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난 일상화 맞은 유럽 "폭염은 이제 날씨 아냐"
6월 유럽폭염, 사망·정전·원전 감산·학교 폐쇄
외신 “기후변화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
최은별 기자
ceb@sateconomy.co.kr | 2026-06-26 22:55:27
유럽의 6월 폭염은 더 이상 ‘이상 고온’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올해 6월 셋째 주부터 서유럽을 덮친 폭염은 낮 기온 기록을 갈아치운 데 그치지 않았다. 밤에도 식지 않는 열대야, 높은 습도, 전력망 부담, 원전 출력 제한, 학교 폐쇄, 응급의료 압박이 동시에 터졌다. 폭염은 날씨가 아니라 사회 인프라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됐다.
로이터(Reuters)는 26일 유럽 보건당국이 “killer heatwave”, 즉 ‘살인적 폭염’에 대응해 비상 경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폭염 관련해 최소 55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틀전인 24일 파리의 기온이 40.9도, 이탈리아도 주말 40도 진입을 앞두고 폭염 경보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폭염의 특징은 범위와 강도다. AP는 25일 영국 서머싯의 기온이 36.7도를 기록해 영국의 6월 최고기온을 새로 썼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전국 30개 관측소 평균기온이 30도에 도달했다. AP는 이를 두고 “the hottest day in France on record”, 즉 ‘프랑스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날’이라고 전했다. 독일 라인란트팔츠 지역에서는 밤 최저기온이 26.2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낮의 폭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밤의 회복 불능 상태다.
과학자들의 해석은 분명하다. 로이터는 26일 세계기상귀속(WWA) 분석을 인용해 이번 서유럽 폭염이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 없이는 “virtually impossible”,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WWA는 “the most severe ever recorded”, 즉 ‘연구 대상 지역에서 관측된 가장 심각한 폭염’이라고 평가했다. AP도 같은 날 WWA 연구를 보도하면서 이번 폭염이 20년 전보다 200배 더 발생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폭염은 더 자주, 더 세게, 더 이르게 오고 있다.
이번 사태가 치명적인 이유는 ‘오메가 블록’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번 폭염이 그리스 문자 오메가(Ω) 모양의 고기압 정체 현상, 즉 “Omega block”에 의해 장기화됐다고 설명했다. 뜨거운 공기가 한 지역에 갇히고, 대기가 움직이지 않으면서 열이 하루하루 축적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은 계절 평균보다 최대 18도 높은 기온을 겪었다. 단순한 폭염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는 열돔이다.
피해는 보건에서 시작해 인프라로 번졌다. 프랑스에서는 더위를 피하려다 물에 들어간 시민들의 익사 사고가 이어졌다. AP는 6월 23일 보도에서 프랑스에서 한 주 동안 40명이 익사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도 6월 24일 보도에서 더위를 식히려다 물에 들어간 시민 가운데 최소 48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폭염은 직접적인 열사병뿐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유발해 2차 사망을 만든다.
전력망도 흔들렸다. 프랑스 원전은 강물 온도 상승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로이터는 6월 24일 프랑스 골페슈 2호기 원전이 더위 때문에 가동을 멈췄고, 프랑스 환경규정에 따라 강물 온도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EDF가 원전 출력을 줄여야 한다고 보도했다. 원전 냉각수로 쓰이는 강물이 이미 뜨거워지면 발전소는 전기를 더 만들기 어렵다. 폭염은 전력 수요를 올리면서 동시에 전력 공급 능력을 깎는다.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가디언(The Guardian)은 26일 영국 전력계통운영기관 네소(Neso)가 금요일 저녁 전력 공급 여유가 빠듯하다며 발전사들에 추가 전력 공급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네소는 이를 “tight margins on the electricity system”, 즉 ‘전력 시스템의 빡빡한 여유’라고 설명했다. 냉방 수요가 늘었지만 고기압은 풍력 발전량을 낮췄다. 유럽의 폭염은 에너지 시장의 가격 충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와 보육시설도 버티지 못했다. 로이터는 이날 프랑스 국영 전력회사 EDF가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냉방 장비 설치를 위해 8000만유로를 투입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임시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냉방 보급률이 낮은 대륙이었다. 로이터는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인용해 유럽 가정의 에어컨 보유율이 약 20%에 그친다고 전했다. 그동안 유럽의 건물과 학교, 교통망은 ‘서늘한 여름’을 전제로 설계됐다. 그 전제가 무너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기후 불평등이다. 냉방 장치가 있는 사무실과 호텔은 버틴다. 오래된 주택, 노인 요양시설, 저소득층 주거지, 냉방 없는 학교는 먼저 무너진다. 가디언은 6월 26일 기사에서 유럽의 많은 도시가 사상 최악의 열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열 스트레스는 단순 기온이 아니라 습도까지 포함해 인체가 스스로 식을 수 있는지를 따지는 지표다. 땀이 나도 증발하지 않으면 몸은 식지 않는다. 폭염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뜨겁다.
이번 유럽 폭염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역시 고령화, 밀집도 높은 도시, 전력 피크, 노후 주거지, 야외노동 문제가 겹쳐 있다. 폭염을 여름철 불편으로만 보면 늦다. 이제 폭염은 보건정책이고, 전력정책이며, 도시정책이다. 유럽이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기후위기는 미래의 경고가 아니라 현재의 고장이다. 기록적인 더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더위를 견디도록 설계되지 않은 사회가 더 큰 문제다.
토요경제 / 최은별 기자 ceb@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