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무리 규제 산업이라지만…금감원의 과도한 ‘두더지 잡기’

김자혜

kjh@sateconomy.co.kr | 2024-05-01 08:00:21

▲ 경제부 김자혜 기자1분기 중 보험업계의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에 제동을 걸었던 금융감독원이 최근 보험사가 판매한 암보험 유사암 진단비에 개입하고 나섰다. 반복되는 규제 탓에 보험사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도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유사 암은 암과 닮았지만, 증식과 전이가 되지 않아 암으로 분류하지 않는 질병이다. 예를 들면 갑상선 암, 경계성 종양, 제자리 암 등이 해당한다. 위암이나 폐암 등 일반 암보다 위험도는 낮지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갑상선 암은 인구 10만 명당 발생률 1위(68.6명)를 기록했다.

암·뇌·심장 등 3대 질병에 대한 보장은 보험소비자들 사이에서 필수적으로 인식될 만큼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보험사들은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기 위해 통합 암보험을 만들었다. 부위별 암 보장 항목을 늘리거나 원발 암에 대한 중복보장, 보장 횟수 확대 등 그동안 비어있던 보장 영역을 촘촘히 메우면서 가입자를 유치했다.


특히 손해보험사들은 이달 초부터 통합 암보험을 판매하면서 유사 암의 진단비를 2000만원으로 구성해 마케팅을 벌였다.

위암, 폐암 등 발병 확률이 높은 일반 암의 진단비는 최소 100만 원으로 하고, 두경부암 같은 발병률이 낮은 질병의 진단비는 1억 원까지 높였다. 이렇게 진단비를 구성하면 유사 암 진단비 가입 한도(일반 암의 20% 수준)를 2000만원까지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상품을 판매한 지 한 달여 만에 ‘단돈 만 원대에 유사 암 2000만원 보장’ 등이 기존의 권고사항에 맞지 않는다며 제지에 나섰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상품을 판매하면서 ‘과당 경쟁’, ‘손해율 상승’, ‘소비자의 피해’ 등을 야기한다며 명분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정작 현재까지 규제 대상이 된 간호·간병비, 단기납종신 환급률, 유사 암 진단비 등을 보면 소비자의 피해라고 볼 정도의 문제가 불거진 적은 없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손해율 상승을 이유로 우려하는데, 영리 목적의 보험사가 손해가 뻔한 판매를 지속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특히 보험상품은 과거 '오래된 상품이 좋다'는 통설이 있었지만, 2016년 이후부터 보장 영역이 다양해지고, 보험료 부담도 낮추는 등 선택의 폭은 더 확대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당국의 규제로 상품이 절판 되면, 예를 들어 유사암 진단비 2000만원의 상품을 원했던 보험 가입자는 더 이상 상품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당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설계사들은 이를 활용해 절판 마케팅을 벌인다. 또 절판 후 유사 상품이 재출시 되면, 설계사들은 같은 보장에 더 좋은 혜택으로 바꾸라며 보험 갈아타기 마케팅도 가능하다. 소비자의 피로도만 높아지는 꼴이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두더지 잡기처럼 반복되는 규제에 고객 관점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제약 조건을 우선 시 하게 되고, 눈치보기에 급급해 위축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금감원은 단순한 감독에 그칠게 아니라 소비자, 보험사 등 시장 참여자가 어느 정도 동의할 만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럴 시점이 왔다.

 

토요경제 / 김자혜 기자 kjh@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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