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우리·iM금융, 회장 연임 75%의 역설…사외이사는 누가 검증하나
회추위 2명 반대에 연임 좌절…위원 수 따라 규제 효과 달라
주주총회 의결요건도 강화…이사회 독립성이 개혁 성패 가른다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 2026-11-02 20:41:04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문턱이 높아질수록 사외이사의 결정권은 커진다. 그러나 의결요건을 강화한다고 이사회의 독립성까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개편의 성패는 75%라는 숫자보다 그 표를 행사하는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달려 있다.
2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의원들에게 금융지주 회장의 선임·연임 요건을 강화하는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설명했다.
개선안의 핵심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찬성 요건을 최초 선임 때 3분의 2 이상, 연임부터는 4분의 3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다. 회장 장기 재임을 법으로 제한하는 대신 이사회와 주주의 검증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다만 법률 개정과 시행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주목할 부분은 동일한 75% 규정이 금융지주마다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KB금융(회장 양종희)과 우리금융(회장 임종룡), BNK금융(회장 빈대인)의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각각 7명으로 구성돼 있다. 개선안이 적용되면 최초 선임에는 5명, 연임에는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사외이사 2명만 반대해도 연임 추천이 무산된다.
반면 신한금융(회장 진옥동)의 회추위는 5명이다. 최초 선임과 연임 모두 4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의결비율은 높아지지만 실제 필요한 찬성 인원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금융(회장 함영주)과 iM금융(회장 황병우)의 회추위는 각각 9명이다. 연임에 필요한 찬성표는 7표로, 3명이 반대해야 추천을 막을 수 있다.
같은 규정이라도 위원회 규모에 따라 반대 의견의 영향력이 달라지는 셈이다. 의결비율을 높이는 것만으로 금융지주 간 동일한 수준의 견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사회의 독립성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개 은행지주 이사회에서 처리한 의결안건 993건 가운데 983건이 원안대로 가결됐다. 수정가결은 9건, 보류는 1건에 그쳤다. 원안가결률은 99%에 달한다.
높은 가결률만으로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충분한 사전 검토와 조율을 거쳤다면 원안가결 자체가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회가 경영진의 판단을 얼마나 독립적으로 검증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금융당국이 회추위원장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보도된 개선안에는 임추위원장이 주주총회에서 회장 후보 추천 이유를 직접 설명하고, 위원 전원이 서명한 확인서를 제공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현직 회장이 임추위원과 접촉하면 그 이유와 내용도 공개하도록 했다.
임추위원장에게 책무구조도상 책임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후보 추천의 권한뿐 아니라 검증 과정의 책임까지 명확히 하겠다는 취지다.
이는 회추위를 단순한 후보 선정기구에서 주주에게 판단 근거를 설명하고 책임지는 조직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그러나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강화된 절차도 형식에 머물 수 있다. 회장을 검증하는 사람이 사외이사라면, 그 사외이사를 누가 추천하고 어떤 기준으로 선임하는지도 검증 대상이 돼야 한다.
주주총회 의결요건 강화는 또 다른 변화다.
개선안에 따르면 최초 선임에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연임부터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으로 기준이 높아진다.
세 번째 임기부터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4분의 3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절반 이상 찬성을 요구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예컨대 전체 주식 100주 가운데 60주가 주총에 참석하고, 이 중 48주가 찬성했다고 가정하자. 출석 주주의 80%가 지지했지만 전체 발행주식의 절반인 50주에는 미치지 못한다. 강화된 기준에서는 회장 선임안이 부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과 외국인 기관투자자 등 주요 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더욱 중요해진다. 경영실적은 물론 내부통제와 주주환원, 장기 성장전략에 대한 평가도 연임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반면 의결요건 강화가 경영 안정성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경영성과가 우수한 회장이라도 주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충분한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하면 연임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지주 회장 교체가 반드시 강력한 규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KB금융 회추위는 지난 9월 양종희 회장의 연임 대신 이재근 지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회추위는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세대교체 필요성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이 후보는 오는 20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선임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현행 제도에서도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판단한다면 현직 회장 대신 다른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제도의 강도보다 이를 운영하는 이사회의 판단과 책임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당장의 시험대는 iM금융이다.
iM금융은 지난달 27일 차기 회장 후보군을 6명으로 압축했다. 이달 말 최종 후보군을 선정하고 12월 중 차기 회장 후보 1명을 추천할 계획이다. 황병우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만료된다. 다만 황 회장이 현재 후보군에 포함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iM금융 회추위는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행 구성이 유지된 상태에서 새로운 의결요건이 적용된다면 연임 추천에 최소 7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문제는 적용 시점이다. 이미 인선 절차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새로운 기준을 의무화하려면 법적 근거와 경과규정이 명확해야 한다. 법 개정 이전에 진행한 절차를 어떻게 인정할지, 기존 재임 횟수를 어떤 기준으로 계산할지도 정리해야 한다.
규제 시행 시점에 따라 금융지주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다면 지배구조 개선이 오히려 인선의 공정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재임이 반드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충분한 경영성과와 주주의 신뢰를 확보했다면 연임할 이유도 있다. 반대로 실적이 좋더라도 내부통제에 실패하거나 경영진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회장을 얼마나 오래 재임하지 못하게 하느냐가 아니다. 후보 선정 과정에 실질적인 경쟁이 보장되는지, 반대 의견이 의사결정에 반영되는지, 사외이사의 판단을 주주가 검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회장 연임을 어렵게 만드는 것과 좋은 회장을 선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금융지주의 권한을 회장에서 사외이사로 옮기는 데 그친다면 또 다른 권력 집중을 낳을 수 있다. 회장을 견제하는 사외이사 역시 주주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혁의 완성은 연임 문턱을 높이는 데 있지 않다. 누가 회장이 되더라도 독립적인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그 이사회 또한 주주의 검증을 받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