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는 대한민국] 정 싣고 달리는 '닭강정 푸드트럭'을 아시나요

토요경제 인터뷰|장주식 대표 ”장사는 물건이 아니라 정을 파는 것“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6-13 15:27:49

▲ '주식이 닭강정'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장주식 대표 <사진= 김병윤 기자>

 

"장사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닙니다. 정을 파는 겁니다."

대기업 총수의 경영관이 아니다. 중소기업 사장의 철학도 아니다. 푸드트럭에 꿈을 싣고 달리는 중년 가장의 생활철학이다.


올해 45살의 장주식 대표. 푸드트럭에서 닭강정을 팔고 있다. 5곳의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쉼 없이 돌고 있다. 토, 일요일은 재료준비를 위해 영업을 멈춘다.

장 대표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했다. 기사자격증을 획득했다. 교수 추천으로 설계사무소에 취직했다. 회사가 4년 만에 부도가 났다. 29살에 당한 실직의 아픔이었다. 먹고 살아야 했다. 생소한 호텔업 근무에 뛰어들었다. 젊음의 패기로 극복했다. 4년간 근무했다. 돈도 모았다. 결혼자금도 준비했다. 피앙새를 만났다.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했다. 부인과 함께 운영했다. 유아복을 판매했다. 처음에는 잘 됐다. 물건을 많이 구입했다. 쇼핑몰 붐이 불었다. 경쟁이 심해졌다. 덤핑물건이 나왔다. 가격은 끝없이 떨어졌다. 재고는 쌓여 갔다. 광고비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버틸 방법이 없었다. 쇼핑몰 사업을 접었다.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우선 재고 처리를 해야 했다. 살던 아파트에 알뜰장이 섰다. 담당자를 만났다. 물건을 팔 수 있겠냐고 물었다. 자릿세 3만원을 내라고 했다. 천막을 치고 팔았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매출도 쑥쑥 올랐다. 2년간 여러 아파트를 따라 다녔다. 욕심이 생겼다. 물건을 대량구매 했다. 욕심이 화를 불렀다. 2주간 장맛비가 쏟아졌다. 장사하기 어려웠다. 물건도 비를 맞아 변질됐다. 재고가 쌓였다.

폐업하기로 했다.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때 은인이 나타났다. 같이 장사하던 분이 찾아왔다. 닭강정을 팔던 주인이다. 장 대표의 성실함을 눈여겨봤던 상인이다. 재고 없는 장사를 하라 권유했다.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재료 구입 과정부터 알려 줬다. 일주일을 따라 다녔다.

조리법을 익히는 것도 힘들었다. 튀김옷 배합. 식용유 온도와 양. 튀기는 시간. 모든 것이 어려웠다. 양념 배합비율도 연구했다. 맛과 영양을 좋게 하려고 신경 썼다. 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력했다. 식감도 좋게 만들어야 했다. 어린이들 간식용으로 많이 팔려서다. 자식 키우는 부모 심정이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고객이 줄을 섰다. 부모와 자녀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하루 매출이 70만원씩 오르기도 했다. 알뜰시장의 유명매장이 됐다.

▲ 1장 대표가 푸드트럭을 찾은 고객들에게 닭강정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김병윤 기자>

 

변수가 생겼다. 알뜰시장 관리자가 임대료를 2배로 올려 달라 요구했다. 다른 매장은 20% 인상에 그쳤다. 이유를 물었다. 장사가 잘돼서 그런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 노력으로 장사가 잘되는 건데. 못하겠다고 했다. 나가라고는 통보가 왔다. 관리자는 들어올 사람이 많다고 배짱을 부렸다.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홀로서기에 돌입했다. 300세대 정도의 소규모 단지를 찾아 나섰다.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다. 흔쾌히 허락했다. 5곳의 단지를 확보했다. 마음이 편해졌다. 알뜰시장 업자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았다. 임대료도 대폭 줄었다. 고객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맞춰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정성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주변에 소문이 났다. 동네 주민들이 찾아왔다. 아파트에서 벗어나 동네의 유명매장이 됐다.

장 대표는 푸드트럭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감회를 밝힌다. “닭강정이 맛있다고 하실 때 기분이 좋죠. 고객이 커피도 갖다 줍니다. 물건이 떨어졌는데 손님이 계속 오시면 너무 행복합니다. 얼마 전 어린학생들에게 토요경제와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아저씨가 빨리 유명해 져서 장사 잘됐으면 좋겠다’고 할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장 대표는 오늘도 꿈을 싫고 달린다. 소박한 꿈을 싫고 아파트를 누빈다. 푸드트럭은 2021년 1월에 장만했다. 천막생활 10년에 대한 보상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족들마저 장 대표의 생활을 알지 못했다. 알리기 싫어서였다. 푸드트럭을 장만하고 알렸다. 가족들은 고생했다고 토닥거려 줬다. 친구들은 아직도 모른다. 설계사무소에 다니는 거로 알고 있다. 이제는 친구들에게 밝히려 한다. 토요경제 인터뷰를 계기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설 계획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펼치려 한다.

친절과 정직 성실로 살아가는 장 대표의 밝은 미래를 응원한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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