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26)

인생을 넘는 서울의 '고개',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구리개(銅峴)’, 소나무가 많았던 ‘솔마루(松峴)’,산적이 자주 나타났던 ‘버티고개’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3-31 23:49:25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인생을 넘는 서울의 '고개' 

▲ <사진=김병윤 대기자>

 

고개를 예전에는 개(峴)라 불렀다. 서울은 고개로 연결됐다. 의아해 할수도 있다. 상상이 안 될 것이다. 속 내용을 알아보자. 서울의 고개는 얼마나 될까. 의외로 많다. 230여 개가 된다. 밝혀진 것만 그렇다. 그 많은 고개를 연결해보자. 서울의 그림이 나온다. 모든 동네가 이어진다.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인가. 작고 큰 고갯길이 많아서다. 샹제리제가 있는 곳도 큰 고개였다. 고개를 깎아 세운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은 파리의 명소다.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누구나 가고 싶어한다. 고갯길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고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더 흥미롭다. 서울의 고개는 사연이 많다. 특색이 있다. 아픔도 간직하고 있다. 낭만도 있다. 아쉬움도 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바뀌었다. 옛 모습도 변했다. 모든 고개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사연 많은 고개 몇 군데를 돌아보자.

일본인이 많이 살았던 ‘구리개(銅峴)’

▲ 을지로1가 <사진=김병윤 대기자>

 

지금의 을지로다. 조선조 후기 때는 구리개라 불렀다. 일본사람은 구리개를 싫어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황금정(黃金町)이라 불렀다. 일본인의 정(町)은 지금의 동(洞)이다. 을지로는 해방 이후에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인은 구리개에 많이 살았다. 구리개를 중심으로 모여 들었다. 일본인만의 상권도 형성했다. 유리제품 등을 많이 팔았다. 서양물건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돈도 많이 벌었다. 부자가 많이 살았다. 일본인은 생활수준이 높았다. 문화적인 욕구도 생겼다. 국도극장이 생겼다. 일제시대였다. 국도극장 개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방이 됐다.

소나무가 많았던 ‘솔마루(松峴)’
한자로 송현이다. 소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송현(南松峴 )과 북송현(北松峴)으로 나뉜다. 남송현은 지금의 소공동. 북송현은 중학동이다. 서울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북창동, 남창동, 소공동에 소나무가 많았다. 북송현은 소나무 밭이었다. 전차타고 다닐 때 풍경이 대단했다. 소나무의 푸름이 압권이었다. 차창에 비치는 소나무는 한 폭의 산수화였다.

일본인은 소나무를 싫어했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기상이다. 일본인이 소나무를 조금씩 없앴다. 방법이 간교했다. 소나무 밑에 구멍을 뚫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이런 소문이 있었다. 일본 헌병들이 구멍을 뚫었다. 작은 칼로 구멍을 냈다는 소문이었다.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도 소문이 맞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시내 한 복판에 소나무가 많았던 사실에. 지금은 서울에 소나무가 드물다. 공해로 점차 사라져 간다. 소나무는 관리가 힘들다. 공기가 깨끗해야 살아간다. 주변 환경이 좋아야 한다. 

 

산적이 자주 나타났던 ‘버티고개’
두 갈래 길이 있다. 장충단에서 오는 길. 약수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길. 약수동에서 가는 길이 사실상 버티고개다. 산적이 많았다. 산적이 버틴다 해서 버티고개라 불렀다. 나무가 많았다. 산적이 갑자기 튀어 나왔다. 숲 속에 몸을 숨겼다 나타났다. 고개를 넘는 게 워낙 위험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가는 이유가 있었다. 지름길이었다.

행인은 안전요원이 필요했다. 고개를 무사히 넘겨주는 사람을 찾았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함께 넘어 갔다. 부작용도 있었다. 안전요원의 착취였다. 의뢰인의 돈을 빼앗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었다.

사람은 또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자동차를 이용했다. 일본의 이즈즈(IZUZU) 화물차를 사용했다. 목탄차였다. 사람을 가득 태우고 올라갔다. 차에 힘이 없었다. 사람들이 내려 힘을 모아 차를 밀었다. 시동이 걸리면 다시 출발했다. 중간에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시속 5~10Km 정도 밖에 안됐다. 버티고개는 서민의 애환이 서려있다. 산적과 목탄차로 인해 생긴 고개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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