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소송은 끝났지만 ‘포스트 배그’ 숙제 남아
서브노티카2 분쟁 합의로 법적 불확실성 완화…해외 창작 스튜디오 M&A 관리 능력은 시험대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 2026-07-04 20:47:06
크래프톤(대표 김창한)이 ‘서브노티카2’ 소송을 합의로 마무리하며 대형 법적 불확실성을 덜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성과급 분쟁이 아니었다. 크래프톤이 ‘포스트 배틀그라운드’를 위해 인수한 해외 창작 스튜디오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소송은 끝났지만, 글로벌 게임사로 가기 위한 경영의 숙제는 그대로 남았다.
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크래프톤과 미국 자회사 언노운월즈 전 경영진 간 소송은 당사자 합의에 따른 소 취하로 종결됐다. 크래프톤은 1일 언노운월즈 전 주주대표 측이 미국 델라웨어 형평법 법원에 제기한 소송이 합의로 끝났다고 공시했다. 언노운월즈는 크래프톤이 2021년 인수한 미국 게임 개발사다. 대표작은 해양 생존 어드벤처 게임 ‘서브노티카’다.
이번 합의는 크래프톤에 분명한 호재다. 소송이 장기화됐다면 크래프톤은 금전 부담, 글로벌 팬덤 반발, 신작 운영 차질을 동시에 떠안을 수 있었다. 특히 ‘서브노티카2’는 지난 5월 얼리액세스 출시 이후 5일 만에 전 세계 판매량 400만장을 넘기며 초기 흥행을 입증했다. 크래프톤 입장에서는 흥행작의 정식 출시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다시 확보한 셈이다. 크래프톤 측도 “언노운월즈가 개발을 주도하고, 크래프톤은 게임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합의가 곧 리스크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번 분쟁의 출발점은 인수 계약에 포함된 언아웃 구조였다. 언아웃은 인수 이후 일정 성과를 달성하면 매도자에게 추가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크래프톤은 언노운월즈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성과에 따라 최대 2억5000만달러의 언아웃을 지급할 수 있는 구조를 뒀다. 지난해 공시된 청구금액은 3448억원으로, 당시 자기자본 대비 5.05% 수준이었다. 이번 소 취하 공시에는 판결·결정금액이 별도로 기재되지 않았고, 합의 조건과 금전 지급 여부도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 있다. 크래프톤은 지분을 인수했지만, 계약은 언노운월즈 창업자와 CEO의 운영권을 상당 부분 보장했다. 델라웨어 형평법원 판결문은 크래프톤이 언노운월즈 창업자인 찰리 클리블랜드, 맥스 맥과이어, CEO 테드 길에게 운영 통제권을 보장했고,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도록 계약했다고 적시했다. 법원은 또 ‘서브노티카2’의 실적 전망이 언아웃 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을 보이자 양측 관계가 악화됐다고 판단했다.
크래프톤 측의 입장도 봐야 한다. 회사는 ‘서브노티카2’ 개발 지연과 게임 완성도, 경영진 책임 문제를 들어 경영진 교체가 불가피했다는 취지로 대응해왔다. 게임사는 정식 출시 전 품질 관리에 실패할 경우 IP 가치 전체가 훼손될 수 있다. 대형 퍼블리셔 입장에서는 일정 준수보다 완성도와 장기 서비스 안정성을 우선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는 얼리액세스 단계의 평판 훼손도 이후 매출과 브랜드에 직접 영향을 준다. 크래프톤의 문제의식 자체를 무조건 부당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델라웨어 형평법원은 크래프톤의 해임 사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테드 길 CEO를 복직시키며 스튜디오 운영권을 회복하도록 했다. 법원은 크래프톤이 언노운월즈 이사회 등 회사 지배 수단을 활용해 계약상 보장된 운영권을 우회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 길 CEO의 운영권과 ‘서브노티카2’ 얼리액세스 출시 결정권을 방해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 판결과 이후 합의가 크래프톤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해외 창작 스튜디오 M&A는 단순한 지분 매입이 아니다. 게임 개발사는 공장이나 설비가 아니다. 창업자, 핵심 개발진, 커뮤니티, 개발 철학이 함께 IP 가치를 만든다. 인수자가 지배권을 확보했더라도 계약으로 보장한 창작 자율성과 운영권은 존중해야 한다. 반대로 피인수 스튜디오도 상장사의 자회사로 편입된 이상 일정, 비용, 내부통제, 정보보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균형을 설계하지 못하면 M&A는 성장 전략이 아니라 비용이 된다.
크래프톤의 현재 실적은 여전히 강하다. 토요경제 기업재무분석실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4월30일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3714억원, 영업이익 561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이다. PUBG IP 프랜차이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했고, 분기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바로 이 강한 실적이 크래프톤의 고민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크래프톤은 여전히 배틀그라운드라는 막강한 현금창출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PUBG의 힘을 알고 있다. 다음 평가는 ‘제2의 PUBG’를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언노운월즈 인수와 ‘서브노티카2’는 그 시험대였다. 초기 흥행은 긍정적이지만, 이번 분쟁은 크래프톤이 창작조직을 키우는 방식에서는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해외 보도를 종합하면 합의 이후 크래프톤은 언노운월즈 직원 전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고, 테드 길 CEO는 회사를 떠나는 방향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부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향후 새 CEO 선임과 정식 출시 준비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는 소송 부담이 줄어든 동시에 리더십 전환이라는 새 과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크래프톤이 얻은 것은 시간이다. 법적 다툼을 접고 게임 개발과 정식 출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잃은 것도 있다. 글로벌 팬덤과 개발자 커뮤니티 앞에서 창작 스튜디오 관리 능력을 의심받았다. 이 의심은 합의금으로만 지워지지 않는다. 앞으로 ‘서브노티카2’의 완성도, 업데이트 속도, 커뮤니티 신뢰 회복이 실제 답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결론은 간단하다. 크래프톤은 소송에서 벗어났지만, ‘포스트 배그’ 전략의 본질적 질문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제2의 흥행작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제2의 글로벌 IP를 키우는 조직문화는 돈만으로 만들 수 없다. 크래프톤이 글로벌 게임사로 재평가받으려면, 다음 신작의 판매량뿐 아니라 인수한 스튜디오가 크래프톤 안에서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 소송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크래프톤의 학습 능력이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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