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 무죄’ 카카오엔터 김성수 前대표…경영판단과 형사책임의 경계
제작사 인수 의혹, 1심서 무죄…배임죄 입증 어려움 다시 확인
최성호 기자
choi@sateconomy.co.kr | 2025-09-30 13:38:12
[토요경제 = 최성호 기자] 부실 드라마 제작사를 고가에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던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매매 가격의 적정성만으로 배임을 단정할 수 없다”며 경영 판단의 자율성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배임죄 입증의 난점과 함께 최근 논의되는 ‘배임죄 폐지’ 흐름과도 맞물려 주목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3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김 전 대표와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던 이준호 전 부문장이 2020년 부실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고가에 인수하도록 공모해 회사에 31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 손해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매매 가격 산정에는 당사자들의 지위, 협상력, 거래 의지, 시장 상황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며, 단순히 ‘고가 매입’이라는 사정만으로 배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 전 부문장이 실소유한 회사를 고가 매각하는 대가로 319억원 상당의 이익을 챙기고, 김 전 대표가 이 전 부문장으로부터 12억5천여만원을 받았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이 전 부문장이 김 전 대표에게 고가 인수를 요청했다는 점이나, 카카오엔터가 구체적으로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배임수재·증재 혐의 역시 무죄로 판단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도 “배임 혐의가 유죄임을 전제로 구성된 공소사실”이라며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냈다.
다만 이준호 전 부문장은 2017년 바람픽쳐스가 다른 제작사로부터 받은 드라마 기획개발비 60억여원 중 10억5천만원을 부동산 매입 등 개인 용도로 유용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배임죄 입증, 여전히 ‘높은 벽’
이번 판결은 경영 행위와 범죄 행위의 경계가 모호한 배임죄의 특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배임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결과와 ‘임무 위배’라는 주관적 판단을 동시에 입증해야 하는데, 법원이 경영판단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면서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대기업 총수·경영진 배임 사건 상당수가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마무리되면서, “배임죄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실효성도 낮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번 판결 역시 ‘배임죄 폐지’ 논의의 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만약 상급심에서 유죄 판단이 나오면 ‘경영판단 원칙’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다시 쟁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무죄가 확정되면,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경제형벌 합리화, 특히 배임죄 개편 논의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재계는 “형사 리스크가 줄어야 투자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법조계와 시민단체는 “소수주주·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배임죄까지 약화되면 책임 경영이 후퇴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김성수 전 대표의 무죄 선고는 단순한 개인 사건을 넘어, 한국 기업사회에서 경영 판단과 법적 책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배임죄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은 그 논쟁의 불씨를 다시 키울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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