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끊어야 산다⑤] 두 달 만에 806건 자진신고…교실 안 ‘도박 빚’ 터져
한 달 새 신고 74% 급증…중학생, 동급생 41명에게 돈 빌려
누적 입금액 2600만원·200% 사채까지…신고 이후 채무 관리가 관건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 2026-07-22 15:54:07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가 제도 시행 두 달 만에 806건 접수됐다. 한 중학생은 동급생 41명에게 돈을 빌려 도박사이트에 누적 2600만원을 입금했고, 다른 청소년은 도박자금을 마련하려 사채업자 10여명에게 500만원을 빌렸다가 연 200% 수준의 고금리와 협박에 시달렸다. 청소년 도박이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교실 안 채무와 불법사금융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 자진신고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18일부터 7월 14일까지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제에 접수된 신고는 총 806건이다. 본인이 직접 신고한 사례가 629건, 보호자 신고가 177건이었다. 시행 첫 달에는 294건이 접수됐지만 두 번째 달에는 512건으로 74% 늘었다. 신고자 가운데 고등학생은 455명, 중학생은 351명이었고 남학생이 770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신고 증가를 제도 홍보의 성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동안 학교와 가정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도박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결과이기도 하다. 신고 사례를 보면 청소년 도박은 이미 용돈 수준을 넘어 가족의 재산과 또래의 돈까지 빨아들이고 있었다.
부산에서는 14세 중학생이 동급생 41명에게 총 200만원을 빌린 사실이 확인됐다. 이 학생이 도박사이트에 입금한 누적 금액은 2600만원에 달했다. 누적 입금액은 실제 손실액과 같지는 않지만, 돈을 따고 잃는 과정에서 같은 자금이 반복적으로 베팅됐다는 의미다. 소액으로 시작한 도박이 짧은 기간 수천만원대 거래로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기남부에서는 18세 청소년이 도박자금을 마련하려 사채업자 10여명에게 약 500만원을 빌렸다. 이후 연 200% 수준의 고금리와 협박 등 불법추심 피해를 호소했다. 경북 문경에서는 14세 청소년이 아버지 통장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3000만원을 몰래 인출해 도박한 사실을 자진신고했다. 대구에서는 13세 학생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용돈을 마련하려 도박을 시작했고 누적 입금액은 650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도박이 돈을 잃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실을 만회하려고 친구에게 돈을 빌리고, 부모 계좌에 손을 대고, 결국 불법사채까지 이용했다. 도박 빚이 다시 도박을 부르고, 더 큰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베팅하는 악순환이다.
특히 또래 간 금전 거래는 학교 안에서 새로운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여러 학생에게 돈을 빌린 뒤 갚지 못하면 갈등과 협박,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돈을 빌려준 학생도 도박 사실을 알고 자금을 제공했는지, 다른 학생을 사이트에 가입시키고 수수료를 받았는지에 따라 도박 생태계에 편입될 수 있다. 청소년이 단순 이용자를 넘어 모집책이나 자금 전달책으로 이용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자진신고는 출발점일 뿐이다. 신고한 학생을 상담기관에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박사이트 누적 입금액과 실제 손실액, 친구와 가족에게 빌린 돈, 불법사금융 채무를 구분해 정리해야 한다. 미성년자에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의 계좌와 연락처, 협박 메시지도 수사자료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가정과 학교의 조기 발견 체계도 달라져야 한다. 자녀의 계좌에서 소액 송금이 반복되거나 새벽 시간 입출금이 이어지는 경우, 여러 친구에게 동시에 돈을 빌리는 경우, 부모의 휴대전화나 계좌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경우는 도박 위험 신호일 수 있다. 단순한 용돈 문제로 치부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진다.
자진신고 806건은 청소년 806명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돈을 빌려준 친구와 피해를 떠안은 가족, 불법사채업자와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하나의 사슬로 연결돼 있다. 정부는 신고 건수를 늘리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고 이후 돈의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
청소년 도박을 끊는 핵심은 사이트 접속만 막는 것이 아니다. 도박에 들어간 돈과 도박 때문에 생긴 빚을 함께 끊어야 한다. 두 달 만에 접수된 806건의 신고는 치유의 시작인 동시에, 학교 안에 숨겨져 있던 도박 빚이 예상보다 깊게 퍼졌다는 경고다.
토요경제 /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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