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군산 이야기'(28)
낮아서 정감이 가는 ‘군산의 산’, 군산의 상징 ‘월명산’, 고사리가 많은 ‘망해산’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8-09 13:52:32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일제는 36년간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을 수탈하고 농락했다. 군산은 그런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대표적인 도시다. 김병윤 대기자는 지난 100여 일 이런 아픔의 도시 군산의 이곳저곳을 돌았다. 그리고 다시 웅비하는 군산을 목도했다. 김병윤 대기자가 둘러본 ‘군산 이야기’를 ‘토요경제 17주년 특별기획’ 일환으로 매주 2회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편집자 주]
낮아서 정감이 가는 ‘군산의 산’
높지 않다. 기껏해야 해발 200m가 조금 넘는다. 그보다 낮은 산도 있다. 군산에는 계곡이 없다. 산이 낮아서다.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언제고 갈 수 있다. 등산 장비를 꼭 갖출 필요도 없다. 산책하듯 걸어도 된다. 쉬엄쉬엄 올라가면 된다.
낮아도 산이다. 조심은 해야 한다. 정상에 서면 군산 시내가 보인다. 사방이 탁 트인다. 바다와 섬도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역할을 한다. 군산의 산은 조화롭다. 바다와 섬을 껴안는다.
군산의 상징 ‘월명산’
▲ 월명산 <사진=매거진군산 제공>
‘월명산(月明山)’은 군산의 상징이다. 아주 낮은 산이다. 해발 101m밖에 안 된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월명·점방·설림·석치·장계산 등을 포함해 ‘월명공원’이라 한다. 월명산이 주산이다.
월명산은 군산 시민에게 친근하다. 엄마 품같은 산이다. 월명산 등반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군산에 있는 학교 교가에 많이 등장한다. 사연도 많다. 신사가 있었다. ‘곤비라 신사’였다. 지금은 터만 남았다.
월명산 줄기에 ‘보국탑’이 있었다. 일본인 ‘모리기쿠 고로’가 1935년에 세웠다. 현재의 동국사 뒷산에 있었다. 1995년 일제잔재 청산의 목적으로 철거했다. 자신의 후손이 탑 아래서 영주하기를 기원한 내용이었다. 탑신은 ‘근대역사박물관’으로 옮겨전시하고 있다.
월명사 밑에 터널이 있다. ‘해망굴(海望堀)’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일제의 대표적 수탈 현장 가운데 하나다. 해망굴은 월명동에서 해망동으로 직접 가기위해 뚫었다. 해망동의 수산물을 시내로 빨리 수송하기 위해 건설했다.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서다.
월명동에는 일본인이 많이 살았다. 해망동은 어업으로 살아가는 우리 국민이 많았다. 해망굴을 뚫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가 동원됐다. 모두가 우리국민이었다.
해망굴은 6·25 전쟁의 상흔도 남아있다. 군산에 진주한 인민군의 지휘소로 사용됐다. 연합군은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비행기로 기총사격을 했다. 해망굴 입구에는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해망굴 옆 ‘흥천사(興天寺)’에도 슬픈 사연이 전해진다. 흥천사는 6·25 때 부상병을 치료하던 자리라고 한다. 치료받다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흥천사를 지었다.
월명산 자락엔 월명호수가 있다. 산에 둘러싸여 있다. 호수를 포함해 월명공원이라 한다. 호수 안에 수위를 재는 측량시설이 있다. 등록문화재다.
고사리가 많은 ‘망해산’
고사리가 많은 산이다. 봄에 올라가 보라. 여기저기서 고사리가 고개를 내민다. 신선한 고사리가 숲을 이룬다. 이유가 있다. 최근 10년 동안 큰 산불이 2번이나 났다. 산불이 난 자리에는 고사리가 많이 돋는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게 있다고 하던가. 나무가 불타니 고사리가 판을 친다. 결코 좋아할 일은 아니다. 고사리는 순이 벌어지기 전에 따야 한다.
봄이 되면 부녀자들이 모여든다. 일찌감치 모습을 나타낸다. 발걸음이 빠르다. 남들보다 일찍 가려고 분주히 움직인다. 이유는 한 가지다. 좋은 고사리를 따기 위함이다. 여인들의 자태가 아름답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바삐 뛰는 모습이. ‘망해산(望海山)’은 건강한 식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군산 시민의 건강을 일부 책임지고 있다.
망해산은 군산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해발 230m다. ‘취성산(鷲城山)’이라고도 부른다. 부처가 설법한 ‘영취산(靈鷲山)’과 닮았다 해서다. ‘봉화산(烽火山)’으로도 불린다. 정상에 봉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와 연결된 산이라 그런가. 사찰이 많다. 대부분 백제시대에 건립됐다. 특히 ‘불주사(佛住寺)’가 유명하다. 원래는 ‘불지사(佛智寺)’라 불렸다. 10여 년 전불주사로 개칭했다.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됐다. 불주사에는 많은 문화재가 보존돼있다.
대웅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목조 관음보살 좌상과 목조아미타여래 좌상도 유형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또 다른 사찰 ‘상주사(上柱寺)’도 참배객이 자주 찾고 있다. 상주사가 불지사보다 규모는 크다. <계속>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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