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 밖에서 더 큰 빚이 시작된다
SNS ‘대리입금’, 수고비·지각비로 위장한 불법사채
도박 손실 만회하려 빌린 소액이 협박·갈취·2차 범죄로
연 60% 넘는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 2026-07-13 12:21:01
청소년 도박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돈을 잃었을 때가 아니다. 잃은 돈을 되찾겠다며 빚을 내는 순간이다. 도박 손실을 만회하려고 빌린 5만원과 10만원이 고금리 대리입금으로 이어지고, 갚지 못한 빚은 협박과 개인정보 유포, 사기와 절도 등 2차 범죄로 번진다.
도박 중독과 불법사금융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도박사이트가 베팅 충동을 자극한다면 대리입금은 그 충동에 필요한 현금을 즉시 공급한다. 정부가 올해 청소년 사이버도박 대응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까지 참여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청소년들이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대출에 손을 대거나 사기·절도 등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리입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급전’, ‘소액 대출’, ‘대신 입금’ 등의 이름으로 유통된다. 게임 아이템이나 상품 구입비를 대신 내주고 며칠 뒤 원금과 수고비를 받는 방식이다. 금융거래라기보다 친구 사이의 작은 부탁처럼 보이도록 포장한다.
실제 구조는 고금리 사채다. 경찰청과 금융당국이 안내한 대리입금 사례를 보면 통상 10만원 이하의 돈을 7일 안팎으로 빌려주고 원금의 20~50%를 수고비로 요구한다. 상환이 늦어지면 별도의 ‘지각비’를 붙인다. 돈을 빌릴 때 학생증과 연락처, 학교, 부모 전화번호 등을 받아낸 뒤 이를 추심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에게 이 구조는 더욱 치명적이다. 처음에는 베팅 자금 5만원을 빌린다. 돈을 잃으면 다시 빌려 앞선 빚과 도박 손실을 동시에 갚으려 한다. 대출은 반복되고 상환일은 겹친다. 도박 빚을 갚으려고 다시 도박하거나, 다른 대리입금 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돌려막기가 시작된다.
불법 대부업자는 이 지점을 파고든다. 소액이라 신고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욕설과 협박을 시작한다. 가족과 친구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겠다고 압박하거나 개인정보를 SNS에 공개하겠다고 위협한다. 청소년은 도박 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피해를 숨긴다. 숨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금보다 수고비와 지각비가 더 커지는 구조다.
그러나 대리입금 업자가 요구한다고 해서 모두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25년 7월 22일부터 시행된 개정 대부업법에 따라 연 이자율이 60%를 넘는 반사회적 대부계약은 원금과 이자가 모두 무효다. 미등록 불법사금융업자와 체결한 계약은 이자 약정 자체가 무효다. 이미 돈을 갚은 경우에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도 올해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제를 시행하면서 이 점을 명시했다. 연 이자율 60%가 넘는 대리입금은 이자와 수고비뿐 아니라 원금까지 갚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피해 청소년은 도박 문제 상담과 별도로 불법사금융 피해구제 절차에 연결된다.
문제는 법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이다. 대리입금 업자는 대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수고비와 지각비라는 표현을 사용해 이자를 숨긴다. SNS 계정을 바꾸고 대포통장과 타인 명의 계좌를 이용한다. 채무자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개인정보와 가족 연락처를 담보처럼 받아낸다.
현재 대응은 도박과 불법사금융을 각각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박사이트는 접속 차단과 수사 대상이 되고, 대리입금은 불법대부와 불법추심 사건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피해 청소년에게 두 문제는 하나다. 도박 계좌에서 시작된 돈의 흐름이 대리입금 계좌로 이어지고, 다시 협박과 갈취로 연결된다.
정책도 자금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청소년 도박이 확인되면 베팅 횟수만 조사할 것이 아니라 입금 자금의 출처와 채무 규모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소액을 보내는 계좌, 수고비와 지각비를 요구한 SNS 계정, 가족에게 연락한 추심 전화번호를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야 한다.
학교의 예방교육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도박을 하지 말라”는 경고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리입금이 대출이라는 점, 수고비도 이자에 포함된다는 점, 연 60%를 넘는 계약은 원금과 이자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불법추심을 당했을 때 돈부터 보내지 말고 대화 내용과 송금 기록, 계좌번호를 보관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도박 문제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잃은 돈의 액수가 아니다. 그 돈을 어디서 마련했는지다. 대리입금이나 불법대출이 확인되면 도박 상담과 금융 피해구제를 동시에 시작해야 한다. 협박을 받았다면 금융감독원 1332나 경찰 112에 신고하고, 청소년은 117 자진신고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도박은 돈을 잃게 한다. 불법사금융은 사람의 일상과 관계까지 빼앗는다. 청소년 도박을 막으려면 사이트만 차단해서는 안 된다. 도박판으로 흘러가는 돈과 도박판에서 생긴 빚을 동시에 끊어야 한다. 도박의 출구에서 기다리는 불법사채까지 차단해야 악순환이 끝난다.
토요경제 / 위아람 기자 moon@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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