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미래다] 한·일 민간교류의 선봉장이 되겠다.

한.일 간의 문제는 민간교류를 통해 오해된 인식을 풀어야
친구 결혼식장에서 만나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 한.일 부부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 2022-08-08 13:40:54

▲ 한.일 민간교류협력에 힘 쏟고 있는 하야시 리에 씨 가족들 <사진=하야시 리씨 제공>

 

한.일 민간교류의 선봉장이 되겠다는 일본 여인이 있다. 주인공은 하야시 리에(49) 씨다. 일본 삿포로 출신이다. 2008년 4월에 한국남자 이경섭(51) 씨와 결혼했다. 올해로 만 14년을 더 살고 있다. 슬하에는 1녀 2남을 두고 있다.

하야시 리에 씨의 한국정착기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하야시 리에 씨는 여행을 좋아 했다. 20대에 미국일주 여행을 했다. 한국에는 2004년 부산에 처음 왔다. 2007년 7월에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인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결혼식장에서 남편 이경섭 씨를 만났다. 친구의 남편이 이 씨의 친척이었다. 이 씨는 홀로 앉은 하야시 리에 씨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앉아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 씨는 태권도 선수였다. 태권도 시범단으로 미국을 순회했다. 하야시 리에 씨의 여행방문지와 대부분 겹쳤다. 여행지에 관해 대화했다. 짧은 시간에 친해졌다. 서로 호감도 있었다.

하야시 리에 씨는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일본으로 갔다. 아쉬움을 간직한 채. 이 씨는 하야시 리에 씨가 돌아간 뒤 전화로 사랑을 속삭였다. 국제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통역은 하야시 리에 씨 친구 몫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하야시 리에. 이경섭 부부는 국경을 넘은 애틋한 사랑으로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다. <사진=하야시 리씨 제공>하야시 리에 씨는 이 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예상 밖의 반대에 부딪혔다. 조센진이라 안 된다고 했다. 부모님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강꼬구진도 아닌 조센진이라고“

하야시 리에 씨는 오기가 생겼다. 내 인생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에 왔다. 2008년 3월 한국 땅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4월에 결혼식을 했다. 부모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결혼식이었다. 무조건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고 각오를 다졌다.

부모님의 분노는 결혼 후에도 풀리지 않았다. 결혼 후 하야시 리에 씨는 남편과 부모님을 찾았다. 아버지가 만나주지 않았다. 울면서 발길을 돌렸다. 2008년 12월 일본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했다. 남편이 함께 가겠다고 했다. 듬직한 남편의 모습에 힘을 얻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전화했다. 일본에 도착했다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정신이 돌아왔다. 남편의 격려를 받으며 집에 발을 들였다. 아버지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남편을 받아 들였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지난 고통의 세월이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한국사위를 맞아들인 아버지는 2009년 암으로 별세했다.

하야시 리에 씨의 한국생활은 고비도 많았다. 남편이 태권도 도장을 차렸다가 망했다. 지인 도장의 사범으로 근무하다 1년 만에 그만 뒀다. 생활이 어려워 졌다. 대리운전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다행히 남편이 새 직장을 찾았다.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다. 직업에 만족해한다. 재미도 있다고 한다.

하야시 리에 씨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2012년 피부관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피부관리샵에 취직했다.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사무실 관리실장으로 승진을 했다.

2016년 피부관리샵을 개업했다. 세미나에서 만난 대학교수가 도움을 줬다. 외국인이 열심히 산다고 성의껏 도와줬다. 운영이 잘 됐다. 4년 간 호황을 누렸다. 이런 호황도 코로나로 막을 내렸다. 손님이 끊어 졌다. 임대료 내기도 버거웠다. 2020년 5월 문을 닫았다.

폐업 후 1년 동안 의욕이 사라졌다. 무기력에 빠졌다. 남편이 용기를 줬다. 자녀들도 힘내라고 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다. 새로운 길을 찾았다.
한국의 피부 관리방법을 일본인에게 강의했다. 개인 페이스북을 활용했다. 수입도 좋은 편이다. K-뷰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앞으로는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도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 중소기업 화장품을 일본에 소개시킬 생각이다. 일본의 Q-ten 사이트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다. 한국화장품을 통해 한.일 교류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Q-ten 사이트에서는 한국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야시 리에 씨는 한국생활에 어려움도 있다고 밝힌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문제 이야기가 나올 때 난처하다고 말한다. 두 나라의 입장 차이를 슬기롭게 풀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한.일 간의 오해된 인식이 바뀌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교류를 통한 이해가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면 좋겠어요. 제가 보기에 두 나라 국민은 개인적으로 친해요. 정치인들 입장이 두 나라 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듯합니다. 저도 일제강점기의 만행을 한국에 와서 알았어요.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았거든요. 한국도 현대화에 일본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인정해 줬으면 합니다. 서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며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한국의 뷰티와 문화를 일본에 알리는 거라 생각합니다.”(하야시 리에)

민간교류 필요성을 말하는 하야시 리에 씨의 지적에 다문화가정의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토요경제 / 김병윤 대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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