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문화산책] 한 상에 오른 산과 바다…정혜란 셰프가 바다를 낚는 법

금호동의 한 식당서 지리산 어란과 협업…기술보다 재료를 보는 시선에 방점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 2026-07-28 17:10:25

지난 7월 9~11일까지 서울 금호동의 한 식당에선 작은 협업이 열렸다. 정혜란 셰프의 '사바보우스시'와 지리산 어란 장인 양재중의 '어란'이 한 상에 올랐다. 마라도 해역에서 올라온 자연산 '활고등어'와 지리산의 볕과 바람으로 말린 '어란'. 하나는 바다에서, 하나는 산에서 왔다. 그러나 이번 협업의 핵심은 낯선 조합이 아니라 재료를 다루는 태도에 있었다.

정 셰프의 중심에는 고등어가 있다. 고등어는 익숙한 생선이다. 흔하다고 무시할 재료는 아니다. 정 셰프는 이 흔하고 익숙한 생선을 사바보우스시로 만든다. 생선의 선도를 확인하고, 살의 결을 살피고, 수분을 조절한다. 초의 산미는 비린 기운을 누르고, 밥의 온도는 고등어의 기름진 맛을 받친다. 마지막 칼질을 지나 접시에 놓이면, 괄시받던 생선은 고품스런 요리가 된다.
 

▲ 고등어를 다듬는 정혜란 셰프 [마리아김]

 

고등어는 사실 다루기 힘든 생선이다. 선도가 조금만 흔들려도 비린내가 올라오기 십상이다. 손이 늦어도 안 되고, 간이 과해도 안 된다. 재료를 믿되 방심하지 않아야 하고, 손을 대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정 셰프가 마라도 해역의 자연산 활고등어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흔한 생선이 귀한 음식이 되려면 만드는 이조차 그 재료를 귀하게 대해야 한다.

양재중 장인의 어란은 전혀 다른 시간을 지나 완성된다. 국내산 참숭어알을 골라 핏물을 빼고 염장한 뒤, 문배주를 바르고 지리산의 볕과 바람 속에서 말린다. 이 과정은 서둘러 끝낼 수 없다. 고등어가 가장 좋은 순간을 빠르게 붙잡아야 하는 재료라면, 어란은 오래 기다려야 제맛에 닿는 음식이다.

 

▲ 정혜란 셰프가 조리한 계절솥밥, 빨간물고기는 두줄촉수 물고기, 구우면 새우맛이 나는 물고기로 일본말로(오지상) 긴 수염이 아저씨같다는 데서 유래.

 

속도는 다르지만 두 음식은 같은 방향을 향한다. 재료가 가진 가장 좋은 상태를 놓치지 않는 일이다. 정 셰프는 고등어가 가진 맑고 기름진 맛을 사바보우스시로 세우고, 양 장인은 숭어알이 품은 맛을 시간으로 응축한다. 두 음식은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된 뒤 한 상에서 만났다.

이번 협업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유명 셰프와 장인의 만남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에서 요리를 배웠지만, 결국 자신이 선 자리의 재료로 돌아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술은 일본에서 배웠지만 접시 위의 맛은 한국의 바다와 산에서 온다. 정 셰프가 마라도 고등어를 통해 한국 바다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양 장인은 지리산의 볕과 바람으로 한국 어란의 깊이를 길러낸다.

정 셰프에게 음식은 직업이 되기 전에 자신을 회복시키는 경험이었다. 그는 한때 모델과 방송 일을 하며 대중 앞에 서는 삶을 꿈꿨다. 그러나 스물다섯 살에 갑상선암 수술을 겪으며 몸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후 일본에서 만난 한 끼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이었다. 그는 그 경험을 통해 먹는 일이 사람을 다시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일본 요리 전문학교로 향했다.

