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배의 可타否타]'제2의 루나'를 막아야 하는 이유
이중배 기자
dialee09@naver.com | 2022-05-19 13:09:09
한국계 암호화폐 '루나' 사태로 전 세계가 시끄럽다. 시가총액 50조원에 달하며 전체 암호화폐 순위 8위까지 치솟았던 루나의 화폐가치가 한 순간에 99% 이상 폭락했으니 그 파장이 얼마나 클 지 상상이 간다. 루나의 붕괴는 기축 암호화폐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까지 큰 영향을 줄만큼의 폭발력을 내고 있다. '도지코인'으로 암호화폐 시장을 들었다놨다 하던 일론 머스크에 비교되며 암호화폐 시장의 기린아로 불리던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졸지에 벼랑끝에 내몰렸다. 엄청난 양의 비트코인을 비축한 것으로 알려졌던 테라폼랩스측은 보유 비트코인 대부분을 추락하는 루나와 이에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UST)'의 가격 방어에 활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등 수습 자체가 난망한 지경이다.
루나 폭락으로 인한 피해자는 거의 전세계에 퍼져있지만, 유달리 국내 투자자들의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테라-루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알고리듬을 짜고, 운용시스템을 만들고, 루나 재단을 이끌어온 장본인이 다름아닌 한국인 권도형 대표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암호화폐, 특히 알트코인 시장에서 권 대표만큼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린 한국인은 없다. 테라폼랩스의 본사가 싱가포르에 있지만, 이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 뿐 사실상 한국업체다.
루나-테라 사태의 근본 원인은 USDT 등 현물자산을 담보로 코인을 발행,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기존 스테이블 코인들과 달리 실물자산의 담보없이 독자 알고리듬만으로 가격을 유지하는 고유의 시스템이 한 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탓이다. 루나 수급으로 테라의 가격을 유지해왔는데 루나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락하자 마치 댐이 무너지듯 테라-루나 가격이 동반 급락하며 결국 파국을 맞았다. 전문가들이 실물자산의 담보가 없는 스테이블 코인은 스테이블 코인이 아니란 점에서, 애초부터 루나-테라 프로젝트는 심각한 헛점을 안고 출발했다고 분석하는 이유다. 사실상 예고된 사태란 얘기다.
루나 사태가 불거지자 크고 작은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피해규모가 큰 일부 투자자들은 권도형 대표를 상대로 집단 소송 움직임까지 보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모든 책임을 권 대표를 비롯한 루나 재단에게만 돌릴 일은 아니다. 엄연히 투자자들도 책임을 도 있다. 루나-테라 알고리듬의 치명적 맹점을 사전에 간파하지 못한 책임은 온전히 투자자들의 몫이다. 루나에 대한 투자가 추호도 투기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금융 당국도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들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불특정 다수의 금융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도 엄연히 자산이고, 금융이다. 그런데도 감독 당국은 그간 암호화폐 개발업체나 거래소에 대한 규제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는데는 미흡했다. '암호화폐는 고위험 자산이니 투자에 유의하라'는 경고나 주의메시지만으로는 제2, 제3의 루나 사태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 기득권 세력인 금융권에서 인정하든 안 하든 암호화폐는 이제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만 수 백만명에 이르는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투자 규모도 주식 투자에 버금간다. 업비트, 빗썸 등 암호화폐거래소의 하루 거래규모가 증권거래소 거래금액을 웃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루나 사태와 같은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선 곤란하다. 암호화폐가 불안전하며 위험도가 큰만큼 투자하지 말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투자자들의 도도한 물길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감독기관이 시급히 해야할 일이다.
그 시작은 암호화폐를 정부부터 인정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암호화폐는 단순한 투자수단일 뿐아니라, 전후방 관련산업과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대단히 큰 분야다. 무슨일이 터지면 법을 만들어 무조건 규제 일변도로 대응하는 과거 정부를 답습해선 답이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디지털자산 산업의 발전만 저해할 뿐이다. 제2의 루나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을 디지털자산 강국으로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막 출범한 윤석열 정부 앞에 놓인 꽤 난해한 숙제이다.
토요경제 / 이중배 기자 dialee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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