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8)
서울식 '갈비', 폼생폼사 '신선로'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1-28 22:59:38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다른 지역과 재는 방법이 다르다 ‘갈비’
소갈비는 갈비찜에서 변화했다. 부자 집 밥상에는 갈비찜이 있었다. 부자 집이라 하면 양반 집 일게다. 손님 대접할때 상에 올랐다. 갈비찜이 있어야 손님대접을 한 듯했다. 갈비찜은 부와 명예의 상징처럼 인식됐다. 갈비찜에는 약점이 있다. 양념에 재워 숙성을 시켜야만 한다. 숙성시간이 길다. 갑자기 손님이 오면 내놓을 방법이 없다. 이때 나온 것이 갈비구이다. 찜을 대신해 구이를 선보였다. 갈비찜 양념을 갈비에 발라 구웠다. 갈비찜 냄새가 났다. 맛도 좋았다. 주인과 손님 모두 만족했다.
갈비는 명절에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상호우의를 다지는데 한 몫을 했다. 갈비는 예전에도 비쌌다. 귀하기도 했다. 선물로 제격이었다. 다른 이유도 있다. 소갈비는 질기다. 지금처럼 연육제가 없었다. 먹으려면 체면유지를 할 수 없다. 손으로 들고 뜯어야 한다. 얼굴이 찡그려 진다. 나중에 갈비 먹은 얘기로 웃음꽃을 폈다. 자연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갈비는 비싸게 팔린다. 서민이 먹기에는 부담이 간다. 비싼 가격 땜에 사회적 물의도 발생했다. 인사동에 유명한 갈비구이 집이 있었다. 장사가 잘 됐다. 주인이 꼼수를 부렸다. 갈비에 다른 살을 실로 묶어 팔았다. 손님에게 발각돼 한 동안 화제가 됐다. 손님은 발길을 끊었다. 식당은 끝내 문을 닫았다. 음식장사에는 원칙이 있다. 맛이 좋아야 한다. 맛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정직해야 한다.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소갈비는 양반의 음식이었다. 서민도 갈비를 먹고 싶었다. 개발한 갈비가 있다. 돼지갈비다. 마포종점 부근에서 생겨났다. 값이 쌌다. 연해서 먹기 좋았다. 맛도 있었다. 술안주로 적합했다. 돼지갈비에는 꼭 술이 따랐다. 소갈비와는 다른 이미지로 다가섰다. 주당들이 모여 들어 순식간에 30~40개 식당이 문을 열었다. 마포는 전차 종점이었다. 나루터였다. 전차 기다리며 한 잔. 배 타기 전에 한 모금. 문전성시였다. 돼지갈비는 서울에서 유명세를 탔다. 유명세는 지방으로 퍼졌다. 지금은 돼지갈비가 대중화 됐다. 누구든 쉽게 먹을 수 있다. 친근한 음식이 됐다. 마포는 돼지갈비의 원조로 인정받고 있다. 마포에는 지금도 돼지갈비집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폼생폼사 '신선로'
신선로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궁중음식으로 알고 있다. 아니다. 그릇 이름일 뿐이다. 신선로는 놋으로 만든다. 신선로는 일종의 전골이다. 이미 끓인 음식을 데워 먹는다. 신선로 그릇 안에 불을 넣어 데운다.
신선로의 유래는 이렇다. 서울의 양반집에는 잔치가 많았다. 음식이 많이 남았다. 버리기 아까웠다. 남은 음식을 신선로에 데워 먹었다. 신선로에 맞는 음식도 만들어 졌다. 신선로용 국수도 있었다. 신선로는 부자의 척도였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가세를 판단했다. 신선로를 먹을 때 소주는 안 어울린다. 청주가 맞는다. 음식의 궁합이 오묘하다.
신선로는 단점도 있다. 겉모습은 멋있어 보이지만 위생적으로는 안 좋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떠먹어 불결하다. 이런 점은 극복되고 있다. 개인용으로 작은 신선로를 제공한다.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준다. 개인취향에 따라 안 좋아하는 음식이 들어갈 수 있다.
신선로의 변형이 전골이다. 남은 음식을 끓여먹는 집이 생겼다. 새로운 재료들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것저것 다 넣었다. 밖에서 불을 넣어 직접 끓였다. 전골은 종류가 많이 들어가 번잡했다. 종류를 단일화 했다. 소고기, 만두, 두부, 버섯전골로 진화했다. 돼지고기, 닭전골은 없다. 서울에서는 이런 음식을 전골이라 한다. 이북은 어복쟁반이라 부른다. 생선의 배처럼 생긴 그릇에 끓인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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