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일천하’로 끝난 정부의 단통법 폐지 개혁 의지
최영준 기자
cyj@sateconomy.co.kr | 2024-03-20 16:55:02
‘삼일천하’
정복이나 쿠데타 등의 수단이 성공한 뒤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고배를 마시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1884년 김옥균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우정국을 습격하고 그날 정권을 장악해 천하를 얻는 듯 보였다. 하지만 3일 뒤 일본이 돌연 지원을 중단하게 되고, 결국 청나라군의 습격을 받아 패퇴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삼일천하’ 사례로 꼽히는 갑신정변 이야기다.
최근 우리 정부는 ‘삼일천하’의 대표 사례를 다시 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바로 정부가 추진한 ‘단통법(단말기 유통법) 시행령’이 그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가계통신비를 낮추겠다는 일념으로 통신사와 제조사를 포함한 통신업계의 생태계 개혁을 추진했다. 2014년부터 통신사들의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을 보존하도록 해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올해 1월 2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단통법 폐지 계획을 처음 밝혔다.
정부 입장에서도 대한민국 경제의 커다란 주춧돌 중 하나인 스마트폰 시장의 생태계를 개혁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단통법 폐지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부는 법 폐지 이전에 마케팅 경쟁이라도 촉진시키기 위해 ‘단통법 시행령 개정안’을 먼저 내놓았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소비자가 사용하던 통신사를 변경할 때, 새로 이동하게 될 통신사가 ‘번호이동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최대 50만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 14일 처음 시행됐는데, 당시 소비자들은 최신형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관련업계 역시 새로운 개정안이 앞으로 시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지에 주목했다.
하지만 한껏 부풀어 올랐던 시장의 기대치는 3일 만에 사그라졌다. 제도 시행 3일 만에 통신3사가 공개한 가이드라인이 통신사 간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정부의 처음 취지와 거리가 있어 보였다. 더욱이 실제 번호이동을 한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혜택도 미미했다.
실제 통신사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보면 너무 복잡해서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모든 가이드라인을 충족해도 실제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지원금은 최소 3만원에서 많게는 13만원에 그쳤다. 처음 언급된 지원금 50만원과는 괴리가 크다.
더 나아가 일부 통신사는 공시지원금과 동일한 로직으로 번호이동지원금에도 위약금이 부과하는 기준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약정 기간 내 요금제 등을 소비자가 임의로 변경하게 되면 생각도 못 했던 위약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파악한 정부는 지난 18일 이통3사 및 단말기 제조사 임원들을 불러 전환지원금 상향에 대한 협조를 부탁했다. 또한 오는 22일에는 김홍일 방통위원장이 이통3사 대표와 삼성전자 사장, 애플코리아 부사장과 간담회 자리 갖고 전환지원금 및 통신비 인하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개정안을 시행하기 이전에 지금보다 더 고민했다면, 경영 일선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기업인들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 불필요하고도 불편한 만남을 가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관련 업계에서는 번호이동 지원금이 제구실을 하려면 금액도 중요하지만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요금할인 약정에 가입해도 번호이동지원금을 지급해야 요금제 변경 등에 족쇄가 풀린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통신사와 스마트폰 단말기 제조사의 팔을 비틀어 번호이동 지원금 액수를 무리하게 높이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실제 소비자들의 통신비를 낮출 수 있는 방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앞서야 할 것이다.
토요경제 / 최영준 기자 cyj@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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