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대우건설 결별 뒤 정부 비상관리…시공사 교체 판단 도마
협상 연장 거부하고 신규 시공사 선정에 9개월
정부, 사흘 만에 직접 관리…한수원 조정 책임 부각
이슬기 기자
sgpress@sateconomy.co.kr | 2026-11-01 19:09:44
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원전 시공 협상을 종료한 지 사흘 만에 정부가 비상관리체제를 가동했다.
한수원이 사업 일정 준수를 이유로 기존 시공사와 결별했지만, 정작 새로운 시공사를 선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협상 종료의 불가피성과 별개로 한수원의 의사결정과 사업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일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에 비상관리체제를 가동하고 장관과 차관이 매주 직접 주요 현안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공사 일정과 품질,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 요인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김 장관은 한국수력원자력(사장 김회천)에 설계·조달·시공(EPC) 주계약자로서 더 큰 책임과 리더십을 요구했다. 협력기업의 의견을 듣고 이견을 적극적으로 조율해야 한다는 주문도 내놨다.
정부가 불과 사흘 만에 대응 수위를 높였다는 점은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김 장관은 지난 10월 29일 한수원이 대우건설(대표 이강석)·두산에너빌리티(대표 박지원·정연인·박상현) 컨소시엄과의 협상 종료를 발표했을 당시 신규 시공사 선정이 불가피하다는 한수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흘 뒤에는 정부가 직접 사업을 관리하겠다며 한수원의 갈등 조정 책임을 강조했다. 협상 종료 결정을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한수원이 내부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국가 원전 수출사업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대응에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실제 이번 사태에서 가장 의문스러운 부분은 한수원의 시간 관리다.
한수원은 15개월 동안 실무회의 78회와 이견조정위원회 11회 등을 진행했지만 합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체코 발주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협상을 더 연장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시공 주간사인 대우건설은 한수원이 10월 7일 새로운 계약조건을 제시한 뒤 충분한 검토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올해 말까지 협상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두산에너빌리티는 대우건설이 발표한 입장문이 자사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수원이 기존 협상을 중단한 이후의 일정이다.
한수원은 2027년 7월까지 신규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기존 업체와 추가 협상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업체를 찾고 계약을 체결하는 데는 약 9개월을 잡은 것이다.
물론 기존 협상의 장기화와 신규 입찰 절차를 단순히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정 준수가 협상 종료의 핵심 근거였다면 시공사 교체가 협상 연장보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사실부터 설명해야 한다.
더구나 기존 협상 결렬의 원인도 해결되지 않았다.
양측은 공사비와 설계 변경에 따른 위험 분담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한수원은 총액확정 계약방식이 사업비 관리에 필요하며 시공사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면 비용 위험이 커진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우건설은 설계에 관여하지 않는 시공사가 향후 공사 물량 증가에 따른 위험까지 과도하게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시공사가 선정되더라도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부담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기존 조건을 유지하면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수 있고, 조건을 완화하면 기존 컨소시엄과의 협상을 종료한 경제적 타당성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시공사 교체에 따른 추가적인 부담도 있다. 신규 업체는 기존 설계자료와 현지 사업환경을 파악하고 관련 인력 및 협력업체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기존 컨소시엄이 수행한 업무의 인계와 비용 정산도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건설사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수년간 준비해 온 사업의 시공체계를 재편하는 결정이다.
한수원은 신규 시공사 선정 전까지 일부 필수 업무를 직접 수행하고 별도로 발주해 사업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 자체가 시공사 교체에 따른 추가 관리 부담이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한수원에도 사업비를 통제하고 발주사와 약속한 일정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기존 컨소시엄과의 협상이 계속 결렬된다면 다른 시공사를 찾는 선택도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2018년부터 체코 원전 수주에 참여한 기존 시공 컨소시엄과의 협상을 종료한 판단은 그만큼 엄격하게 검증해야 한다. 장기간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사실은 협상 종료의 근거인 동시에 주계약자인 한수원의 갈등 조정 능력을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원전수출진흥법에 중립적 전문가가 참여하는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된다. 기존 협력체계만으로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이해 충돌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드러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은 국가적 수출사업이다. 시공사가 바뀌더라도 체코 발주사에 대한 주계약자의 책임은 한수원에 남는다. 사업 일정이 지연되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정부의 비상관리체제가 한수원의 협상 종료를 잘못된 결정으로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개입해야 할 정도로 갈등이 확대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수원의 사업관리 방식은 재검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향후 한수원이 입증해야 할 것은 협상 종료의 불가피성이 아니라 그 결정의 합리성이다. 기존 시공사와의 협상을 지속하는 것보다 신규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이 사업 일정과 비용, 위험 관리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이번 결정은 사업 위험을 해소한 조치가 아니라 해결하지 못한 갈등을 뒤로 미룬 선택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전망이다.
토요경제 / 이슬기 기자 sgpress@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