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은행권에 난데 없는 구조조정 바람...왜?

'언택트' 활성화에 'FIRE족' 늘면서 '희망퇴직' 상승 작용
은행권 올 퇴직자 줄잡아 4천여명 달할 전망

문혜원

maya4you@naver.com | 2021-11-10 06:00:42

▲시티뱅크가 소매금융에서 철수하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제공>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많은 기업들이 매출은 줄고 대출은 늘어나 울상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계와 기업 대출이 모두 늘어난 가운데 은행 예대 마진의 폭이 커지면서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잘나가는 은행권에 난데없이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상 기업이 이익이 늘어나면 고용을 늘린다. 그런데 은행들은 영업이익이 호조를 띠고 있는데도 구조조정에 적극적이다.

이같은 현상은 금융권의 비대면 업무가 일반화되면서 인력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근본 원인으로 보인다. 은행 입장에선 지점 통폐합 등 오프라인 사업장의 축소 필요성이 커지면서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명예퇴직 형태로 인원 감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기 은퇴를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며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소위 파이어족(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 늘고 있는 것도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잘나가는 은행권의 인력 구조조정을 가속화학고 있다. 

희망 퇴직자와 은행 약측 니즈가 맞물려 
어차피 새로운 인생을 위해 조기 퇴직을 할 거라면 은행들이 두둑하게 퇴직금을 챙겨줄 수 있는 호황기에 퇴직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결과다. 

은행들 역시 과도한 순이익을 거두는 것에 대한 일반 여론이 곱지 않다는 점에서, 인원 감축 니즈가 크고 업황이 좋은 요즘이 인력 구조조정의 적기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업황이 좋은 상태에서 구조조정을 추진하다 보니 구조조정에 대한 인식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과거처럼 직원들에게 일방적인 퇴직을 요구하기 보다 선택지를 주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퇴직금을 '억 소리 나게 제공'하고 창업·전직 지원금까지 주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명칭 역시 자발적 퇴직을 강조하기 위해 '명예퇴직' 대신 '희망퇴직'이란 용어를 내세운다. 

10일 은행권 집계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들은 올해 역대급 호실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 비대면 서비스 확대를 계기로 희망퇴직 규모를 크게 확대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올해 희망퇴직으로 은행권을 떠나는 인력이 줄 잡아 4000명을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국시티은행은 전격적으로 소매금융 철수 계획을 밝히면서 최대 7억원에 달하는 파격 퇴직금 조건을 내걸어 주목된다. 이에 따라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0일까지 2주간 희망퇴직 접수를 진행한 결과 전체 행원 3500여명 가운데 무려 66%인 2300여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티, 소매금융철수로 대규모 인력감축 
씨티은행은 희망 퇴직 신청자 가운데 선별 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단계적으로 희망퇴직 처리를 완료한다는 방침이다.예상 외로 희망 퇴직자가 많아 시티은행의 소비자 금융 사업 정리는 원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은 이에 따라 최근엔 희망 퇴직 연령을 40대까지 낮추고, 파격적 조건을 내세우며 적극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시티은행과 함께 지난달 희망퇴직을 신청 받은 SC제일은행의 경우 특별 퇴직(희망퇴직)을 실시, 이미 약 500명이 은행을 떠났다. 이는 2015년 962명의 희망퇴직을 단행한 이래 최대 규모다. 지난해에는 29명이 퇴직하는 데 그쳤다.

KB국민은행은 올 1월30일자로 무려 800명이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났다. KB의 희망퇴직자는 2018년 407명, 2019년 613명, 2020년 462명 등 최근 3년간 400~600명 수준이었는데, 올해 급증한 것이다.

신한은행의 경우는 이례적으로 1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진행,  각 220명, 130명씩 모두 350명이 짐을 쌌다. 한 해에 두 번 희망퇴직을 받은 것은 신한은행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희망 퇴직자 수도 2018년 700여 명 이후 가장 많았다.

우리은행 역시 1월 말 468명이 희망퇴직 형태로 나갔으며 내년에도 적잖은 수가 퇴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의 올해 희망 퇴직자는 2020년 326명과 비교하면 140명 이상 늘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는 은행들으로선 매년 급증하는 인건비 부담이 큰 경영 과제로 다가왔는데, 파이어족 바람 탓에 불어 퇴직 희망자들이 예상보다 많아 부담을 크게 덜었다"고 강조했다.

언택트 확대로 구조조정 내년까지 이어질듯
은행권의 희망퇴직 열기는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의 언택트(비대면서비스) 시대가 자리 잡게 되면서 점포 축소 등 인력 구조조정이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적 호조에 따라 퇴직에 따르는 수혜 조건이 대폭 개선된 영향도 크다.

은행권은 이에 따라 희망퇴직 대상 연령을 대폭 낮추는가 하면, 퇴직 이후의 지원 규모를 크게 늘리는 등 희망퇴직을 유도하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KB의 경우 만 56세였던 희망퇴직 대상 기준을 최근 40대까지 확대했다. 올해의 경우 1973년생까지 신청대상 범위를 넓혀 적용하고 있다.

희망퇴직자에게는 23~35개월치 급여와 함께 학자금(학기당 350만원·최대 8학기)을 두툼하게 지원한다. 그런가 하면 재취업자 지원금을 최대 34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본인과 배우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과 퇴직 1년 이후 재고용도 가능하게 했다.

신한의 경우도 올해 희망퇴직자 범위를 1972년생 이전에 출생한 15년 이상 근속 직원으로 만 49세까지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신한은행은 연차와 직급에 따라 최대 36개월의 특별퇴직금을 줬다.

전문가들은 "희망퇴직 바람은 은행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은행을 시작으로 카드, 증권 등 전방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된 비대면 바람 탓에 금융권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것 같아 마냥 좋게 만 볼일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 / 문혜원 기자 maya4yo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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