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1 조 공장 짓는 LS전선, 트럼프 정책 역풍에 흔들
해상풍력 공급망 겨냥한 버지니아 투자…현지선 관세·조류 충돌 우려까지
임대권 환매 26억달러·북미 2500억 예약계약 취소…유럽 물량이 가동률 방어선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 2026-06-23 15:21:00
LS전선의 1조원짜리 미국 해저케이블 공장은 예정대로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이 공장을 미국으로 끌어들인 핵심 명분이었던 신규 해상풍력 시장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공장 건설 자체보다 2028년 가동 이후 생산능력을 무엇으로 채울지가 더 큰 문제가 됐다. LS전선은 유럽 수출 물량과 지중케이블 생산을 방어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해상풍력 수요가 빠진 자리를 완전히 메울 수 있을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LS전선의 미국 자회사 LS그린링크는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 6억8100만달러, 약 1조원을 투자해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고 있다. 201m 높이의 수직연속압출시스템 타워와 전용 부두를 갖춘 대형 시설이다. 2027년 하반기 완공하고 2028년 1분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공장의 출발점은 명확했다. 버지니아경제개발청은 2024년 7월9일 투자 유치 발표에서 공장 목적을 ‘글로벌 해상풍력 산업에 공급하기 위한 시설’로 규정했다. 당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과 해상풍력 확대 정책이 투자 결정의 핵심 배경이었다.
현지 방송 WTKR은 지난 5월4일 LS그린링크 공사가 회사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2027년 말 완공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기존 공사는 재개됐지만 신규 시장은 줄어
문제는 공장이 아니라 전방시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초 미 연방 외대륙붕 전체를 신규 해상풍력 임대 대상에서 철회했다. 기존 임대권과 인허가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지시했다.
정책은 올해 더 강해졌다. 미 내무부는 지난 17일 인벤에너지 계열사가 보유한 뉴욕만·캘리포니아·메인주 인근 해상풍력 임대권 4건을 7억6500만달러에 종료하는 합의를 발표했다.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해상풍력 임대권 환매에 투입하기로 한 금액이 총 26억달러에 육박하며 8개 초기 프로젝트가 중단됐다고 집계했다.
미국 해상풍력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행정부가 공사를 중단시킨 기존 프로젝트 5건은 올해 2월까지 연방법원의 잇따른 결정으로 재개됐다. 따라서 ‘미국 해상풍력이 모두 꺼졌다’라는 말은 실제와 다르다.
그러나 신규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이 줄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된 사업은 법원에서 살아났지만, 초기 단계 사업은 임대권을 반납하고 가스·지열 발전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LS그린링크가 양산에 들어갈 2028년 이후 신규 수요의 가시성은 낮아진 셈이다.
LS전선도 2500억 예약계약 취소 경험
정책 변화는 이미 LS전선 계약에도 흔적을 남겼다. LS전선은 지난해 5월2일 애틀랜틱쇼어스오프쇼어윈드1과 체결했던 약 2500억원 규모 해저 초고압케이블 자재·용역 예약계약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북미 동부 해상풍력단지에 275㎸ 케이블을 공급하고 전기공사와 준공시험을 수행하는 내용이었다.
다만 이 계약은 최종 공급계약이 아닌 예약계약이었다. 버지니아 공장이 아니라 국내 동해공장에서 공급할 예정이었으며, 회사는 취소 수수료를 받았고 기존 수주 물량이 있어 실적 영향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미국 해상풍력 사업이 실제 계약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2월 13일 LS전선 신용평가 보고서에서 이 계약 취소를 직접 언급하며 “대형 해상 풍력발전 사업 환경의 불확실성 확대 여부는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LS그린링크도 정책 변화 이후 추가 투자를 멈췄다. 로이터는 지난해 2월14일 LS그린링크가 6억8100만달러 규모 공장 계획은 유지하지만 추가 증설 계획은 보류했다고 보도했다. 증설은 수억달러에서 10억달러대 투자와 수백 개 일자리가 걸린 사안이었다.
