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24)

채금석 옹의 혼이 살아있는 ‘군산의 축구’, 저변확대에 힘쓰는 ‘군산 축구의 현실’, 국위 선양에 힘쓴 ‘군산의 체육인들’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7-26 22:38:28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채금석 옹의 혼이 살아있는 ‘군산의 축구’ 

▲ 2014년 금석배 추모행사에 참여한 정몽규 회장 <사진=전북축구협회 제공>

 

군산의 축구는 ‘채금석’ 옹(翁)의 혼이 살아있다. 한국축구의 대부 채금석이 정성으로 키웠다. 채금석은 오로지 축구만 생각하며 살았다. 고향 땅 군산의 축구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군산제일중과 제일고 축구부 창단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선수들이다.


최재모·강철·유동춘·김이주·조덕제·조긍연·노수진·노상래 등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다. 채금석의 제자들은 엄한 교육을 받았다. 술, 담배를 전혀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선수로서 지켜야 할 자세가 남달랐다. 선수로서 지켜야 할 생활 자세가 몸에 배었다.


최재모는 채금석의 지도에 힘입어 국가대표 선수로 성장했다. 1970년대 대표 팀의 든든한 수비수로 활약했다. 채금석의 1대 제자로 불렸다. 지도자로도 성공했다. 81년 군산제일고 축구부 창단 코치로 부임했다. 고향 축구발전에 힘을 쏟았다. 85년 전주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대학 축구의 강팀으로 성장시켰다. 2009년 6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암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다. 사망후 안구 기증으로 훈훈한 미담을 남겼다.


유동춘(전 경찰청 감독)은 5형제 축구선수로 유명하다. 채금석이 일찌감치 서울한양공고로 전학 시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해 줬다. 국가대표로 많은 활약을 했다. 동생인 동관·승우 등도 그라운드를 누볐다.


조덕제(전 부산 아이파크 감독)는 채금석의 교육을 잘 따른 축구인이다. 군산제일고 재학 때부터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조덕제는 채금석의 말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다. 술을 멀리했다. 담배는 전혀 안 피운다. 술은 피치 못할 자리에서 한두 잔으로 끝냈다. 그것도 1년 중 손에 꼽을 정도다. 술자리는 되도록 멀리하고 있다.


노상래(전 전남 드래곤즈 감독)는 중거리 슛의 대명사로 명성을 떨쳤다. 오른발에서 나오는 강렬한 중거리 슛은 상대팀 골키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채금석에게 기본기를 착실히 배웠다. 군산제일고를 졸업했다.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온화한 성품으로 동료 선·후배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현재 울산 현대 축구팀에서 유소년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군산에서는 ‘채금석배 전국 중·고교축구대회’가 열린다. 채금석을 기리기 위한 대회다. 전국의 강호들이 참가한다. 군산이 한국축구의요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저변확대에 힘쓰는 ‘군산 축구의 현실’
군산의 축구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수가 감소하고 있다. 팀 수도 부족하다. 유소년 클럽이 3팀에 머물고 있다. U-15팀에는 32명이 뛰고 있다. 문제는 U-12팀이 없는 것이다. U-15팀에 선수를 공급할 허리가 없다. 군산 축구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군산축구협회’는 U-12팀 창단을 계획하고 있다. 이마저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예산 부족이 따른다. 군산제일고에는 30여 명의 선수가 소속돼 있다. 군장대와 호원대가 팀을 운영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원활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협회는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철수의 여파가 크다. 현대중공업은 매년 1억 원씩 협회에 지원을 해줬다. 자금줄이 끊겼다. 다행스럽게도 생활체육은 활성화돼 있다. 매주 일요일 2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린다. 연간 360경기를 치른다.


24개 팀이 참가한다. 여성동호회 1팀도 구성돼 있다. 25명의 여성이 축구의 묘미에 빠져 있다.
협회는 방과 후 수업을 통한 저변 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유소년 축구의 활성화가 군산 축구발전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동호회를 통한 축구 활성화에도 힘쓰고있다. 

▲ 2020 채금석배 축구대회 고등부 시상식 <사진=전북축구협회 제공>


국위 선양에 힘쓴 ‘군산의 체육인들’

군산의 체육인들은 국위 선양에도 앞섰다. 군산고 농구부가 있다. 야구와 축구보다 명성은 뒤처졌다. 스타플레이어는 많이 배출했다. 최부영, 최철권은 농구계에 알려진 형제 선수다. 최부영은 군산 출신이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경희대 감독을 40여 년간 했다. 우승제조기로 이름을 날렸다.


동생인 최철권은 군산고 출신이다. 고려대를 졸업했다. ‘컴퓨터 슈터’로 이름을 날렸다. 농구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갖고 있다. 1987년 전국체전에서 한 경기에 97점을 넣었다. 전북 선발로 출전해 부산 선발과의 경기에서 세운 기록이다. 군산고 농구부 출신으로는 이창수와 이영주도 있다. 이창수는 경희대로 진학한 뒤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이창수는 군산고 농구부 코치를 역임했다. 이영주는 군산고 졸업 후 홍익대로 진학했다. 홍익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영주는 모교 군산고의 감독을 역임했다. 후배들 지도에 힘을 쏟았다.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도 있다. 복싱의 김광선이다. ‘1988 서울올림픽’ 복싱 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앞선 ‘1986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저돌적 경기 운영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예능 감각이 뛰어나 방송에도 출연해 입담을 뽐내고 있다.


양궁의 박성현도 군산의 딸이다. 월명여중 출신이다. ‘2004 그리스아테네 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한국여자양궁이 올림픽 6회 연속 우승을 이어가는 값진 금메달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다.


박성현은 최초의 양궁 금메달 부부로 탄생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단체전 금메달리스트 박경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12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박경모도 ‘세계선수권대회’와 ‘올림픽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휩쓴 스타플레이어다. 이들은 SBS에서 양궁 부부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테니스의 전미라도 군산이 배출한 스타플레이어다. 영광여자 중·고를 졸업했다. 전미라는 ‘1994 윔블던주니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세계가 놀랐다. 테니스의 변방인 한국 선수가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 ‘마르티나 힝기스’와 대결해 화제가 됐다. ‘1997 시칠리아유니버시아드대회’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75cm의 훤칠한 신장은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뛰어난 미모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전미라 테니스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있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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