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24)

의류의 메카 '동대문시장', 특화된 시장 '경동시장', 삼청동서 시작된 '북청물장수'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3-24 23:48:15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의류의 메카 '동대문시장' 

▲동대문시장 <사진=김병윤 대기자>

 

남대문시장과 함께 양대 산맥이다. 남대문시장은 동쪽 사람에게 거리가 멀었다. 북쪽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교통수단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전차와 버스로 다녀야 했다. 차량도 부족했다. 교통이 불편했다. 동북 쪽 사람은 가까운 시장을 필요로 했다.동대문시장이 생겼다. 자생적 발생이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출발했다. 남대문시장과 비슷한 풍속도였다. 원래 의류시장으로 시작했다.

마케팅이 뛰어났다. 상인연합 주도로 이뤄졌다. 남대문시장보다 싸게 팔았다. 아주 싼 가격은 아니었다. 그래도 손님은 좋아했다. 소문이 났다. 호기심이 들었다. 손님이 모여 들었다. 남쪽 사람도 올라왔다. 시장이 번창했다. 규모도 커졌다. 지금은 남대문시장보다 크다. 특화된 시장이 주변에 퍼져있다.

의류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의류시장이 많다. 제일평화시장. 청평화시장. 얼마 전 대형화재가 났다. 복구중이다. 그 밖에도 두산타워. 밀레오레. 등 수많은 의류전문 상가가 진을 치고 있다.

동대문시장은 전국의 옷 가게에 물건을 공급한다. 시장 주변에는 대형버스가 줄을 선다. 지방에서 물건을 사려고 온 소매상들이다. 모자와 양복점도 오래됐다. 요즘은 양복점이 별로 없다. 양복점에서는 옷을 만들기가 힘들다. 전문기술자가 부족해서다.
양복점은 주문을 받고 사이즈만 잰다. 옷감과 함께 동대문으로 보낸다. 동대문시장에는 기술자가 많다. 수십 년 전부터 해온 베테랑이다. 한국 산업의 역군이다. 경제부흥의 일등공신이다. 숙련된 기술자들을 통해 멋진 양복이 나온다.

동대문시장 주변에는 여러 시장이 있다. 광장시장 중부시장 방산시장 등도 있다. 넓은 의미에서 동대문시장에 포함될 수 있다. 품목이 다르다. 생선 육류 등 식품을 주로판다. 한복 옷감도 취급하고 있다. 동대문시장은 동부지역 발달의 초석이 됐다. 청량리까지 발달시켰다. 전차는 원래 동대문에서 남대문까지만 운행됐다. 나중에는 청량리까지 연결됐다. 동쪽 사람의 편의
를 위해서다. 동대문시장의 역할이 컸다.

 

특화된 시장 '경동시장'

▲경동시장 <사진=김병윤 대기자>

 

경동시장은 특화된 시장이다. 약재시장으로 유명하다. 좋은 약재가 많이 올라왔다.교통이 편했다. 강원도 충청도에서 오기 좋았다. 원래 유명한 약재상은 대구에 있었다. 2~3곳이 경동시장으로 왔다. 시장 입구에 문을 열었다. 손님이 찾기 시작했다. 소문이 났다. 다른 약재상이 모여 들었다. 어느덧 약재시장 대명사가 됐다. 약재시장의 본거지가 됐다. 약재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전국의 약재가 경동시장으로 모여든다.

약재만 유명한 게 아니다. 채소와 건어물도 풍부하다. 채소는 매일매일 들어온다. 상품이 신선하다. 농수산물시장 못지않다. 소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자영업자가 자주 찾는다. 단골거래처가 많다. 건어물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심에서 건어물 시장은 보기 힘들다. 경동시장은 건어물 상점이 집합돼 있다. 장사에는 불문율이 있다. 같은 업종이 모여 있어야 된다. 그래야 장사가 잘 된다. 경동시장의 건어물상점이 그런 경우다.

경동시장의 숨은 상품이 있다. 버섯이다. 전국의 귀한 버섯이 모여든다. 자연산 송이버섯. 일반 시장에서 구하기 힘들다. 백화점에나 일부 공급된다. 경동시장에서는 언제나 구할 수 있다. 송이버섯 보다 더 귀한 게 있다. 석이버섯과 목이버섯이다. 미식가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깊은 산속에서 자생한다. 따기도 힘들다. 운이 좋아야 눈에 띈다. 희소가치가 높다. 일반인은 보기도 힘들다. 값도 비싸다. 송이버섯과는 비교도안 된다. 부르는 게 값이다. 버섯 판매자는 배짱을 부린다. 손님을 부르지 않는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기다린다. 그래도 줄을 선다. 경동시장만의 풍경이다.

경동시장은 서울 동쪽의 활력소다. 동대문시장과 함께 발전했다. 예전에는 서커스도 공연했다. 문화시설이 없던 그 시절. 주민과 고객 상인에게 기쁨을 줬다. 단점도 있다. 통로가 좁고 시설이 낙후됐다. 현대화가 필요하다.

삼청동서 시작된 '북청물장수'
북청물장수. 북청에서 물장수를 한 것이 아니다. 삼청동에서 나온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북청에 살던 유 마무개가 서울에 왔다. 삼청동에 터전을 잡았다. 해방 후였다. 글을 몰랐다. 고향 북청만 알았다. 어린 소년이었다. 지체 높은 양반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지게질을 했다. 삼청동에는 부자들이 살았다. 부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힘들게 다녔다.

부자 집에는 큰 항아리 3개가 있었다. 물을 따로 담았다. 청룡수 백호수 주작수라 했다. 청룡수는 장을 담그는 용도였다. 장맛을 보면 집안의 품위를 알 수 있다했다. 먹는 것보다 장이 우선이었다. 삼청동 지역에서 떠갔다. 으뜸수라 했다. 백호수는 목욕 세수용이었다. 인왕산 안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썼다. 주작수는 빨래용이었다. 남산 한강에서 떠다 섰다.

유 아무개의 머리가 번뜩였다. 부인들의 물동이를 날라주기로 했다. 지게질 품삯을 받았다. 수입이 괜찮았다. 한걸음 더 나갔다. 지게에 물동이를 지고 팔러 다녔다. 주문이 쇄도했다. 대박이 났다. 결혼도 했다. 재혼이었다. 첫 부인은 궁핍한 생활에 가출을 했다. 고향이 생각났다. 뿌리를 찾고 싶었다. 북청 사람들을 서울로 불러 올렸다. 물장수를 함께 했다. 생활의 터전이 됐다. 북청물장수의 속뜻은 이렇다. 생활력이 강한 사람을 일컫는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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