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英·美 결합심사'에 묶여 날개 못피는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영국 CMA '심사유예' 결정 이어 미국 법무부 '추가 심사' 선언...합병절차 지연 불가피
자국 항공사 측면 지원 위한 '이기주의의 발로' 지적...업계 "합병 무산 가능성은 낮아"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2022-11-16 12:28:04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합병이 주요국의 결합심사에 발이 묶여 있다. 사진은 인천공항에서 이륙을 앞둔 대한항공 여객기들. <사진=연합뉴스제공>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합병이 영국, 미국 등 주요국 경쟁당국의 독과점 심사에 잇달아 제동이 걸리면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이와관련해 합병 승인을 잠시 유보했을 뿐, 대세엔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다. 주요국 경쟁 당국의 독과점 우려에 대한 반박 자료를 제출하면,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승인엔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결코 만만치 않아 보인다. 미국과 중국 빅2의 갈등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자국우선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대형 M&A가 기업결합심사의 벽에 막혀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초에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팹리스업체 엔비디아가 영국 굴지의 반도체 설계업체인 ARM을 인수하려다 독과점을 우려한 주요국의 결합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결국 인수를 포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2위의 항공사인 아시아나를 합병하며,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메이저 항공사로의 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행보엔 일단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도 이같은 세계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항공료 인상과 서비스 질 저하 우려가 표면적 이유


영국의 시장경쟁청(CMA)이 지난 14일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심사를 전격 유예조치한데 이어 15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DOJ)가 돌연 양사의 합병에 대한 '추가 심사'를 결정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을 단순히 넘길 문제가 아니라, 보다 심층적으로 경쟁 제한성에 대한 세부심사를 하겠다는 것인데, 전날 영국 CMA의 '심사유예' 결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 법무부의 이러한 결정으로 당초 75일 내에 결합심사를 마무리 하겠다던 대한항공의 계획은 무산됐다. 대한항공은 지난 8월말 미 법무부에 결합심사 자료를 제출, 이달 중순경엔 심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번 추가심사 결정으로 심사를 통과한다해도 상당한 시일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영국과 미국의 경쟁당국이 이처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은 철저한 자국우선주의, 즉 양국의 항공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업결합심사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는 표면적으로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인한 항공권 가격 인상과 서비스 하락이 예상된다"는 이유를 달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한국의 1, 2위 항공사업자로 두 회사의 합병으로 독과점성이 강화돼 가격인상과 서비스의 질 저하 우려가 높다는 예기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에 딴지를 걸어 합병의 주체인 대한항공을 압박, 뭔가 이익을 얻어가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M&A의 최종관문인 결합심사를 무기로 자국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속셈이란 의미이다.

 

자국 항공사 지원 속셈 깔고 있는 포석 지적 많아


실제 영국의 경우 심사유예로 시간을 벌며 대한항공 측에 인천-런던 노선의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영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는 BA(영국항공)이 런던-인천 직항 노선을 운항하다가 팬데믹 여파로 운항을 중단했다.


영국 입장에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면 사실상 노선을 독점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견제하면서 지난 9월 27일 항공동맹인 '스카이팀'에 가입한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래틱에 대한 지원을 염두에 둔 포석을 깔고 있는 셈이다.


버진애틀랜틱은 에든버러, 맨체스터 등 영국 주요 공항에서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델타항공, 에어프랑스-KLM과 제휴를 맺고 북미 및 카리브해 지역에도 포괄적인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버진애틀래틱에 대한 슬롯 할당이 CMA측의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심사 승인의 실질적인 변수로 꼽는 이유이다. 공교롭게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스카이팀의 의장이다.

 

미국도 속셈은 영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이후 시장 경쟁성이 제한되는 지 집중적으로 살펴본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는 실리주의에 깊게 깔려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한항공의 미주 노선은 코로나19사태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30%에 육박하는 핵심 시장이다. 아시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는 역으로 미국 입장에선 결합심사를 무기로 자국 항공사의 이익을 제공할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미국과 영국의 이같은 철저한 자국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결합심사의 제동은 남아있는 다른 나라의 결합심사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한항공의 최종 아시아나 합병 절차는 적지않은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와 합병을 위해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한 곳은 총 14개국. 이중 동남아를 비롯한 9개국은 심사를 통과했거나 거의 확정이다. 반면 미국, 영국, EU, 중국, 일본 등 5개국이 남아있는데, 글로벌 항공시장의 핵심 국가다.

 

영국과 미국 심사 결과에 나머지국가 승인 좌우될듯


업계에선 영국과 미국의 기업결합심사 결과는 EU, 중국, 일본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두 나라의 심사가 언제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대한항공-아시아나 최종 합병 여부가 달려있지만, 승인이 거부될 가능성은 낮고 보고 있다.


두 나라의 심사기준 강화의 근본 목적이 자국이기주의에서 기인한데다, 추가 심사의 핵심인 경쟁제한성 지적을 해소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승인 실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문제일 뿐 최종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얘기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은 자율적인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나라다. 따라서 미국이 독과점 우려가 작다고 판단, 기업결합을 승인하면 다른 주요국 심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같다"며 "그러나 만에하나 승인을 받지 못하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합병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소공동 한진빌딩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한항공측은 바빠졌다. 영국 CMA와 미국 DOJ의 지적사항에 대한 반박 자료 준비에 분주하다. CMA는 독과점 해소 방안을 오는 21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승인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이를 토대로 28일께 이뤄질 전망인데, 시정안의 내용이 불충분하면 2차 심층조사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여객·화물 운송 실적 기준으로 세계 항공업계 랭킹은 각각 19위, 29위다. 그러나 두 회사가 합병이 마무리되면 단숨에 세계 7위로 급부상한다. 자연히 한진그룹의 자산규모도 크게 늘어난다.

 

대한항공이 과연 영국과 미국의 기업결합심사의 제동을 풀고 아시아나항공의 최종 인수에 성공하며, 글로벌 항공사로 거듭날 수 있을 지 귀추가 매우 주목된다.

 

토요경제 / 양지욱 기자 yjw@sateconomy.co.kr  

[ⓒ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