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뚫은 원화의 국경…한국 은행사의 새 분기점

해외 진출 58년 만에 원화 국제결제 첫 실거래
달러 의존 넘어 해외 투자금 결제시장에 새 기회

김지영 기자

jykim.media@gmail.com | 2026-11-02 17:52:23

▲ 우리은행과 우리금융그룹.[연합뉴스]

 

국내 시중은행은 반세기 전 국경을 넘었다. 이제 원화 결제에도 새로운 길이 열렸다. 우리은행이 싱가포르에서 해외 원화계좌를 활용한 국내 투자대금 결제를 은행권 처음으로 성사시켰다.

2일 우리은행(은행장 정진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해외 투자기관이 싱가포르지점에서 개설한 원화계좌를 통해 한국은행 원화국제결제망으로 국내 증권사에 투자대금을 송금했다. 국내 은행에 별도 원화계좌를 개설하지 않고 국내 금융상품 투자대금을 결제한 은행권 첫 사례다.

이번 거래는 한국 은행사의 흐름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은행은 1899년 대한천일은행에서 출발해 1968년 도쿄에 국내 시중은행 최초의 해외지점을 열었다. 국내 은행이 세계 금융시장에 진출하는 출발점이었지만 해외에 은행이 진출하는 것과 원화를 해외에서 직접 결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국은 수출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국제 금융거래에서는 달러 의존도가 높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 개방이 단계적으로 진행됐음에도 해외 투자자의 원화 접근성에는 상당한 제약이 남았다.

해외 원화 거래에서도 실제 원화를 주고받지 않고 환율 차액을 달러로 정산하는 차액결제선물환(NDF)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화의 가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됐지만 원화 자체의 역외 결제는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자본시장의 국제화에도 걸림돌이었다. 글로벌 지수사업자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원화의 제한적인 역외 태환성과 시장 접근성을 한국 금융시장의 개선 과제로 지적해 왔다.

정부가 올해 7월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하고 한국은행이 9월 원화국제결제망 시범운영에 들어간 것도 이러한 제약을 줄이기 위해서다.

우리은행은 이번 거래를 통해 제도적 변화가 실제 투자 결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해외원화업무취급기관(RFI-K)을 활용하면 외국인 투자자는 해외 현지에서 원화계좌를 개설하고 국내 결제망 참가기관의 통합원화계좌를 통해 투자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 한국은행 결제망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24시간 운영돼 해외 투자자의 시간적 제약도 줄였다.

이는 단순한 송금 편의 개선을 넘어선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금융상품에 접근하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원화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국내 은행의 글로벌 사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과거 해외지점이 현지 진출 기업의 자금 조달과 외환거래 지원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해외 기관투자자의 국내 투자자금을 연결하는 결제 거점으로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9월 싱가포르·도쿄·런던지점과 중국법인 등 4개 거점을 RFI-K로 등록했다. 해외 투자기관의 원화계좌를 확보하면 외환매매와 송금·결제, 자금관리 등 관련 금융서비스로 거래관계를 넓힐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국내 은행권의 글로벌 경쟁 기준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해외 점포 수와 현지 대출 규모뿐 아니라 국제 투자자금의 결제 수요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새로운 경쟁 요소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첫 거래가 곧바로 원화 국제화의 완성이나 우리은행의 수익 증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결제망은 시범운영 단계이며 거래금액과 투자상품, 수수료 수익도 공개되지 않았다. 원화가 국제적으로 폭넓게 통용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유동성과 시장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첫 거래라는 기록보다 그 이후다. 해외 투자기관이 원화를 얼마나 활발하게 거래하고 국내 금융시장으로 자금을 유입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우리은행이 연 새로운 결제 경로의 가치는 앞으로 쌓일 거래 실적이 증명하게 된다.

 

토요경제 / 김지영 기자 jyki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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