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12)

질곡의 현장 ‘아메리카타운’, 옛 모습을 간직한 ‘임피역’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6-09 13:35:34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질곡의 현장 ‘아메리카타운’
군산의 아픔은 현대에도 있었다. 해방 후 일제가 떠났다. 그 자리에 미군이 들어왔다. 옥구(沃溝)에 미군비행장이 들어섰다. 미군의 여흥이 필요했다. 미군 위락시설이 들어섰다. 현재의 영화동 일대였다. 위안부도 모여들었다. 위안부의 활동무대였다. 수백 명에 달했다. ‘양공주’라 불렀다. 양공주라 불린 여인들. 그녀들을 절대 욕하지 마라. 생활이 힘들어서. 병든 부모님 을 봉양하기 위해서.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삶의 길이 너무 험난해서 나온 여인도 있다. 그녀들도 어느 집의 귀한 딸이었다. 누나였고, 언니였고, 동생이었다. 그 시절 지긋지긋한 가난이 그녀들을 거리로 내몰았을 뿐이다. 가난한 나라의 숙명을 그녀들이 짊어졌다. 기가 막힌 역사의 수레바퀴다. 일제가 휘젓던 장소에 미군이 활개를 쳤다. 강대국 군인의 군화 소리가 계속 저벅거렸다. 질곡의 아픔을 가진 현장이다.

위락을 위한 거리엔 범죄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거리의 특성상 당연한 결과였다. 학생 교육에도 안 좋았다. 장소 이전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졌다. 1960년대 말 이주가 시작됐다. 1969년 5·16 주체세력인 ‘백태하’ 대령이 아메리카타운이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군산시 미면 야산 일대를 구입했다. 미군 위락단지를 따로 조성했다. 속칭 ‘아메리카타운’이 형성됐다. 미군 상대 모든 업소가 합류했다. 내국인도 출입이 자유스러웠다. 체계적 운영으로 자리를 잡는 듯했다. 1990년대까지 군산의 대표적 유흥가로 호황을 누렸다. 이때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IMF로 인한 경기불황이 쓰나미 같이 밀려왔다. 반미감정도 고조됐다. 점차 쇠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이런 와중에 살인사건이 났다. 미군에 의해 벌어졌다. 치정사건이었다. 어느 미군이 한 여인을 흠모했다. 만나자 했다.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그 여인은 이미 애인이 있었다. 만남을 거부했다. 마침내 미군은 그 여인을 살해했다. 아주 잔혹했다. 다른 여인들은 모두 분개했다. 자신들의 아픔으로 느꼈다. 삽과 곡괭이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범인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큰 사회문제로 번졌다. 정부와 미군도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미 사령관이 명령을 내렸다. 미군에게 외출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거리에 미군이 없었다. 자연히 한국인 상대 유흥업소로 바뀌었다. 마을의 성격이 바뀌었다. 대책위는 2009년 아메리카타운의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 ‘국제문화마을’로 변경했다. 바(Bar)와 세탁소, 식당 등 생활시설이 입주했다. 근무하는 여성들도 다양하다. 필리핀·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 외국 여성이 거주하고 있다. 주로 클럽에서 일한다. 주한 미군도 휴가철에는 외국으로 나간다. 오키나와 ,괌, 필리핀 등으로 떠난다.

아메리카타운은 이름을 바꿔 존속하고 있다. 과거의 화려함은 없어졌다. 몇몇 업소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이 개점 휴업 상태다. 쇠락한 모습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반가운 일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강해졌다는 방증이다. 아메리카타운은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사라져 가지만 잊지 말아야 할 장소다.

옛 모습을 간직한 ‘임피역’

▲ 임피역 <사진=김병윤 대기자>

 

고요함을 느끼고 싶은가. 호젓함을 맛보고 싶은가. 빛바랜 역 건물을 보고 싶은가. ‘임피역(臨陂驛)’에 가보라. 100년이 지난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임피역에 가면 무엇이 생각날까.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다정스러운 얼굴이 떠오른다. 어서 업히라며 등을 내주시던 할아버지의 미소가 생각난다. 임피역은 잊힌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어져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기적소리가 끊긴 임피역은 추억을 머금게 한다. 낭만의 오솔길로 말없이 이끌고 간다. 빛바랜 임피역도 아픔이 있다. 일제강점기 혹독했던 수탈의 아픔이다.

임피역은 1912년 건립됐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 중 하나다. 군산선의 간이역으로 운영했다. 일제강점기 호남평야의 쌀을 군산항으로 옮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작은 간이역이지만 수탈의 아픔이 가득 차 있다. 임피역에 떨어졌던 빗물은 선조들의 눈물이었다. 임피역에 내렸던 하얀 눈은 선조들의 깊은 한숨이었다. 임피역에 울렸던 기적소리는 선조들의 통곡이었다.

임피역은 이런 아픔을 숨긴 채 여행객의 지친 발걸음에 쉼터를 내주고 있다. 낭만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추억의 그림자를 비춰주고 있다. 미래의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임피역이 가진 무형의 재산이다.

임피역에는 조용히 둘러볼 곳이 있다. 내부에서는 채만식의 정취를 느낄수 있다. 밖에서는 ‘시실리광장(SisilriPlaza)’을 만날 수 있다. 시실리 광장. 이국적 느낌을 준다. 아니다. ‘시실리(時失里)’의 뜻은 ‘시간이 멈춘 마을’이다. 쉬었다 가라는 뜻이다. 연못도 오는 사람을 반긴다.

전통우물도 향수에 젖게 한다. 자녀와 ‘열차체험교실’도 즐길 수 있다. 임피역은 2008년에 여객 취급을 중단했지만, 역사(驛舍)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당시 농촌 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축학·철도 사적 가치가 높다.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임피역은 추억과 낭만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옛 시절이 그리운 사람은 떠나라. 임피역으로. 고요함에 얼굴을 묻어라. 웃음과 눈물이 범벅될 것이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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