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미래다] 한국공공기관 직원이 된 귀화 한국인 사윤주 씨
결혼이민자 정착에 힘쓰며 보람을 느낍니다.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8-23 16:35:04
▲ 남편 강신호 씨. 1남1녀 자녀들과 행복하게 생활하는 사윤주 씨.<사진=사윤주씨 제공>
사윤주(38) 씨. 귀화 한국인이다. 중국 창춘 출신이다. 2008년 남편 강신호(46) 씨와 처음 만났다. 남편이 창춘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했다. 첫 만남의 인상이 좋았다. 2009년 8월에 결혼했다. 중국에 한류열풍이 몰아칠 때다. 결혼식을 두 번 했다. 중국과 한국에서 예식을 치렀다. 2009년 12월 한국에 정착했다.
결혼이 쉽지는 않았다.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언니와 삼촌이 반대했다. 결혼 전에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고민에 빠졌다. 결론을 내렸다. 사랑을 선택했다. 듬직한 남편을 따르기로 했다.
결혼생활이 편치 않았다. 시어머니와 문화적 갈등이 생겼다. 언어소통도 안 됐다. 우울증이 왔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낮에 어학원을 보내줬다. 친구가 생겼다. 수강생 대부분이 여학생이었다. 다문화가정 주부도 있었다. 선생님과 식사도 자주 했다. 어학원 생활이 즐거웠다. 생활에 활력이 붙었다.
2010년 12월 첫딸이 태어났다. 2012년 2월 둘째 아들이 탄생했다. 연년생이었다. 임신과 육아, 공부병행이 힘들었다. 둘째를 낳은 뒤 잠시 쉬었다. 몸을 추스른 뒤 다시 어학원에 나갔다. 1년간 공부를 더 했다. 많은 도움이 됐다. 한국어 대화가 됐다. 시어머니와 갈등도 사라졌다. 시어머니가 후원자가 됐다. 외부활동을 적극 권장했다. 지인이 많이 생겼다. 다양한 정보도 알게 됐다.
어느 날 결혼이민자가 알려줬다. 다문화지원센터에 가보라고. 당시에는 다문화지원센터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어 강의, 요리교실, 영화감상, 운전면허교실 등 다양했다. 돈 안 들이고도 여러 가지를 배웠다. 한국사회 적응의 밑바탕이 됐다. 어려움 없이 한국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자신감이 생겼다. 일을 하고 싶어졌다.
2016년 사 씨에게 기회가 왔다. 고양다문화지원센터에서 직원채용공고가 떴다. 중국어 통,번역 직원 모집 공고였다. 모집인원은 1명이었다. 입사지원서를 냈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합격자 발표 날 홈페이지를 열어 봤다. 기적 같은 현실이 일어났다. 합격이었다. 내가 한국회사의 직원이 되다니. 그것도 다문화지원센터의 직원이라니.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함성이 나왔다. 날아갈 듯 기뻤다. 남편이 꼭 안아줬다. 시어머니도 눈물을 글썽였다. 온 식구가 축제의 장에 빠져 들었다.
합격만큼 소중한 게 있었다. 사 씨는 오래 전부터 꿈을 키워 왔다. 결혼이민자를 돕고 싶은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장인이 된 것이다.
사 씨의 직장생활은 명랑일기다. 가장 걱정했던 회사분위기가 정말 좋다. 한국은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고 들었다. 잘 적응할까 걱정했다. 막상 출근하니 정반대였다. 모두가 반겨줬다. 외국인이라고 더 잘 챙겨 줬다. 소문과 현실의 차이점을 느꼈다. 한국사회의 정에 흠뻑 빠졌다. 하루하루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직장인이 된 사 씨는 현실과 맞닥뜨렸다. 국적문제였다. 한국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어차피 남편 믿고 따라온 대한민국. 자신만 찾아대는 예쁜 딸과 아들.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주는 시부모님. 주위의 친절한 지인들. 자신을 응원해주는 다문화가정 식구들. 모두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결단을 내렸다. 귀화를 신청했다. 남편과 결혼할 때의 심정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그리고 2020년 9월 한국인 사윤주로 다시 태어났다.
사 씨의 직장생활은 만족 120%다. 결혼이민자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어서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보람도 많이 느끼고 있다. 국적신청, 영주권발급 서류 제출 때 법원에서 통역을 해주며 자부심을 갖게 된다. 한 가정을 지켜줄 때는 삶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부인이 한국남편과 갈등이 있을 때 오해를 풀어 줘 이혼을 막아준 경우도 많다.
안타까운 일도 있다. 중국부인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다. 오랜 설득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힘이 빠진다. 그래도 사 씨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이 없다. 앞으로 결혼이민자 정착에 더 힘쓰겠다며 각오를 밝힌다.
사 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한 학사다. 사회복지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땄다. 그늘진 곳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 한다. 대학원 진학의 꿈도 갖고 있다. 다문화정책을 전공했으면 한다.
직장인 사 씨는 기자에게 쑥스러운 듯 한마디 던진다. 제가 귀화한 이유 가운데 하나 말씀드려도 되겠냐고 묻는다.
“저는 사실 한국 공공기관 일처리에 매료됐어요. 중국에서는 아는 공무원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한국에서 살다 중국가면 불편한 게 많아요. 특히나 공공기관 업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사 씨의 말 속에서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한국 공공기관의 일원이 됐다는 뿌듯함이 묻어난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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