균 산자부장관이 보고한 ‘상생협력 정책평가 및 향후 과제’에서는 앞서 발전모델에서 제시된 상생협력의 3가지 결정요소에 따라 먼저 상생협력 지원정책들을 체계화한 후, 기존 정책의 성과와 유효성을 평가하고 새로운 정책지원수단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상생협력의 지속적인 확산을 위해 정책범위를 대기업은 ▲10대 그룹에서 30대 그룹으로,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간 협력에서 앞으로 2차 협력업체로 확대하는 등 대기업 공급사슬 전반으로 확산해 나가는 한편, 업종별로도 그간 제조업 위주에서 유통·에너지 등 이업종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총수들, 심기 불편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기업 총수들은 정부의 보고 이후 상생경영에 따라 각기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규모를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날 회의에 참석한 총수들이 그리 ‘편한 자리’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귓뜸했다.


분명 주제는 ‘상생협력회의’였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업을 상대로한 일방적인 ‘강탈(?)’이라는 해석이다.


실례로 이번 회의에서 주요사안으로 꼽힌 내용들은 ▲대기업이 우선적으로 중소기업을 배려하는 자세를 확립하는 것과 ▲현금결제를 확대하고 적정 납품단가를 유지하며, ▲모기업과 하도급 기업간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 등이었기 때문이다.


즉, 대기업이 먼저 나서야한다는 것. 이런 상황이기에 회의에 참석한 재벌총수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을 것이라는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더욱이 현대차그룹의 경우 총수인 정몽구 회장이 구속됐기에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 맞춰 이날 정 회장을 대신해 참석한 이전갑 기획총괄담당 부회장은 마치 정 회장의 선처를 구하는 듯,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축으로 2010년까지 협력업체의 자금지원을 당초 13조원에서 15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총수들은 현대차그룹이 지닌 속사정과 비슷한 문제로 나름대로 고민중이다.


재벌그룹의 편법 경영권 상속문제가 크게 불거진 상황이고, 납품업체에 대한 부품단가 인하와 이중 대표소송제 도입 검토 등의 문제도 아슬아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밖에도 현재 검찰의 수사망이 몇몇 재벌비리 사건에 맞춰져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재계일각에서는 이번 상생회의가 “물에 빠진 재벌 총수들 모아놓고 우선 보따리부터 건지려는 흥정 아닌 흥정 아니냐”는 반응이다. 언론들 역시 저마다 ‘재벌 팔 비틀기’, ‘겁주기’ 등 정부가 재벌 총수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보도뿐이다.


이에 해명하듯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사실 무근’이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나, 현재로선 재벌 총수들의 심정쪽으로 표가 몰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위 삼성 봐주는 것 아니냐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한겨레에서 26일 보도한 기사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권오승 위원장이 “대기업 등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 현장 직권조사를 통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공식입장을 표명한 전후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한겨례에서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공정위가 삼성 계열사들이 중소 부품업체들을 상대로 납품단가를 최대 60%까지 부당하게 깎은 혐의를 적발하고도 처벌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또한 “삼성의 다른 부당 납품단가 인하 사건에 대해서도 1년이 지나도록 처리를 미루고 있다”는 것.


이 보도에 의하면 공정위는 2004년 11월 삼성 계열사로 반도체장비 제조업체인 세메스가 36개 중소 부품업체들을 상대로 정상적인 협의 없이 부당한 방법으로 납품단가를 평균 14.7%나 깎아 원가상승 부담을 떠넘긴 사실을 적발했다고 전했다.


또, 일부 부품업체들은 납품단가가 최고 65.2%나 깎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당시 세메스는 공정위 조사에서 모회사인 삼성전자와 짜고 납품단가 인하 사실을 숨기고자 장부까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방해 행위가 적발되자 삼성전자와 세메스 직원 3명이 지난해 말과 올해 2월에 과태료를 부과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한겨레는 여기서 실상 문제는 따로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부당 납품단가 인하 사건 자체에 대한 처리를 1년 4개월이나 끌다가 올해 2월에야 위원회에 상정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공정위는 아무런 제재 결정도 없이 ‘심의절차 종료’조처를 내려, 이 사건을 사실상 ‘없던 일’로 종결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세메스가 납품단가 인하 사실을 숨기려고 장부까지 조작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이런 조치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다.


언론보도에 공정위 해명?


이는 당시 공정위가 내린 의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월 17일자’ 공정위 의결을 살펴보면, “피심인(조사방해 직원)과 삼선전자 직원 이 모씨는 세메스의 회의실에서 총 25개 항목에 걸쳐 구매 관련장부 등을 점검한 후, 단가합의서에 기재된 견적가가 세메스가 발주한 단가와 일치하지 않자 수급사업자의 견적서를 제출받아 구매품의서에 첨부함과 동시에 세메스가 발주한 단가를 위 견적서의 견적가와 동일하게 하고, 구매품의서 특기사항 란에 기재돼 있는 일부문언을 수정액으로 삭제…(이하중략)…, 삼성전자 주식회사 소속 직원과 협의한 행위로 조사에 대비해 방해할 의도하에 한 행위임이 인정된다”고 나와있다.


이처럼 공정위가 내린 의결을 볼 때, 삼성 계열사인 세메스가 납품단가인하 사실을 숨기려 했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공정위측은 당시 세메스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심의를 종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 관계자들은 현재 전화통화를 회피하고 있으며, 해명자료만을 발표한 상황이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3월 17일자 공정위 의결에 대해서 “납품단가인하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그것은 단지 조사방해에 관한 조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납품단가인하와 관련해서는 자기가 답할 수 없는 문제”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현재 공정위는 삼성전자 부품 단가인하에 대한 언론의 ‘삼성 봐주기 아니냐’는 지적에 “현재 법위반 여부를 검토 중이며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에 검토할 사항이 많아 사실관계 확인과 법률검토를 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법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사건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언론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또한, 공정위는 “납품단가의 부당한 인하가 성립하려면 단가인하 사실 뿐 아니라 부당성이 입증돼야 한다”며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라 지난 2월 3일에 위원회에 상정했으나, 추후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참석위원 전원의 합의로 심의종료했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제시한 추후 증거란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곤란해 법위반 여부의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후 3월 17일자 의결과정에서 밝혀진 사실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삼성, 사회환원과 날짜 겹쳐


이번에 제기된 공정위 문제는 때마침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회의’와 맞물려 미묘한 상황을 이루고 있다.


삼성의 경우, ‘2.7대책’에 따른 ‘8000억원 사회헌납’에 이어 최근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인 삼지모까지 결성된 탓에, 청와대에 간 이건희 회장이 그나마 당당(?)하지 않았겠느냐는 재계의 일부의견이다. 그러나 이처럼 떳떳하리라 여겼던 삼성이지만 갑작스레 불거진 이번 문제로 다소 당황스럽게 됐다.


더구나 일부언론에서 제기된 ‘삼성의 납품단가 부당인하’ 문제는 여러 시각에서 분석되고 있는 실정. 일부에서는 “삼성 봐주기가 확실하다”라는 부정적인 의견과 “상생협력회의안이 나온 마당에 분명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견해이다.


이외에도 업계 한 관계자는 이들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하필 공교롭게도 공정위가 위원회에 상정한 2월은 삼성이 사회에 8000억원을 환원하기로 한 2.7대책이 발표된 시점이지 않느냐”며, “혹시 이것과 연관해 무마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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