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기준금리 랠리 멈춘 한은...정점 찍었나? 잠시 쉬어가나?

금통위 1년반만 기준금리 동결...물가보다 경기상황 고려한 결단 분석
美 3월 FOMC서 추가 금리인상 확실시...4월 금통위 다시 인상 가능성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3-02-23 14:24:05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의 방향이 '물가 안정'에서 '경기 부양'으로 방향을 튼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끝 모르게 이어지던 기준금리의 인상 행진이 드디어 멈췄다.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인상)과 빅스텝(0.5%인상)을 섞어가며 기준금리를 계속 끌어올려 미증유의 고금리시대를 견인했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3일 오전 9시부터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2021년 8월부터 1년반 가까이 계속돼 온 금리인상 기조에 제동을 건 것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 기준 연속 인상 기록도 7차례로 끝났다.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금통위 회의는 1년에 3·6·9·12월 넉달을 빼고 총 8차례 열린다. 작년 4·5·7·8·10·11월과 올해 1월까지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기준금리를 인상한 금통위다.

경제위기감 고조가 금리동결 결정의 영향

한은은 이번 금통위를 앞두고 고민이 깊었다. 경기침체와 저성장 우려가 커지며 더이상의 긴축은 우리 경제를 회복 불가능한 지경으로 내몰 수 있다는 여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다음달 초 기준금리 조정을 앞둔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인플레와 경기침체를 무색케 할 정도로 고용상황이 호전된데다가 물가가 다시 상승세로 급반전,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다음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준(Fed)의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는 내달 23일인데, 전문가들은 빅스텝 단행 가능성까지 높게 점치고 있다.


FOMC가 만약 베이비스텝이 아닌 빅스텝을 선택한다고 가정하면, 현재 1.25%인 한-미간의 기준금리 격차 1,75%로 껑충 뛴다. 외국 자본의 이탈과 환율 급등으로 인한 자본시장의 심한 동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1월 소비자물가가 전달(5.0%) 보다 0.2%포인트 상승하며 5.2%로 올라서며 6개월 연속 5%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공공요금의 강세 속에 2월 물가 역시 5%대 고공비행을 계속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장고 끝에 한은의 선택은 결국 금리동결이었다. 국내외 상황을 종합할 때 한은으로선 기준금리의 인상 압박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지만, 한은은 금리동결이란 결단을 내렸다. 금리인상 보다는 금리동결의 명분이 더 강했다는 의미이다.


한은이 금리동결을 선택한 그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통화정책의 중심을 물가에서 경기부양으로 옮긴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불안감'을 넘어 '위기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국내 경기상황을 감안할 때 추가 금리인상의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란 얘기다.


금통위를 앞두고 시장과 전문가들이 금리동결 가능성을 높게 봤던 이유와도 일맥 상통한다. 그만큼 현재 경기상황은 심각한 지경이다.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부진에 소비위축이 겹치면서 경기침체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 위주 정책 변화에 동조

이같은 상황은 데이터가 말해준다.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는 8.8로 1월 기준 역대 최고치다.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월(8.5)과 비슷하다. 작년 4분기에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0.4%)로 돌아섰다. 올 1분기까지 역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요 기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극히 일부지만, 우리 경제가 올해 역성장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정부와 한은도도 하향조정을 거듭하며 1%중반까지 내려왔다. 반도체 부진과 중국수출의 감소로 수출이 상승 반전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고금리, 고물가에 경기가 IMF시대를 방불케하는 상황이다.


결국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경우 생산, 판매, 소비가 지금보다 더 위축될 것이 자명하고, 자칫 우리 경제가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절박감이 금통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물가안정에서 경기부양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도 한은의 금리동결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추경호 경제팀은 최근 공공요금 인상을 당분간 억제하고, 경기부양에 정책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주 2월 그린북을 통해 경제가 둔화국면을 맞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경기부양 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로 인한 자본시장 리스크가 이미 상당부분 반영된 것도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미간의 기준금리가 현재의 1.25%까지 벌어지는 과정을 통해 시장에 충분히 충격을 흡수한 탓에 미국이 금리를 추가인상해도 버틸만하다고 본 셈이다.

금리 고공행진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개연성 높아

사실 미국이 다음달에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해도 한은에겐 기회가 있다. 미국의 금리조정을 결정하는 FOMC정례회의는 3월22일로 잡혀있고 한은의 다음 금통위회의는 4월13일이다. 약 20일 상간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국내 외환전문가 A씨는 "한미 기준금리 차이가 1.25%에서 1.5%로 벌어진다해서, 외국자본이 대거 이탈하는 '셀코리아' 사태가 심각하게 벌어질 가능성은 이제 없을 것"이라며 "이번 한은의 금리동결 조치가 금통위와 FOMC 일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이런 점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을 고금리 랠리의 끝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많다는게 정설이다.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추가 인상으로 언제든 선회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부터 뒷걸음치기 시작한데다 수출·소비 등 경기 지표도 갈수록 나빠지는 만큼, 추가 금리인상으로 소비·투자를 더 위축시키기보다 일단 이전 인상의 물가 안정 효과나 경기 타격 정도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물가부담과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등으로 국내 기준금리 인상압력이 높아진 상황이어서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경쟁국의 금리인상 여부와 국내 경제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신중한 금리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수출이 줄어드는 데 소비도 위축되는 등 전반적으로 경제가 좋지 않다"며 "한은이 일단 금리를 동결하고 미국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美 3월 FOMC 정례회의 금리 결정에 촉각

어쨋든 한은이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않음에 따라 고금리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더 커지는 것은 막게됐다. 은행권의 금리인하 추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자장사'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압박에 밀려 대출금리를 속속 인하하고 있는 은행들이 추가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제 관심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FOMC정례회의에 쏠리게됐다. 추가 인상이 확실시되는 FOMC가 어떤 스텝을 밟느냐에 따라 한은의 다음 금리 조정과 자본시장에 상당한 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FOMC가 만약 베이비스텝을 결정한다면,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미미할 것으로 보이나, 빅스텝을 밟으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미 간의 기준금리 격차로 인한 충격흡수력 강해졌다고는 하나, FOMC의 빅스텝으로 격차가 1.75%까지 벌어진다면 국내 자본시장에 적지않은 충격파가 전달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미국내 분위기는 빅스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고용호조와 물가반등을 계기로 미국 FOMC내 매파들이 득세한데다, 지난 FOMC 의사록에서 긴축 선호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강달러 현상이 재현되며,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다시 뚫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23일 증시는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등의 여파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베이비스텝이냐, 빅스텝이냐. 미 연준이 3월 FOMC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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