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③][대한민국은 어쩌다 담합공화국이 되었나] ‘미국 수조원 배상’ vs ‘한국 수천억원대’…담합 관대한 한국 해법은?
담합 반복되는 구조…약한 처벌·제도 공백이 키웠다
美 피해액 3배 배상·소송비까지…부담 큰 민간소송이 담합 억제 핵심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 2026-03-27 15:00:37
밀가루·설탕·전분당 등 식품 원재료 시장에서 대형 담합 사건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삼겹살 유통과 교복·빙과류·드라이아이스 등 생활 밀착 산업에서도 가격 담합이 반복되면서 한국 사회 곳곳에 ‘담합 카르텔’이 퍼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는 [대한민국은 어쩌다 담합 공화국이 되었나] 기획을 통해 생활 물가 뒤에 숨은 담합 실태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을 짚고 개선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토요경제 = 김은선 기자] 수조원 규모 담합에도 약한 제재가 반복되면서 국내 제도의 억제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할 때 처벌 수준과 제도 구조 전반에서 차이가 크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담합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클레이튼법과 셔먼법 등을 근거로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경영진 개인에게도 실형이 선고될 수 있어 담합 적발 시 기업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이라는 평가다.
이 같은 구조는 정부 과징금 체제 중심에만 머물러 있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민간 소송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 특징이며, 변호사 및 소송비용도 배상받을 수 있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와 기업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담합으로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큰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실제 미국 건강보험사 연합체 ‘블루크로스 블루실드(BCBS) 협회’ 사건에서는 보험사들이 지역별로 영업 구역을 나누며 경쟁을 제한한 혐의로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약 30여 개 보험사가 참여한 이 조직은 시장 분할을 통해 보험료를 높게 유지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2012년에 발생한 해당 사건은 약 30여 개의 블루크로스 계열 보험사들이 서로의 영업 지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합의한 담합 사례다. 이들 보험사는 경쟁을 회피하는 대신 보험료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하거나 병원에 지급하는 의료 수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최종적으로 블루크로스 블루실드 협회측은 가입자에게 약 26억7000만달러(한화 약4조원)을 병원과 의료진에게 약 28억달러 규모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두 합의 규모를 합치면 54억7000만달러(약 8조2000억원) 수준으로 담합 적발 시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일본과 독일 역시 과징금과 형사처벌을 병행하며 담합에 대한 강한 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내부고발 제도와 감면 제도(리니언시)를 통해 담합 적발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 간 공모를 사전에 차단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반면 국내 제도는 과징금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민간 집단소송 제도는 제한적으로만 적용된다. 형사처벌 역시 집행유예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억제 효과가 낮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제도 차이는 실제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강한 처벌이 작동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처벌 비용보다 클 수 있어 재발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실제 담합 적발 이후 가격이 인하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그동안 가격이 인위적으로 유지됐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담합 억제를 위해서는 제도 전반의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과 집단소송 활성화, 내부고발 보상 확대 등이 대표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보다 처벌 비용이 훨씬 크다는 인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담합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별 기업의 일탈로 치부하는 것은 사회 구조를 바꿀 필요도, 이를 둘러싼 진통도 피할 수 있어 책임 회피의 근거로 작용하기 쉬운 접근이다. 그러나 그만큼 제도 개선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결국 담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발 이후 처벌’이 아니라 ‘사전에 억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제도를 손보지 않는 한 20년 뒤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토요경제 /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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