공장 본체는 짓되 그다음 투자는 멈춘 것이다. 미국 해상풍력 불확실성이 LS전선의 후속 투자 판단에 이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가장 직접적인 신호다.
유럽 물량은 방어선…미국 수요 대체 여부는 별개
그렇다고 이번 투자를 ‘헛다리’로 단정할 순 없다. WHRO는 지난해 4월28일 LS그린링크 공장이 유럽과 북미 고객에게 공급할 예정이며 첫 고객은 유럽 송전망 운영사 테네트라고 보도했다. 회사 측은 테네트 등을 포함한 주문이 2030년대까지 이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LS전선도 이튿날 유럽 수출용 18개월치 물량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LS그린링크는 필요하면 버지니아 공장에서 지중케이블도 생산할 수 있다. 유럽 해상풍력과 전력망 연결 프로젝트, 미국 노후 전력망과 데이터센터용 지중케이블로 공장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상풍력용 해저케이블 수요가 자동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지중케이블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대규모 수주가 확보됐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제품별 수익성과 인증, 고객, 생산공정도 다를 수 있다.
현재 공개된 자료에는 2028년 양산 이후 미국과 유럽 매출 비중, 해저케이블과 지중케이블의 생산 비중, 연도별 예상 가동률이 제시돼 있지 않다. 유럽 물량이 미국 신규 해상풍력 수요 감소를 어느 정도까지 메울지가 핵심 검증 대상이다.
관세 부담 현실화…부두 보조금도 첫 신청 탈락
현지 비용도 늘고 있다. WTKR는 지난달 4일 패트릭 심 LS그린링크 법인장이 해외에서 들여오는 일부 설비와 건설 자재가 관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심 법인장은 미국 정부와 협의해 해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용 부두 건설을 위한 연방 보조금도 첫 신청에서 탈락했다. 체서피크시가 지난달 26일 공개한 공식 문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4월 LS그린링크를 대신해 연방 항만인프라개발프로그램에 신청했지만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지 않았다. 시는 올해 5000만달러 규모의 부두 건설비 지원을 다시 신청했다.
이는 공장 전체 지원이 무산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LS그린링크에 배정된 9906만달러의 48C 투자세액공제는 현행법상 유지된다. 세액공제 요건을 충족하면 기존 배정분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부두 지원금 미확보와 관세 부담은 당초 사업비와 투자수익률에 추가 변수가 될 수 있다.
환경 논란도 발생했다. WTKR는 지난달 19일 현지 조류보호단체가 660피트 높이 타워의 조명이 철새 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보도했다. 체서피크 도시계획위원회는 오후 10시부터 새벽까지 조명을 끄는 내용의 개정안을 6대3으로 통과시켰다.
이는 공장 사고나 공사 중단 사안은 아니다. 다만 초대형 타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환경 기준을 계속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장 완공보다 가동률이 문제
재무 부담도 남아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LS전선의 신용등급을 ‘A+·안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업 경쟁력과 재무융통성은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 공장 6억8000만달러와 해저케이블 포설선 3458억원 투자가 이어지면서 중단기 차입 부담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LS전선은 지난해 12월 미국 공장 자금 마련을 위해 1551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도 실시했다.
대규모 생산시설은 완공 이후부터 고정비가 발생한다. 가동률이 낮으면 인건비와 감가상각비가 수익성을 누른다. 미국 해상풍력 사업이 늦어질수록 유럽 수주와 지중케이블이 공장 가동률을 얼마나 빨리 채울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LS전선의 미국 투자는 아직 실패라 할 수 없다. 유럽 고객과 제품 전환이라는 방어 수단도 있다. 그러나 투자 당시 전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공장은 일정대로 올라가고 있다. 미국 신규 해상풍력 파이프라인은 반대로 줄고 있다. 이제 LS전선이 보여줘야 할 것은 공장 건설 진척률이 아니다. 2028년 이후 고객별·제품별 수주와 가동률이다.
공장은 지을 수 있다. 결국 문제는 향후 그 공장을 채울 주문이 얼마나 되느냐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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