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서울 토박이가 말하는 진짜 '서울 이야기'(7)
서울 깍두기, 추탕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1-24 22:45:45
서울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은 그렇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다. 서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다가선다는 뜻일 게다. 이 연재는 '찐 서울 토박이'자 '대한민국 연예1호' 기자로 불리는 정홍택 선배의 구술을 기초 삼아 김병윤 대기자가 꼼꼼히 현장을 누비며 쓴 글이다. 김 병윤 대기자가 전하는 생동감 넘치는 서울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으로 본지에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예쁘고 맛있는 ‘서울깍두기’
서울깍두기는 손이 많이 간다.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대충대충 만들 수 없다. 칼질이 정교해야 한다. 양념도 단순하다. 젓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고춧가루가 좋아야 한다. 담백한 맛을 낸다. 고유한 맛을 갖고 있다.
서울의 김치도 마찬가지다. 새우젓과 굴 정도만 사용한다. 다른 지역 깍두기와 모양이 다르다. 정사각형이다. 주사위보다 조금 크다. 크기도 비슷비슷하다. 여인네들은 힘들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칼솜씨가 좋아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서울깍쟁이라고. 서울깍두기에서 나온 말이다. 반듯하고 빈틈이 없다는 뜻이다. 깍쟁이들의 모습이다.
서울사람의 특징이 있다. 남에게 부탁을 안 한다. 부탁을 들어 주지도 않는다. 체면을 중요시 했다. 인정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서울사람만의 생활상이었다.
서울깍두기는 먹는 방법도 특이하다. 숟가락으로 먹는다. 국물과 함께. 요즘은 서울깍두기를 보기 힘들다. 만들기 힘들어서다. 식당에 정체불명의 깍두기가 나타났다. 유명식당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식당도 예외가 아니다.
넓적한 무에 가위가 나온다. 잘라서 먹는다. 서울깍두기가 아니다. 서울깍두기를 내놓을 수 없다. 손이 많이 가서 그런다.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 서울깍두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 설렁탕에는 깍두기가 꼭 있어야 한다.
서울깍두기는 설렁탕과 최상의 조합이다.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 먹었다. 서울식이다. 서울깍두기는 지방에도 알려졌다. 서울깍두기를 상호로 사용한다. 서울깍두기의 고유성을 알 수 있다.
서울사람 건강 책임진다 ‘추탕’
추탕은 서울의 고유음식이다. 서울에서만 맛 볼 수 있다. 지방에는 추어탕이 있다. 요즘은 서울에서도 추어탕이 대세다. 일반인은 추탕을 잘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서울은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산다. 자신의 고향음식을 찾게 된다. 서울토박이는 별로 없다. 추탕이 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추탕을 파는 식당도 거의 없어졌다.
추탕은 추어탕과 요리방법이 완전 다르다. 추탕은 통 미꾸라지를 사용한다. 추어탕은 갈은 미꾸라지를 쓴다. 국물을 내는 방법도 다르다. 추탕 국물은 고추장을 풀어 만든다. 추어탕은 된장으로 국물을 낸다. 향료도 다르게 썼다. 추탕에는 후추를 넣는다. 생마늘을 갈아서 넣기도 한다. 추어탕은 산초와 함께 먹는다.
추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서울은 다양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다. 많은 실개천이 흘렀다. 얕은 강변이 있었다. 농약도 없었다. 미꾸라지가 살기 좋았다. 미꾸라지의 천국이었다. 언제나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다. 보양식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조리방법도 간단했다. 미꾸라지에 소금을 넣어 해감 했다. 불순물이 빠진 통 미꾸라지를 그대로 삶았다. 갖은 양념과 함께. 잘게 부수는 번거로움 없었다. 식감도 좋았다. 씹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서민의 음식으로 자리매김 했다.
추탕으로 유명한 식당이 있었다. 형제추탕이다. 지금은 문을 닫았다. 고(故) 김윤명씨가 창업했다. 숭인동에 문을 열었다. 김윤명 씨는 전 연세대 야구감독 김충남의 아버지다. 김 감독은 증언한다. 형제추탕에는 36가지 양념이 들어갔다고. 추탕에는 물이 중요하다. 물이 좋아야 한다. 요즘은 아니란다. 깨끗한 물이 없어 아쉽다고 한다. 미꾸라지도 자연산이 좋다고 한다. 형제추탕은 임진강 자연산 미꾸라지를 썼다.
김윤명 씨는 5형제 중 2남이다. 형제추탕을 50년간 운영하고 은퇴했다. 동생들에게 추탕 식당을 열어 줬다. 식당 상호도 같았다. 가족 프랜차이즈 식이었다. 5째 동생의 아들이 몇 년 전까지 가업을 이어갔다. 영업부진으로 가업을 접었다.
형제추탕은 정객들의 사랑방이었다. 김윤명 씨의 형이 초대 시의원인 고(故) 김수길 씨였다. 민주당 소속이었다. 장면 장택상 임흥순 씨 등 거물정객이 모여 들었다. 추탕 한 그릇을 놓고 정국을 논했다. 가난한 정치인의 집합장소였다. 연예인도 많이 왔다. 1950~60년대 유명인들이 꼭 들리던 식당이었다.
곰보추탕도 유명했다. 주인은 형제추탕 주방장 출신이었다. 매우 성실하게 일을 했다. 김윤명 씨가 가게를 내줬다. 추탕의 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곰보추탕도 장사를 그만 뒀다. 이유는 모르겠다.
지금은 용금옥이 추탕의 맥을 잇고 있다. 용금옥은 다동과 통인동에 있다. 용금옥은 고(故) 홍기녀 씨가 창업주이다. 다동은 창업주의 아들이 물려받았다. 통인동은 막내며느리가 운영한다. 세월이 흘러 두 집의 맛도 다르다. 먹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추탕의 맥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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