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넥슨에 인생의 절반을 조작당했다”

최영준 기자

cyj@sateconomy.co.kr | 2024-01-05 06:00:05

▲ 경제부 최영준 기자

“나는 인생의 절반을 조작당했다.”

넥슨의 간판 MMORPG ‘메이플스토리’와 슈팅게임 ‘버블파이터’를 주력으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했던 스트리머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있던 날 뱉은 말이다.

그는 넥슨의 이 두 게임을 즐겨하면서 과금도 만만치 않게 했다. 이 스트리머가 실제로 인생의 절반을 조작당하지는 않았겠지만 이처럼 강한 표현을 쓴 것은 애정과 시간, 비용을 들인 게임이 알고 보니 조작이라는 데에서 온 배신감 때문이다.

넥슨은 공정위로부터 대표 온라인게임 ‘메이플스토리’ 내부에 존재하는 ‘큐브’ 아이템 확률 조작 등으로 전자상거래법을 위반해 과징금 116억4200만원을 부과받았다. 문제가 처음 제기됐던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넥슨에서 유료 아이템인 ‘큐브’를 메이플스토리에 도입한 시점이 2010년 5월이었는데, 확률을 조작하기 시작한 시기가 2010년 9월이다. 새 아이템을 도입한 지 4개월 만에 확률 조작을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넥슨은 2011년 8월 이후부터는 선호도가 굉장히 높았던, 이른바 ‘종결 옵션’을 획득하기 위한 확률을 0%로 설정해 사실상 뽑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고기는 안 팔고 고기 굽는 냄새만 판 셈이다.

메이플스토리 이용자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확률을 조작한 지 10년이 넘게 지난 시점인 지난 2021년, 넥슨에서 진행한 ‘큐브’ 확률공개를 통해 처음 알아차렸다.

이때 분노하며 넥슨 사옥 앞으로 시위 트럭을 보내고 게임을 떠나며 항의했던 이용자들이 이번 과징금 부과 발표 후 재차 분노하고 있다. 이유는 이번 공정위 발표로 인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확률 조작이 추가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넥슨은 2013년 7월 새로운 종류의 확률형 아이템인 ‘블랙큐브’ 아이템을 출시했다. 기존의 큐브보다 아이템 등급 상승 확률이 높고 가격도 더 높은 아이템이다.

메이플스토리의 잠재 옵션 등급은 레어→에픽유니크레전드리 순서로 구성돼 있는데, 넥슨은 당시 출시한 ‘블랙큐브’가 유니크 등급에서 최종 단계인 레전드리 등급으로 상승시킬 확률을 1.8%로 설정해 판매했다.


하지만 넥슨은 해당 아이템의 등급 상승 확률도 출시 5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까지 아무런 공지 없이 매일 확률을 조금씩 낮추면서 최종 1.4%까지 감소시켰다. 심지어 이에 그치지 않고 2016년 1월에는 해당 확률을 1%로 낮췄다. 이번에도 역시 공지는 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넥슨이 ‘블랙큐브’ 확률 공지를 앞두고 확률 하향 사실을 ‘최대한 숨겨야 하는 부분’이라면서 확률 하향 조정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했다고 강조했다.

또 공정위는 넥슨이 메이플스토리 아이템 기획 당시 “참을성이 부족한 일부 이용자들을 위해 돈으로 살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을 날린다”거나 “게임을 할 때 마다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이런 거 있으면 돈 주고서라도 꼭 한다’ 등의 순간적인 감각을 잊지 말고 캐치 해 아이템화 한다”는 문서 내용도 공개했다.

해당 과징금 부과 등 제재에 넥슨은 “공정위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행정적 제재를 위해 준수해야 하는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레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공정위 심사과정에서 소명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이 있어, 의결서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공정위에 이의신청을 하거나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넥슨이 처음 큐브 아이템의 확률을 조작했던 2010년 9월부터 확률을 공개한 2021년 3월까지 큐브의 총 누적 매출액은 약 5500억원으로, 이번에 부과된 과징금보다 약 48배 많은 금액이다.

물론 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로 인한 과징금 중에 역대 최다 금액이긴 하지만 전자상거래법이 생긴 2002년 이후 22년간 단 한 번도 없었던 공정위 위원 9명이 전부 회의에 참석한 대사건인 만큼, 넥슨은 결과를 말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넥슨은 최근 이미지 쇄신을 잘해오고 있었던 만큼, 엉성한 변명을 늘어놓기보다는 진실 어린 사죄와 보상안, 대책, 재발방지책 등을 마련해 무너진 신뢰 회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피해받은 넥슨 게임 이용자들을 위한 길이 아닐까 싶다.

 

토요경제 / 최영준 기자 cyj@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