▲ 정혜란 작

 

일본 요리의 힘은 화려한 장식보다 태도에 있다. 계절을 읽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며, 먹는 사람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균형을 찾는다. 정 셰프가 배운 것도 조리법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 태도를 한국의 식재료 위에 옮겨놓는다. 일본식 기술을 쓰지만 재료는 한국의 바다와 땅에서 찾는다. 마라도 고등어와 한국의 제철 식재료, 지리산의 어란이 그의 상 위에 오르는 이유다.

그가 자기 이름을 걸고 음식을 낸다는 감각도 중요하다. 어린 시절 이름에서 비롯된 별명은 지금 그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닿아 있다. 유행을 좇은 간판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음식을 내겠다는 마음이다.

▲ 정혜란 셰프

 

“무대에 설 때보다 제 음식을 손님 앞에 내놓을 때 더 떨리고 긴장돼요.”

정 셰프의 이 말은 그의 요리를 설명하는 문장에 가깝다. 한때 사람들 앞에 서는 삶을 꿈꿨던 그는 이제 접시 하나 앞에서 더 큰 책임을 느낀다. 그 떨림은 단순한 긴장이 아니다. 손님의 몸과 마음 앞에 자기 이름을 걸고 서는 사람의 마음이다.

일본 핫토리조리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곧바로 식당을 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코로나가 닥쳤고, 그는 집 거실에 소파 대신 6인용 식탁을 놓았다. 지인들을 불러 음식을 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 작은 식탁에서 그는 요리의 본질을 다시 배웠다. 음식을 만드는 일보다 더 큰 기쁨은 그 음식을 먹은 사람의 얼굴이 달라지는 순간에 있었다. 금호동의 작은 식당은 그 식탁에서 시작됐다.

그의 대표 음식인 사바보우스시는 기술의 음식이면서 동시에 태도의 음식이다. 고등어를 비싸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너무 익숙해 가치를 잊기 쉬운 재료를 다시 보이게 하는 일이다. 좋은 재료는 스스로 말하지만, 그 말을 들을 줄 아는 손이 있어야 접시 위에서 살아난다.

세계의 좋은 음식문화도 결국 지역 식재료에서 다시 시작됐다. 제철 지역 식재료를 앞세운 캘리포니아 퀴진이나, 생산자와 환경, 공정성까지 음식의 가치로 확장한 슬로푸드 운동도 같은 맥락에 있다. 좋은 식당은 메뉴를 파는 곳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의 재료를 새롭게 보이게 하고, 먹는 사람에게 그 재료가 지나온 시간을 감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번 협업은 특별 메뉴 행사로만 볼 수 없다. 한국의 바다와 산에서 온 재료가 일본에서 배운 조리 기술을 만나 새롭게 해석된 자리였다. 그 과정에는 맛뿐 아니라 재료의 출처와 시간, 먹는 사람의 몸을 생각하는 태도가 들어 있었다.

▲ 조리 중인 정혜란 셰프

 

음식은 자주 빠르게 소비된다. 맛있다, 비싸다, 유명하다, 새롭다. 그러나 좋은 음식 앞에서는 조금 더 천천히 물어야 한다. 이 재료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가 잡았고, 누가 말렸으며, 누가 손질했는가. 어떤 시간이 지나 내 앞에 놓였는가.

정혜란 셰프가 고등어를 다루는 방식이 남기는 의미도 여기에 있다. 그는 고등어가 가진 가장 좋은 순간을 붙잡는다. 양재중 장인의 어란은 숭어알에 긴 시간을 입힌다. 하나는 금방 무너질 수 있는 선도를 다루고, 다른 하나는 오래 기다려야 완성되는 밀도를 다룬다. 방식은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무엇을 귀하게 보고, 어떤 마음으로 손님 앞에 내놓을 것인가.

이름을 걸고 차린 상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자기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재료와 시간을 손님 앞에 내놓는 일. 그리고 한 점의 음식을 통해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재료의 가치를 다시 보게 하는 일이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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