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문화산책] 아트페어 다음 전시장은 도시 전체다
프리즈 서울 2026, 코엑스 넘어 을지로·한남·청담·삼청으로 확장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 2026-08-10 19:35:52
언제부터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트페어가 되었을까.
9월 프리즈 서울이 개막하는 곳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다. 그러나 올해도 미술의 동선은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서울 곳곳에 숨겨지고, 갤러리는 밤까지 문을 열며, 부산비엔날레의 영상 작품은 송은으로 올라온다. 아트페어를 보기 위해 코엑스로 향하던 관객은 이제 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술과 이야기를 따라 도시를 움직인다.
올해 5회째를 맞는 프리즈 서울은 9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린다. 30개국 125개가 넘는 갤러리가 참여한다. 이 가운데 70% 이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50곳 이상은 이미 서울에서 상설 공간을 운영하며 국내 미술 애호가와 접점을 넓혀왔다. 한국화랑협회가 운영하는 국내 대표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도 같은 기간 관객을 맞는다. 키아프 서울은 프리즈보다 하루 더 긴 9월 6일까지 이어진다.
올해 눈여겨볼 것은 페어 안의 숫자만이 아니다. 프리즈 위크는 페어 개막 이틀 전인 8월 31일부터 도시로 확산된다. 을지로를 시작으로 9월 1일 한남, 2일 청담, 3일 삼청에서 '네이버후드 나잇(Neighbourhood Nights)'이 차례로 열린다. 갤러리와 문화공간은 늦게까지 문을 열고 전시와 공연, 행사를 이어간다. 아트페어의 열기는 코엑스라는 하나의 장소에 묶이지 않는다. 서울의 서로 다른 문화 지역이 하나의 미술 동선으로 꿰어진다.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가 영국 작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의 '더 파인드 서울(The Find Seoul)'이다. 갠더는 올해 프리즈 서울 기간 전시장 안이 아니라 서울 도심 전체를 무대로 삼는다. 프리즈 라이브(Frieze LIVE)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는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8월 31일부터 9월 10일까지 을지로, 한남, 청담, 삼청, 코엑스 일대에 특별 제작한 동전 1만6000개를 숨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러 가는 대신 도시를 걷다가 우연히 작품을 발견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찾는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된다는 점이다. 동전은 기념품이면서 작은 작품이고,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간직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 갠더는 미술관의 흰 벽을 벗어나 서울의 거리와 골목, 상업 공간과 문화 지구를 하나의 전시장으로 바꾼다. 프리즈 기간 서울은 작품을 거래하는 시장이면서 동시에 예술을 우연히 만나는 도시가 된다.
프리즈와 부산비엔날레의 협업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부산비엔날레 × 프리즈 필름 서울 2026'은 서울 송은에서 열린다. 부산비엔날레의 주제인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을 서울로 확장해 앨리슨 응우옌(Alison Nguyen), 우미 이시하라(Umi Ishihara), 루이스 호키(Luiz Roque), 모 셋(Moe Satt), 브라힘 탈(Brahim Tall) 등 부산비엔날레 참여 작가 8명의 무빙이미지 작품을 선보인다. 영화와 사운드, 퍼포먼스, 안무를 오가는 작업들이다.
작품 거래를 중심으로 한 아트페어와 동시대 미술의 실험을 보여주는 비엔날레가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만나는 셈이다. 프리즈는 이번 협업을 통해 페어 밖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서울과 부산의 미술 동선을 잇겠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변화가 올해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는 나흘 동안 48개국에서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 160곳 이상의 주요 미술관과 기관 관계자들도 서울을 방문했다. 같은 기간 을지로·한남·청담·삼청의 야간 프로그램, 리움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 주요 미술기관의 전시와 행사는 프리즈 서울을 코엑스 안의 행사가 아니라 서울 전역의 미술 주간으로 확장시켰다. 프리즈도 지난해 9월 서울 약수동에 상설 전시 공간 '프리즈 하우스 서울(Frieze House Seoul)'을 열며 이 흐름에 합류했다.
이 현상은 아트페어와 도시의 관계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아트페어의 경쟁력은 얼마나 좋은 갤러리와 작품을 한곳에 모으느냐에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미술관과 갤러리, 공공미술과 영화, 공연과 도시의 문화공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중요해졌다. 관객이 전시장 안에서 무엇을 보느냐 못지않게, 전시장을 나와 어떤 도시를 경험하느냐가 아트페어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작품 구매가 곧 아트페어라는 등식도 더 이상 전부가 아니다. 작품을 사지 않는 관객도 갤러리를 찾고, 전시를 보고, 도시를 이동한다. 해외 방문객이라면 숙박과 식사, 교통 소비도 뒤따른다. 미술이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의 이동이 다시 도시의 공간과 상권을 연결한다. 이때 아트페어는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을 넘어 문화관광과 도시 브랜드가 만나는 지점에 놓인다.
그렇다고 서울이 이미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 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이를 말하려면 해외 방문객 비중과 실제 작품 거래액, 체류 기간과 관광 소비, 해외 갤러리의 장기 정착 여부까지 함께 확인해야 한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프리즈가 서울에 가져오는 경제효과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변화는 분명하다. 125개가 넘는 갤러리가 모이는 코엑스 밖에서 이미 또 하나의 미술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을지로에서 한남으로, 청담에서 삼청으로 이어지는 밤이 있고, 서울 곳곳에는 1만6000개의 작은 작품이 숨는다. 부산비엔날레의 영상 작품은 송은으로 이동한다. 오늘의 아트페어가 만들어내는 것은 작품 거래만이 아니다.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도 함께 바꾸고 있다.
앞으로 아트페어의 경쟁력은 전시장 안에 얼마나 좋은 작품을 모았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 전시장을 나선 뒤에도 사람들이 미술을 따라 움직이는 도시인가. 갤러리와 미술관, 거리와 상점, 지역과 지역이 하나의 문화적 동선으로 이어지는가. 서울이 답해야 할 질문은 여기에 있다.
아트페어의 다음 전시장은 어쩌면 도시 그 자체다.
토요경제 / 마리아김 문화전문기자 kimjjyy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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