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레이더 이어 기체까지…한화, KF-21 밸류체인 잠그나
KAI 전장비·무장 하나로 묶일 가능성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6-07-20 20:05:39
한화그룹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확대는 단순한 방산주 투자를 넘어선다. 한화는 이미 KF-21의 심장인 엔진과 눈인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전투기를 설계하고 조립하는 KAI에 대한 경영 영향력까지 확보하면 기체 개발부터 엔진, 레이더, 항전장비와 무장까지 KF-21의 핵심 가치사슬이 사실상 한 그룹 안에서 연결된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화시스템은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KAI 주식 113만5470주를 장내에서 추가 매입했다. 투입금액은 1666억2514만원, 평균 취득단가는 주당 14만6746원이다.
이번 매입으로 한화그룹이 보유한 KAI 주식은 1326만2470주로 늘었다. 지분율은 종전 12.44%에서 13.61%로 1.17%포인트 상승했다. 계열사별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965만2845주(9.90%), 한화시스템이 262만3000주(2.70%),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가 98만6625주(1.01%)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앞서 지난 8일 이사회를 열어 올해 말까지 5000억원 한도에서 KAI 주식 312만1098주를 장내 매수하기로 했다. 당시 주가를 기준으로 한화시스템의 지분율은 최대 4.73%, 한화그룹 전체 지분율은 15.64%까지 높아질 수 있는 규모다. 다만 5000억원은 투자 한도이고 실제 취득 주식 수는 향후 주가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노리는 것은 지분율 자체보다 KAI가 가진 ‘체계종합’ 역량이다. KAI는 KF-21을 비롯해 T-50·FA-50 계열 항공기와 수리온·미르온 헬기를 개발하고 생산한다. 전투기의 전체 형상을 설계하고 수많은 엔진·센서·항전장비·무장을 하나의 항공기로 통합해 시험하는 역할도 KAI가 맡는다.
한화는 이미 KF-21 내부의 고부가가치 핵심 장비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GE에어로스페이스와의 기술협력을 통해 KF-21에 탑재되는 F414 엔진을 국내에서 생산한다. 지난해 체결된 최초 양산분 전체 계약 규모는 약 1조1794억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8년 말까지 KF-21 40대에 장착될 엔진 80여 대와 후속 군수지원 체계를 공급한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AI와 4731억원 규모의 KF-21 최초 양산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대상에는 항공기의 시동과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보조동력장치 등 17종의 부품이 포함됐다. 기체를 제외한 추진기관과 주요 동력계통에서 한화의 비중이 이미 상당하다는 의미다.
한화시스템은 KF-21의 눈과 두뇌를 맡고 있다. 적 항공기와 지상·해상 표적을 탐지·추적하는 AESA 레이더를 비롯해 임무컴퓨터, 다기능시현기, 음성신호제어관리시스템, 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 적외선 탐색·추적장비 등을 개발·공급한다.
AESA 레이더는 2028년까지 KF-21 40대에 탑재될 예정이다. 구조는 KAI가 완성한 기체에 한화 계열사가 엔진과 레이더, 항전장비를 납품하는 공급자 관계다. 그러나 한화가 KAI 이사회 참여 등 실질적인 경영 영향력을 확보하면 관계가 달라진다. 기체 개발 방향과 엔진·센서·무장 개발 계획을 그룹 차원에서 조율할 수 있다. 부품 공급사였던 한화가 전투기 사업 전체를 설계하는 주체로 올라서는 셈이다.
양사는 이미 지분 관계보다 먼저 사업 결합에 들어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AI는 지난 2월 KF-21과 FA-50에 장착할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초음속 공대지·공대함 미사일을 공동 개발하고, 항공기와 무장을 묶어 수출하기로 합의했다. 한화의 유도무기 개발 역량과 KAI의 항공기 체계종합 역량을 결합한 것이다.
KAI 경영에 참여하면 이 협력은 일회성 업무협약을 넘어 상시적인 수직계열화 구조로 발전할 수 있다. 해외 고객에게 전투기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엔진과 레이더, 미사일, 정비·후속지원까지 하나로 묶은 패키지를 제안할 수 있다. 항공기 판매 뒤 수십 년 동안 발생하는 부품 교체와 성능개량, 무장 추가, 유지·보수 수익까지 그룹 안에 남길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만 한화가 KF-21 사업 전체를 독점한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F414 엔진은 GE와의 기술협력을 바탕으로 생산되고 있으며, KF-21 개발에는 한화 외에도 다수의 국내외 업체가 참여한다. 한화의 KAI 지분 13.61% 역시 한국수출입은행의 26.41%에 크게 못 미친다.
현재 지분만으로 독자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변수는 정부다. KAI는 국가 전투기와 헬기 개발을 담당하는 전략 방산기업이다. 수출입은행이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할지, 일부 지분을 내놓을지에 따라 한화의 역할도 전략적 2대 주주에서 공동경영 또는 경영권 인수 후보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지분 매입 속도와 기존 계약 관계를 함께 보면 방향은 분명하다. 한화가 원하는 것은 KAI 주식의 시세차익이 아니다. 엔진과 레이더를 공급하는 회사를 넘어 전투기 기체와 무장, 후속 군수지원까지 지배하는 종합 항공방산기업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KAI 지분 13.61%는 경영권 확보의 결론은 아니지만, KF-21 밸류체인을 묶기 위한 퍼즐이 빠르게 맞춰지고 있다는 신호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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