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수출 신기록 뒤엔 ODM이 있었다…한국콜마·코스맥스, 제조 넘어 ‘개발 플랫폼’으로

지난해 화장품 수출 114억달러 역대 최대
중소·인디 브랜드 약진에 대형 ODM 기업 실적도 동반 성장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 2026-06-11 16:48:01

K뷰티 수출 신기록의 중심에는 브랜드보다 먼저 ODM이 있었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 등 화장품 ODM 기업들은 자체 브랜드 없이도 처방 개발, 제형 설계, 품질관리, 글로벌 규제 대응을 맡으며 중소·인디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떠받쳤다. 지난해 국내 화장품 수출이 114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배경에는 빠른 제품화와 안정적인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ODM 인프라가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월 발표한 ‘2025년 화장품 생산·수출·수입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화장품 수출액은 114억달러로 전년 대비 11.8%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수출 대상국도 직전년도 172개국에서 202개국으로 늘었다. 한국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에 올랐다.

수출 증가의 중심에는 중소기업 화장품이 있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25년 중소기업 수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은 전년 대비 21.5% 증가한 83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체 화장품 수출의 72.5%를 차지했다. 반면 대기업 화장품 수출은 18.8% 감소하며 2022년 이후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이 같은 수출 구조 변화는 ODM 기업들의 실적으로 이어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맥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조3988억원, 영업이익 195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10.7%, 11.6% 증가한 수치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한국콜마도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조7224억원, 영업이익 2396억원을 올렸다. 매출은 11.0%, 영업이익은 23.6% 증가했다.
 

▲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생성된 AI이미지

 

ODM은 제조자개발생산을 뜻한다. 브랜드사가 제품 기획과 판매를 맡고, ODM 업체가 처방 개발, 제형 설계, 생산, 품질관리 등을 담당하는 구조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반도체 업계의 TSMC처럼 자체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고객사의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기업으로 분류된다.

최근 ODM의 역할은 단순 생산 대행을 넘어섰다. 처방 개발, 글로벌 인증, 품질관리, 현지 규제 대응, 해외 공급망 관리까지 맡는 개발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자체 생산설비가 없는 인디 브랜드는 ODM 기업을 활용해 제품 출시 속도를 높이고, 해외 시장별 규제에 맞춘 상품을 빠르게 내놓을 수 있다.

코스맥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글로벌 고객사는 전년 말보다 400곳 이상 늘어난 5000곳으로 확대됐다. 연매출 1000억원 이상 고객사도 56곳에 달한다. 단일 제품 기준 100만개 이상 판매된 제품은 50개, 1000만개 이상 판매된 제품은 22개다.

고객사의 수요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출시 이후 해외 진출을 검토하는 방식이 많았다. 최근에는 제품 기획 단계부터 미국, 일본, 동남아 등 해외 시장을 겨냥해 현지 규제와 글로벌 유통 채널에 맞는 제품 개발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스맥스는 고객사의 성장 단계에 따라 카테고리와 제형 제안, 생산 안정성, 납기 대응, 글로벌 규제 인증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K뷰티 브랜드들이 같은 ODM 생산라인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올해는 K뷰티 프리미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가성비 시장에 머무르는 K뷰티가 아니라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도록 차별화된 원료와 제형 경쟁력을 높여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 한국콜마 생산공정 [한국콜마]

 

한국콜마도 연구개발 역량을 강조했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오랜 시간 축적한 R&D 역량을 바탕으로 K뷰티 기술 경쟁력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ODM 플랫폼을 활용한 인디 브랜드의 성장도 두드러진다. 아누아, 조선미녀 등은 자체 생산설비를 갖추기보다 ODM 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개발하고, 온라인 플랫폼과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해외 시장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아누아를 운영하는 더파운더즈는 지난해 매출 427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99% 증가했다. 해외 매출은 364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90%에 육박했다. 아누아는 아마존에서 ‘2024 톱 브랜드’로 선정됐고, 일본 큐텐 메가와리에서 1~3분기 연속 종합 매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얼타뷰티와 영국 부츠에도 입점했다.

조선미녀를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도 지난해 매출 3000억원을 넘어서며 급성장했다. 대표 제품인 ‘맑은쌀선크림’은 아마존 선크림 부문 1위에 올랐다.

아누아 관계자는 “ODM을 선택하는 이유는 급변하는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자체 생산설비 구축에 따른 리스크와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파트너사가 선행 연구를 통해 확보한 제조 기술력을 활용해 고객 니즈에 맞는 제품을 적시에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실적 호조에 힘입어 ODM 기업들은 글로벌 생산 거점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코스맥스는 현재 한국, 중국 상하이·광저우, 미국, 인도네시아, 태국, 이탈리아에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기준 연간 35억개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코스맥스는 올해 하반기 중국 상하이 신사옥 준공과 태국 신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내년에는 인도네시아 신공장도 가동할 예정이다. 코스맥스 측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현지 소비자와 고객사를 겨냥한 제품을 현지에서 개발하고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콜마도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콜마에 따르면 해외 생산기지의 연간 생산능력은 중국 무석콜마 5억5000만개, 미국콜마 1·2공장 3억개, 캐나다콜마 1억6500만개다. 회사는 중국 사업 효율화를 추진하는 한편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북미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한국콜마는 미국 FDA OTC 인증 역량을 기반으로 선케어 제품 수주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별 규제 차이를 최소화한 ‘유니버셜 선케어’ 전략을 앞세워 미국뿐 아니라 유럽 시장 공략도 강화하고 있다.

다만 ODM의 성장이 브랜드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디 브랜드의 아웃소싱 전략이 ODM 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제품 콘셉트와 마케팅, 소비자 접점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브랜드의 몫이기 때문이다.

박종대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브랜드 없이 화장품 산업이 있을 수는 없다”며 “훌륭한 브랜드 창업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ODM도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인디 브랜드 확산이 ODM 기업에 구조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봤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대형 브랜드사는 자체 생산 공정을 보유하고 있어 코스맥스·한국콜마의 실적 모멘텀이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자체 공정 없이 외부 생산에 의존하는 인디 브랜드가 늘어날수록 ODM 기업의 수혜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중국과 동남아 현지 ODM 업체들의 추격에 대해서는 아직 직접적인 위협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K뷰티 인디 브랜드의 글로벌 확산과 함께 한국 ODM 기업들의 연구개발, 품질관리, 납기 대응 역량이 당분간 경쟁우위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뷰티 수출 신기록은 브랜드만의 성과가 아니다. 빠른 기획과 제품화, 현지 규제 대응,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ODM 인프라가 함께 만든 결과다. 인디 브랜드의 기획력과 ODM 기업의 제조·개발 역량이 결합하면서 K뷰티 산업의 성장 공식도 바뀌고 있다.

 

토요경제 / 김은선 기자 kes@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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