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내려라" 정부 압박에⋯라면업계 '속앓이'
이슬기 기자
lsg@sateconomy.co.kr | 2023-11-16 15:21:22
라면가격 인하를 촉구하는 정부의 압박 수위가 연일 높아지면서, 실제 라면업계가 가격 인하를 단행할지 여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감자 전분의 할당관세 인하 연장이라는 회유책까지 꺼내들자, 라면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권재한 농업혁신정책실장은 전날 국내 라면업계 1위 기업 농심을 찾아 물가안정 정책에 협조를 요청했다. 그동안 물가안정을 위해 라면가격 인하를 당부하는 구두 개입 수준에 머물렀다면, 사실상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이다.
라면업계가 기록한 올 3분기 호실적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라면 업계 3사는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을 냈다. 매출뿐 아니라 영업이익도 전년에 비해 두배로 뛰었다. 원재료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라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수익을 냈다는 비난 여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업계 1위 농심은 올해 3분기 영업이익 557억원, 매출 855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3.9%, 5.3%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삼양식품은 영업이익 434억원, 매출 3352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4.9%, 58.5% 실적이 급증했다. 오뚜기는 전년 동기 대비 87.8% 증가한 영업이익 830억원과 10.6% 늘어난 908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라면가격 인하를 촉구하는 소비자단체들의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주요 원재료 가격이 작년 4분기를 기점으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흑해 곡물 협정 연장 불확실성 등으로 높게 형성됐던 국제 곡물 가격이 점차 안정화를 되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식품 기업들이) 원재료가 하락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고통 속 기업들 자신만의 이익만을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이른바 ‘기업의 이윤 추구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지적에 라면업계는 해외 법인 성장세가 실적 개선의 원인이라며 해명했지만,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농심의 경우 미국법인과 중국법인이 200억원의 영업이익 냈고, 국내 법인의 수출 이익을 합하면 총 250억원의 수익을 냈다.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해외시장에서 기록했다.
삼양식품 상황이 다르지 않다. 3분기 영업이익 434억원 중 71%가 해외 수출에서 발생했다. 삼양식품은 국내 생산 제품을 주로 해외로 수출 중인데, 늘어나는 해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1643억원을 투입해 밀양 제2공장을 설립 중이다.
오뚜기는 라면보다 케찹과 마요네즈, 오뚜기밥 등 부수적인 제품 판매 호조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최근에는 해외 시장에서 늘어나는 라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 추가 공장을 설립 중이다.
라면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라면을 판매해 내는 이익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최근 해외시장 개척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정부가 라면업계를 타깃으로 가격인하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라면업계의 이같은 주장에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에게는 부도덕하고 궁색한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며 . 고물가에 국내 소비자가 시달리는 상황에서 국제 밀 가격, 팜유 때문에 가격 올렸으면, 내려간 만큼 가격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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