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11)
항일정신의 본산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복합건축 양식의 독특한 구조 ‘이영춘 가옥’, 추억을 되살리는 ‘초원사진관’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6-06 23:35:05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항일정신의 본산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군산은 항일(抗日)의 도시다. 저항의 도시다. 수탈만 당한 도시가 아니다. 당한 만큼 거세게 싸웠다. 일제의 억압에 줄기차게 대들었다. 대표적인 저항이 ‘군산3·1운동’이다. 1919년 3월 5일. 군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5만세운동이라고도 한다. 한강 이남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다. 영명학교 출신 김병수 학생과 교사들이 기습적으로 벌인 독립만세운동이다. 독립만세운동을 통해 군산시민의 항일정신이 불을 뿜었다. 농축된 마그마가 화산을 터뜨리듯이.
이날의 만세운동은 군산영명학교와 멜볼딘여학교의 교사와 학생, 구암병원 사무원, 구암교회 교인이 합세해 시작됐다. 100여 명으로 시작한 만세운동은 시민이 합세해 금방 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군산시민의 애국심이 용암처럼 흘러 내렸다. 독립만세운동의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일제는 군산시민의 저항에 당황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급기야 이리(익산)의 헌병대까지 진압에 나섰다. 대대적 검문과 체포 작전이 시작했다. 무자비한 진압은 피를 불렀다. 사망 53명, 부상 72명, 투옥 50여 명의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피해가큰 만큼 만세운동의 전파력도 컸다. 이날의 저항을 계기로 전라도는 물론 경상도, 충청도에도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군산시는 군산3·5만세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되새겨 보려 함이다. 미래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기념관에는 군산3·5만세운동에 관련된 사진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군산에서는 매년 시민들이 참여하는 3·5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복합건축 양식의 독특한 구조 ‘이영춘 가옥’
▲ 이영춘 가옥 내부 <사진=김병윤 대기자>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다. 서구식, 일식, 한식이 결합한 복합건축 양식이다. 전라북도에서 유형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인 ‘이영춘’ 박사가 거주했다. 이 가옥을 보려면 ‘구마모토(熊本) 농장’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구마모토는 일본인 대지주였다. 개인으로서는 조선 최대의 농장주였다. 군산 옥구, 김제, 정읍 등지에 천만 평에 달하는 농장을 소유했다. 직원이 50명에 달했다. 소작인은 3천 세대, 2만여 명을 거느릴 정도였다. 일제강점기는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었다. 다양한 질병이 만연했다. 기생충, 폐결핵, 매독 등이 널리 퍼져 있었다. 많은 소작인이 병으로 사망했다. 구마모토는 고민 끝에 자체 진료소를 개설했다. 소작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다. 수소문 끝에 진료소장으로 이영춘 박사를 초빙했다.
구마모토는 농장 안에 자신의 별장도 지었다. 건축양식이 특이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터법을 사용해 지었다. 목조건물이다. 외관은 서구식이다. 내부는 한식과 일식이 혼재됐다.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썼다고 전해진다. 거실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샹들리에가 호화스럽게 폼을 잡고 있다. 장식품 일부는 조선 왕실에서 쓰던 것으로 꾸몄다. 고종황제 일가가 사용한 가죽 의자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구마모토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구마모토는 해방 후 본국으로 떠났다. 수많은 재산을 남기고 갔다. 농장의 잔고 수억 원도 이영춘 박사에게 전해줬다. 자신의 별장도 이영춘 박사에게 물려줬다. 구마모토는 일제강점기 악덕 농장주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구마모토는 일제의 정책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그나마 양심 있는 일본 농장주로 인식됐다. 이 박사는 평생 이 집에서 머물렀다. 그래서 이집을 ‘이영춘가옥’이라 부리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제공됐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농장주에 의한 토지 수탈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동시에 해방 후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인 이영춘 박사가 거주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도 품고 있다. 지금은 ‘이영춘 박사 기념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추억을 되살리는 ‘초원사진관’
▲'8월의 크리스마스' 초원사진관과 심은하가 탄 티코 <사진=김병윤 대기자>
군산은 영화 촬영의 메카다. 해방 후 현재까지 17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시대극이 주를 이뤘다. 옛것이 잘 보존돼 있어서다. 군산에는 근대 건축물이 많다. 도시 분위기가 고전미를 물씬 풍긴다. 영화에서 시대감각을 제대로 살릴 수 있어 감독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다.
‘초원사진관’이 유명하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장소다. 촬영이 끝난 뒤 철거됐다. 군산시가 복원했다. 지금은 여행객이 꼭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1998년 크게 히트했던 멜로물이다. 한석규·심은하 주연의 애틋한 사랑 얘기다. 시한부 인생 한석규와 주차 단속요원 심은하의 이루지 못한 사랑. 관객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얘기에 손수건을 적셨다. 영화는 여운을 남겼다. 사랑은 이뤄지지 못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때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중년의 남녀가 많이 찾는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상념에도 빠져든다. 아스라이 멀어져 간 첫사랑의 추억을 더듬는다. 초원사진관은 주연배우 한석규가어릴 적에 살던 동네 사진관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사진관 옆에는 티코가 앙증맞게 서 있다. 심은하가 촬영할 때 나왔던 자동차다. 지금은 사라진 보물급 자동차다. 초원사진관 분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중년부인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어머머 여기 티코 좀 봐. 일행도 호응한다. 그러게 말이야. 예전에 우리 티코 타고 드라이브도 많이 다녔는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초원사진관 주변에는 다른 영화 촬영지도 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가 촬영됐다. 잘 꾸며진 정원과 가옥이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이 영화들은 군산의 중국집에서도 찍었다. 화교가 운영해 중국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음식점이다. 국내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분위기다. 두 개 층으로 운영하는 대규모 중국집이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났다. 촬영장소의 분위기도 영상미를 더 해줬다. 연기력과 촬영장소가 조화를 이뤘다. 크게 히트를 했다.
군산에는 지금도 영화 촬영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군산 같은 고전적 도시 분위기를 찾기 어려워서다. 옛 정취가 물씬 나 촬영지로 적합하다. 여행 중 운이 좋으면 촬영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 시는 영화 촬영에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수도, 전기, 화장실, 주차공간, 분장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내주고 있다. 촬영 기간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군산에는 영화 관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군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담으려 한다. 군산은 ‘문화관광 도시’를 추구하고 있다. 군산의 모든 여건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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