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을 끊어야 산다⑥] 강원랜드 사칭·스포츠스타 딥페이크까지…4만명 끌어들인 '가짜 합법' 도박
35개 언어 서비스·국내 이용자 4만명…도박자금 780억원
대포통장 70여개 한 달마다 교체…58명 검거·5명 구속
경찰 10월까지 특별단속…사이트 넘어 광고·계좌·제작망 끊어야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 2026-08-22 23:21:02
불법도박이 ‘불법’이라는 흔적까지 지우고 있다. 공기업 강원랜드 로고를 가져다 붙이고 유명 스포츠 스타의 얼굴과 음성을 딥페이크로 만들어 광고했다. 해외에서 받은 라이선스도 내세웠다. 합법적인 온라인 카지노처럼 꾸민 사이트에 국내 이용자 약 4만명이 몰렸고 780억원의 도박자금이 흘러갔다. 불법도박 대응도 사이트 주소를 차단하는 수준에서 ‘가짜 신뢰’를 만드는 광고와 계좌, 해외 운영망을 함께 끊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경북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17일 강원랜드를 사칭해 불법 온라인 카지노를 운영한 혐의로 러시아계 외국인 등 58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조직은 2022년 10월부터 해외에 서버를 두고 한국어를 포함한 35개 언어로 카지노 게임을 제공했다.
국내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이전보다 정교했다. SNS 광고에 강원랜드 로고를 넣어 실제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온라인 카지노처럼 꾸몄다. 유명 스포츠 선수의 얼굴과 음성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도 홍보에 사용했다. 공기업과 유명인의 신뢰도를 도박사이트의 신뢰도로 바꿔 이용자를 끌어들인 셈이다.
강원랜드는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카지노지만 온라인 카지노는 운영하지 않는다. 경찰도 이번 사건을 발표하면서 강원랜드가 어떤 온라인 도박사이트도 운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서 강원랜드 이름이나 로고를 내건 카지노가 보인다면 공식 서비스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돈의 흐름도 조직적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일당은 국내 총책과 입출금 통장 관리책, 대포통장 모집책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추적을 피하려고 도박자금을 받는 계좌를 약 한 달 단위로 바꾸면서 대포통장 70여개를 사용했다. 국내 이용자가 입금한 도박자금은 약 780억원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범죄수익 약 15억원을 기소 전 추징보전했다.
이번 사건은 불법도박 시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높은 배당이나 가입머니 같은 금전적 유인이 전면에 나왔다면 이제는 ‘믿을 만한 곳’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까지 동원한다. 공기업 상표, 스포츠 스타, 인공지능(AI) 딥페이크가 이용자의 경계심을 낮추는 도구로 쓰였다.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등록했다는 설명도 이용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 이번 조직은 사이버도박이 허용된 해외 국가에서 관련 라이선스를 등록한 뒤 다국어 서비스를 운영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허가받았다는 사실과 국내 이용자를 상대로 한 온라인 도박이 적법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서버와 사업자는 해외에 있고 이용자와 입출금 계좌는 국내에 있는 초국경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경찰도 사이트 운영자 검거만으로는 불법도박 시장을 끊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이버도박 집중단속을 벌여 1746건, 2319명을 검거하고 154명을 구속했다.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한 범죄수익은 1072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07억원 늘었다.
특히 경찰은 올해 하반기 단속 대상을 도박사이트 운영조직에서 제작·공급업체까지 넓혔다. 해외 거점 운영자의 국내 송환도 추진한다. 현재 진행 중인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은 오는 10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사이트 하나를 폐쇄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발조직과 총판, 자금망이 살아 있으면 다른 이름의 사이트를 다시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12일 서울경찰청이 적발한 별도의 조직은 불법 성착취물 사이트를 이용자 모집 창구로 삼아 도박사이트로 유인했다. 이 조직과 연결된 도박사이트 18곳에서 최근 5년간 약 4조7000억원의 베팅금이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 콘텐츠와 도박, 광고와 회원 모집이 서로 다른 범죄가 아니라 하나의 수익 구조로 결합한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이트 차단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사이트 주소는 바꿀 수 있고 계좌는 교체할 수 있다. 딥페이크 광고도 다시 만들 수 있다. 반면 돈을 받는 국내 계좌와 이용자를 모집하는 SNS 광고, 프로그램 공급자와 총판은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반복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불법도박 대응도 세 축을 동시에 겨냥해야 한다. 유명인과 공공기관을 사칭한 광고를 신속하게 삭제하고, 반복적으로 도박자금을 받는 계좌를 조기에 동결하며, 사이트를 제작·분양하는 공급망까지 추적해야 한다. 범죄수익을 빠르게 묶어 재투자할 돈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강원랜드를 사칭한 이번 사이트에는 4만명이 들어갔다. 이용자 모두가 처음부터 불법도박임을 알고 접속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번 사건의 또 다른 경고다. 불법도박은 이제 음지의 간판만 달고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공기업의 이름을 빌리고 스타의 얼굴을 만들고 해외 라이선스를 내세워 합법의 얼굴로 접근한다.
도박사이트를 찾아내는 것만큼 도박사이트가 어떻게 신뢰를 만들어내는지를 차단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AI 시대의 불법도박 대책은 사이트 주소보다 그 앞단의 광고와 사칭, 그 뒷단의 계좌와 범죄수익을 함께 봐야 한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