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접촉사고에 3000만원…車보험료 잡아먹는 한방진료비
경상환자 한방병원 치료비 5년 새 26.5% 증가…9월부터 8주 초과 치료 확인제도 시행
김연수 기자
kys@sateconomy.co.kr | 2026-08-04 18:35:44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한 경상환자의 한방진료비가 빠르게 늘면서 자동차보험 손해율과 보험료 부담을 키우고 있다. 정부는 오는 9월 10일부터 8주를 넘겨 치료받는 경상환자에 대해 전문 의료인의 검토를 받도록 제도를 바꾼다. 보험업계는 손해율 개선을 기대하고 있지만, 의료계와 환자들은 획일적인 기준 적용을 우려하고 있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 등 대형 손해보험사 4곳의 경상환자 1인당 한방병원 치료비는 2020년 85만6000원에서 2025년 108만3000원으로 26.5% 늘었다. 양방병원 치료비는 같은 기간 5.0%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방병원의 증가율이 양방병원의 5배를 웃돈 셈이다.
일부 한방병원에서는 진료비 규모가 평균을 크게 넘어섰다. 한 네트워크 한방병원의 지난해 경상환자 1인당 치료비는 168만1000원으로 양방병원 평균의 4.7배였다. 8주를 초과한 환자의 평균 치료비는 292만원으로 양방의 8.2배에 달했다. 접촉사고로 경상을 입은 환자가 약 300일간 한방치료를 받고 3175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례도 있었다.
보험업계는 장기치료와 여러 진료행위를 함께 시행하는 이른바 ‘세트청구’를 진료비 증가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한방병원의 경상환자 통원 세트청구 진료비는 2020년 675억원에서 지난해 2534억원으로 연평균 30.3% 증가했다. 중상환자 증가율 21.6%를 웃돈다. 진료 항목별로는 뜸, 한방물리요법, 추나 등을 중심으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한방진료에서는 유사한 치료를 함께 시행하는 세트청구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고, 고가의 상급병실 입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한방진료비는 2024년 8.5%, 2025년 5.1% 전년 대비 증가했다”고 말했다.
상급병실 이용도 늘었다. 한방병원의 1~3인실 병실료는 2020년 89억5000만원에서 지난해 320억1000만원으로 연평균 29.0% 증가했다. 지난해 지급된 한방 상급병실료는 273억원으로 양방 35억원의 약 8배였다.
손해보험협회 자료를 보면 올해 경상환자의 88.6%는 사고 후 8주 이내 치료를 마쳤다. 반면 8주를 초과한 환자 가운데 한방의료기관 이용 비중은 87.5%였다. 업계는 장기치료 환자에서 한방 이용 비중이 높다는 점을 제도 개선 필요성의 근거로 보고 있다.
한방진료비 논란은 수사로도 이어졌다. 경찰은 최근 자생한방병원의 자동차보험 진료비 청구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병원 측은 환자별 처방에 따른 정상 진료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늘어난 진료비는 자동차보험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자동차보험은 약 1890억원 적자를 기록하며 6년 만에 손실로 돌아섰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주요 5개사의 상반기 누적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4.1%로 전년 동기보다 1.5%포인트 상승했다. 메리츠화재를 제외한 대형 4개사 기준 손해율은 84.5%로 1.9%포인트 높아졌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경상환자의 한방진료비와 장기치료 증가는 자동차보험 손해율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치료기간 장기화와 한방 세트청구, 상급병실 이용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기치료에 따른 보험금 누수를 줄이기 위해 ‘8주 초과 치료 확인제도’를 도입한다. 국토교통부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4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다음 달 10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대상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12~14급 경상환자 가운데 염좌·타박상 환자다. 8주를 넘겨 치료받으려면 전문 의료인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국토부는 불필요한 보험금 지출을 줄여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부담을 낮추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경상환자는 2019년 155만4000명에서 지난해 148만8000명으로 연평균 0.9% 감소했다. 반면 치료비는 같은 기간 1조원에서 1조4100억원으로 연평균 7.0% 증가했다.
보험업계는 제도 시행이 손해율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경상환자의 장기치료에 따른 자동차보험 부담은 이미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문제”라며 “8주를 초과한 치료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마련되면 불필요한 장기치료를 줄여 손해율 개선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치료기간만으로 과잉진료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실제 교통사고로 목과 허리 등을 다쳐 한방치료를 받은 A씨는 “침과 추나 치료를 받은 뒤 효과를 체감한 시점은 10주 정도였다”며 “상해등급보다 환자의 회복 상태를 기준으로 치료기간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잉진료 여부는 치료기간보다 어떤 치료를 얼마나 반복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새 제도는 치료를 일률적으로 8주에서 끝내는 방식은 아니다. 추가 치료 필요성을 전문 의료인이 확인하는 절차다. 관건은 심사 기준의 정교함이다. 불필요한 장기치료를 줄이면서도 실제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제도의 실효성이 생긴다.
토요경제 / 김연수 기자 kys@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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