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속도전’…삼성, 광주 반도체까지 2655조 투자

평택·용인 기존 클러스터에 호남·충청·영남 거점 추가…AI 반도체 수요 대응, 전력·용수·인력이 실행 관건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 2026-06-29 22:26:40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연합뉴스]

 

삼성이 국내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는 초대형 투자 계획을 내놨다. 핵심은 반도체다. 기존 평택·용인 클러스터에 광주 신규 반도체 거점을 더하고, 천안·온양의 HBM 생산능력과 세종·부산의 첨단 부품, 해남의 AI 데이터센터까지 묶어 전국 단위의 AI 산업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은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 맞춰 국내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의 국내 투자 규모는 총 2655조원이다. 기존 반도체 클러스터인 평택·용인 육성에 2030조원을 투입하고, AI 반도체·로봇·배터리·IT 부품 등 미래 먹거리 분야를 중심으로 호남·충청·영남권에 625조원을 추가 투자하는 구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보고회에서 “AI로 인해 기술 패러다임이 상상하지 못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저희를 포함한 반도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폭발하는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특히 속도를 강조했다. 그는 “기흥, 화성, 평택에 이어 용인 국가산단 투자 일정이 많이 빨라졌고, 새로운 단지를 준비해야 할 시점도 많이 앞당겨졌다”며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대로 속도전”이라고 밝혔다. AI 시대 반도체 경쟁이 기술력만의 싸움이 아니라, 생산능력과 인프라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는 판단이다.

가장 큰 변화는 호남권 투자다. 삼성은 호남에 총 425조원을 투입한다. 이 가운데 반도체 분야에만 400조원이 배정됐다. 광주에는 신규 반도체 팹 건설이 추진된다. 이 회장은 광주를 후보지로 검토하는 이유에 대해 전력, 용수, 인력 확보 등 기반 인프라와 인센티브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다.

광주 반도체 팹은 단순한 지역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국내 반도체 생산축은 기흥·화성·평택·용인 등 수도권 남부에 집중돼 있었다. 여기에 광주가 더해지면 삼성의 반도체 생산 지도는 수도권 중심에서 전국 분산형으로 바뀐다. 수도권의 부지·전력·용수 부담을 덜고, 지역 산업 기반을 새로 키우는 효과도 기대된다.

호남권에서는 반도체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삼성SDS는 해남에 ‘솔라시도 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해 소버린 AI 인프라 확보에 나선다. 삼성물산은 태양광과 수소 실증단지를 조성한다. 전북 고창에는 삼성전자의 첨단 물류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반도체 생산, AI 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 물류를 한 권역 안에서 연결하려는 포석이다.

충청권에는 140조원이 투입된다. 천안·온양에는 56조원 규모의 HBM 생산거점이 들어선다. HBM은 AI 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메모리다. 생성형 AI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질수록 HBM 공급능력은 곧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삼성으로서는 HBM 주도권 회복과 AI 메모리 시장 대응을 위해 충청권 투자가 절실하다.

아산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67조원을 들여 폴더블 등 차세대 스마트폰용 생산기지를 구축한다. 천안에는 삼성SDI의 차세대 배터리 마더팩토리가, 세종에는 삼성전기의 AI 서버용 패키지 기판 라인이 들어선다. 반도체 칩만으로는 AI 인프라가 완성되지 않는다. 패키지 기판, 디스플레이, 배터리까지 함께 고도화돼야 전체 공급망의 힘이 생긴다.

영남권에도 60조원이 배정됐다. 구미에는 삼성전자의 휴머노이드 로봇 라인과 삼성SDS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 부산에는 삼성전기의 MLCC와 패키지 기판 생산시설이 조성된다. 울산에는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와 ESS 시설이, 거제에는 삼성중공업의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거점이 마련된다.

삼성의 이번 계획은 반도체 투자로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AI 산업 생태계 전체를 겨냥한다. 반도체는 AI를 계산하게 하는 두뇌이고, 데이터센터는 AI가 작동하는 공장이다. 배터리와 ESS는 전력 안정성을 보완하고, 패키지 기판과 MLCC는 서버와 장비의 성능을 뒷받침한다. 로봇과 조선은 AI가 실제 산업 현장으로 확산되는 통로다.

이재용 회장이 “기업과 정부, 지자체가 함께 힘을 모으면 대체불가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 혼자 공장을 짓는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 팹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필요로 한다. 고급 인력 확보와 정주여건, 인허가 속도도 필수 조건이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전력망과 냉각 인프라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측은 자유토론에서 원스톱 행정지원, 전력·용수의 경쟁력 있는 공급, 정주여건 개선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내 전담팀을 구성해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챙기겠다고 답했다. 반도체 특별법에 따른 전력·용수 지원과 정주여건 개선도 약속했다.

삼성의 2655조 투자 계획은 숫자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광주 팹 후보지가 실제 생산거점으로 바뀌려면 전력망과 용수망이 깔려야 한다. 천안·온양 HBM 투자가 성과를 내려면 고객사 인증과 수율 확보가 따라야 한다. 구미 로봇 라인과 해남 AI 데이터센터도 산업 수요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AI 경쟁은 이제 모델 개발 경쟁을 넘어 인프라 경쟁으로 이동했다. 누가 더 많은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누가 더 빠르게 데이터센터를 깔고, 누가 더 촘촘한 공급망을 갖추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가른다.

삼성은 이번 발표를 통해 반도체 기업을 넘어 AI 산업 인프라 기업으로의 확장 의지를 드러냈다. 평택과 용인에서 시작된 삼성의 반도체 벨트는 이제 광주와 천안, 세종, 구미, 부산, 울산, 해남까지 넓어진다. 발표는 끝났다. 이제 관건은 속도다. 이재용 회장이 말한 ‘속도전’은 정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AI 시대 삼성의 생존 전략에 가깝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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